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생존법
‘노잼 시기’를 견디는 자가 처방전
업무에 적응하는 신입 땐 긴장 가득해 힘이 들더니, 일 좀 할 만하니 스멀스멀 다가오는 권태가 고민이라면? 이렇게 고인 물이 될까 두렵다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조금 생기 있게 만들고, 사라져가는 의욕을 북돋는 방법, 그리 어렵지 않다.
이두형(정신과 의사, <내가 나인 게 싫을 때 읽는 책> 저자)
“~만 하면 행복해지겠지”
어린 시절 고된 수험생활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버티게 한 원동력은 ‘~만 하면 행복해지겠지.’라는 생각이었다. 대학에만 들어가면, 학교만 졸업하면, 취직하고 돈만 벌기 시작하면…. 세상을 처음 배우는 시기에 집과 학교에서 듣고 자란 이야기였다. 우리는 대체로 그 말 하나만 믿고 삶을 견뎌왔다.
과거의 나는 ‘그렇게 견디면’ 뭐가 된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뭐라도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행복에 대해 잘 알진 못했지만, ‘그때가 되면 행복해질 거고, 내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믿었다. 사실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 이외에 삶의 다른 원칙을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번듯한 직업을 구하는 것은 ‘~만 하면’이라는 생각의 정점이었다. 명절이든 친구끼리의 모임에서든 더 이상 나의 삶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 행복은 내게 가장 멀게 느껴졌다. 사회 초년생인 나는 여전히 가난했고, 외로웠고, 두려웠다. 이 정도의 나이와 이 정도의 성과면 충분히 행복해야 하는데, 왜 아닐까? 막막하고 지겨웠다.
“이게 다일까?” 매너리즘이 오는 곳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하는 것만으로 행복하도록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져 있다면 참 편할 것 같다. 아마도 세상에 가득한 수많은 형태의 우울과 불안 중 대부분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여긴다. 안정적인 직업을 얻는 것은 당장의 생계를 해결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을 주나, 그 안도감이 곧 행복은 아니다. 예측할 수 없고 완벽할 수 없는 것이 삶이기에 불안과 걱정이 완전히 소실되는 일도 없거니와, 인간은 늘 생존 이상의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우리가 해내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만을 가르친다. 그리고 그 해내야 하는 일에 끝은 없다. 입시, 대학을 가면 취직을 해야 하고, 겨우 직장을 구하면 재산을 모아야 하며, 불가능에 가깝지만 겨우 집 한 채라도 구하면 빚더미에 앉게 되고, 빚을 갚기도 벅찬데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식이다. 매너리즘은 ‘그것들을 충족시켜 나가는 것이 삶의 전부일까’라는 회의감에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