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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 함께 그리는 동심원
마음만은 옆에 있을개,
지켜줄 고양! 반려동물 천만 시대, 공존의 방법
귀여운 동물의 세상 무해한 표정과 애교 앞에 무감각한 사람은 드물다. 팍팍한 일상에 이만한 활력소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이 키우는 반려동물의 영상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혼자 있고 싶지만 외롭기는 싫은’ 사람들이 ‘마음에 위안은 주지만 책임까진 필요 없는 관계’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윤진아
‘나만 없어, 고양이’
딱히 하는 일 없이 누워 있다가 때 되면 사료 먹고 장난감 갖고 좀 놀다 다시 잔다. 그 별일 없는 일상이 너무 사랑스러운 나머지 ‘심장을 뿌신다’며 환호한다. 수백만 팔로워를 거느리며 광고도 찍고, 책도 내고, 팬미팅의 일종인 ‘산책회’나 ‘발도장 사인회’도 연다. 요즘 SNS를 평정한 스타펫과 랜선집사 이야기다.
‘남의 반려동물’을 보며 심리적 안정감을 채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만날 사람도 시간도 없어 외로운 현대인에게 ‘랜선집사’는 썩 합리적인 대안이다. 동물을 직접 키우지 않고 소셜 미디어 영상을 보며 반려동물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을 가리켜 ‘뷰니멀족’(View와 Animal의 합성어)’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이들은 시간·공간·비용 문제, 가족 구성원의 반대, 알러지 등의 이유로 동물을 키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리 양육을 넘어 ‘덕질’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도 많다. 아이돌의 음반을 사듯 캐릭터 상품을 구매하고, 굿즈를 사면 기부가 되는 이벤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옷·간식·장난감 등 선물도 보내고, 라이브 방송에 참여해 ‘장난감 갖고 노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개, 고양이에게 뭘 이렇게까지 해?’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고 마음이 편해지는 ‘랜선 너머 내 새끼’에게 더 좋은 걸 먹이고 입히고 싶은 게 랜선집사의 마음이다.
덕질 부르는 ‘랜선 내 새끼’들
도랑에 빠졌다 구조된 ‘인절미’(팔로워 63만 명)도 견생역전의 아이콘이다. 현재 보호자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개를 주웠는데 어떡해야 하냐?’는 문의를 올린 후 일약 스타가 돼 방송 출연은 물론 광고까지 찍었다. ‘진주강씨 26대손 강백호’로 불리는 웰시코기 ‘백호’는 유튜브·트위터·인스타그램 도합 77만 명의 팔로워를 둔 핵인싸 강아지다. 백호에겐 ‘호랑이’라는 이름의 고양이 동생이 있는데, 랜선집사들은 둘을 합쳐 ‘백호랑이’라고 부른다. 굿즈 판매수익금을 유기견보호소에 기부하는데, 백호랑이가 2020년에 기부한 금액만 1억 원에 달한다.
랜선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은 서점가로 이어진다. 달리와 보호자의 이야기가 실린 <달려라, 달리!>, 82만 구독자의 심장을 저격한 푸들 강아지 이야기 <속삭이는 몽자>를 비롯해, 제주 고양이 히끄의 일상을 담은 <히끄네 집>은 2017년 출간 당시 인터넷 교보문고 종합 판매량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일명 ‘멍무룩 강아지’로 유명세를 탄 ‘달리’(팔로워 33만 명)는 한쪽 다리를 잃고 버려진 유기견이었지만,
지금의 보호자를 만나 국내는 물론 해외여행 까지 즐기며 인천국제공항 명예홍보견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동물들은 괜찮을까? ‘함께’의 의미
랜선집사가 늘어난 이유는 개인화된 사회에서 찾을 수 있다. ‘최소한의 에너지로 외로움을 해결하려는 욕구’가 만든 트렌드라는 분석도 눈길을 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만 접속하고 내가 가능할 때만 사랑해 주는 ‘간접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마음에 들면 관계를 유지하고 불편해지면 쉽게 관계를 차단할 수 있다.
급증하는 반려동물 콘텐츠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귀여운 모습만 노출되다 보니 동물을 키우는 일이 쉽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동물학대 논란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실제로, 촬영을 위해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는 경우도 많고, 동물의 습성에 반하거나 잘못된 정보도 무분별하게 퍼진다. 전문가들은 “자극적인 콘텐츠가 높은 조회 수와 수익으로 연결되는 플랫폼의 구조적 문제”라며 “성숙한 반려동물 문화 정착을 위해 법적·교육적·제도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잘못된 영상을 감시하고 지적하는 시청자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한편, 뷰니멀족이 늘면서 반려동물의 범위도 넓어졌다. 요즘은 수달, 오리, 고슴도치, 달팽이 등 다양한 동물이 ‘반려동물’로 등장한다. 순기능도 있다. 개개의 동물에 대한 관심이 동물권으로 확대됐고,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을 명시한 민법개정안이 지난해 통과됐다. 사고파는 ‘물건’이 아닌 ‘생명’으로서 법적 지위를 인정받은 것이다. 뷰니멀족을 겨냥한 시장은 꾸준히 성장 중이다. 먼발치에서 관찰만 하던 방식에서 좀 더 직접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반려동물 육성 모바일 게임’도 속속 개발되고 있는데, 게임 속 동물과 함께 놀고 먹고 산책까지 다녀올 수 있다. 각박한 현실에 한 줄기 위안이 필요한 시대, 지금 이 순간에도 온라인에는 ‘짧고 굵은 힐링’ 스위치를 켠 랜선집사가 차고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