취향의 이유
나의 인생악기, 바이올린 이경민 기획처 조직실 차장
오케스트라에 입단한 이경민 차장의 공연 장면.
다시 만난 바이올린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바이올린을 접했다. 분명 내가 먼저 배우고 싶어서 시작하긴 했는데 왜 배우고 싶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냥 바이올린 연주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어쩔 수 없이 그만두긴 했지만, 많은 사람이 그렇듯 나에게도 악기연주는 오랫동안 로망이었고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시간이 흘러 입사를 하고, 여느 직장인들과 다름없이 매일 회사와 집을 오가는 일상을 반복하다 보니 힘들고 지치고 무기력해지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러다 퇴근 후 남는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 나만의 취미생활을 찾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다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잠시 배우긴 했지만 그만둔 시간이 더 길다 보니 기본자세부터 모두 다시 배워야 했다. 퇴근 후 레슨을 받고 연습하는 게 쉽진 않았지만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으로 몰입할 수 있어 즐거웠다. 절대 못 할 것 같았던 마디들을 어느덧 연주하고 있는 나 자신에 뭔가 해낸 것 같은 뿌듯함을 느꼈다.
곡을 정복해가는 성취감
정해진 음을 누르면 소리가 나는 피아노와 달리 바이올린은 직접 왼손으로 음정을 짚고 오른손으로 활을 그어 소리를 내는 찰현악기이다. 왼손의 위치가 조금만 벗어나도 전혀 다른 소리가 나고 정확한 음정을 짚어도 활을 제대로 긋지 않으면 예쁜 소리가 나지 않는다. 또한 악기와 연주자에 따라 음색이 전혀 달라지기도 하고 똑같은 악기라도 사용하는 현이나 활에 따라서 소리가 완전히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배우기 어렵지만,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악기이기도 하다. 분명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시작한 취미생활인데 사실 아직도 가끔 연습을 해도 좋은 소리가 나지 않고 생각만큼 늘지 않는 실력 때문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연주할 수 있는 곡이 하나씩 늘어갈 때 느끼는 성취감은 일상에 큰 활력이 된다. 일 생각에 머리가 복잡하고 지칠 때 바이올린을 잡고 직접 내는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잡생각과 불안감을 잊게 된다.
합주의 매력에 빠지다
악기연주의 또 다른 장점은 합주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혼자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지루하기도 하고 의지가 약해질 때가 많은데, 취미가 같은 사람들과 함께 연주하다 보면 친목을 쌓을 수 있고 연주에 대한 큰 동기부여가 된다.
2018년, 나는 우연한 기회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 입단하게 되었고 곧 악기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내는 소리와 합주의 매력에 빠졌다. 항상 혼자 연습하고 레슨받는 것이 익숙하다 보니 처음엔 악보를 보는 것도, 박자를 세는 것도, 다른 악기의 소리를 듣는 것도 모두 어색하고 힘들었지만 각기 다른 악기의 한음 한음이 쌓여 하나의 곡이 연주될 때의 감동은 직접 연주하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아닌가 싶다. 물론 프로 연주자들과 비교할 수 없는 부족한 실력이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프로나 다름없는 사람들을 보며 개인적으로 배우고 느끼는 점도 참 많다. 매년 2번씩 준비하던 정기연주는 코로나로 지난 2년 동안 잠시 중단되었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지난 4월, 드디어 다시 무대에 올랐다. 연습은 고되고 힘들지만 잘했든 못했든 무대에 올라 모든 곡을 완주했을 때 느끼는 보람과 희열은 직접 무대에 올라 본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지 않을까 싶다. 매번 정기연주회를 준비하면서 ‘힘들다, 다음엔 그만해야지.’ 생각하면서도 벌써 다섯 번째 연주를 마친 나를 보면 그동안의 힘든 연습을 모두 잊을 만큼 무대 위에서 직접 연주하는 음악은 감동적이고 매력적이다. 그 감정을 잊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다음 연주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면 이번 공연의 주제였던 ‘all is well’처럼 악기연주는 내게 확실히 큰 위로와 힐링을 주는 것 같다.
오케스트라 입문하기
나도 활동하기 전엔 잘 몰랐는데,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200개도 넘는다고 한다. 바이올린의 장점 중 하나는 오케스트라 내 가장 많은 멤버로 구성되어 있고 오케스트라의 주인공이라 불리며 주로 메인 멜로디를 연주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른 악기에 비해 입단하기도 쉽고 나 대신 연주해줄 수 있는 잘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내 실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없는 어려운 부분이 나오더라도 마치 내가 연주하는 것처럼 눈치껏 옆 사람을 따라 열심히 활을 그으며, ‘활씽크’를 하면 된다. 합주로 연주할 수 있는 곡의 숫자가 훨씬 많은 만큼 꼭 바이올린이 아니더라도 악기를 배우고 있다면 주위 오케스트라나 소규모 모임을 통해 합주의 즐거움을 느껴보길 추천하고 싶다.
이경민 차장의 연주하는 모습.
인생곡을 향해 한 걸음씩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에 지쳐 색다른 변화를 주고 싶을 때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배워보기를 추천한다. 실제로 요즘 취미생활을 즐기는 성인들이 많이 늘어나면서 악기연주에 대한 관심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나는 제일 대중적이면서도 뭔가 있어 보이고(?) 서정적이면서 화려하고 때로는 날카로운 음색이 좋아 바이올린을 선택했다.
가끔 지인들이 악기를 배우는데 돈이 많이 들어서 배우고 싶어도 못 배우겠다는 말을 많이 한다. 물론 저렴하다 할 수 없지만 다른 취미생활과 비교해보면 비싼 편도 아니다. 또한 바이올린의 경우 피아노 다음으로 대중적인 악기인 만큼 10만 원 이하의 입문자용 악기도 많고 요즘은 악기를 대여해주는 성인전문 음악학원들도 많아서 본인 악기가 없어도 마음만 있다면 쉽게 시작할 수 있다.
얼마 전 나는 나의 인생곡 중 하나인 몬티의 ‘차르다시’ 레슨을 드디어 끝냈다. 이제 막 악보를 읽어본 수준이라 누군가에게 들려주려면 아직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하지만, ‘차르다시’라는 곡이 내게 주는 의미가 남달랐기에 취미생활로 즐길 수 있는 무언가 있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나 자신을 위해 꾸준히 투자하고 있는 스스로를 칭찬하며 조금 느려도 지금처럼 계속하다 보면 한 10년 후에는 바이올린을 다시 시작하게 해준 또 다른 인생곡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도 연주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이경민 차장이 참여했던 공연 포스터들.
관련 컨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