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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의 과학도들은
왜 음악을 배울까?
과학기술과 예술이 만났을 때
90명이 넘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미국의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는 특별한 융합 교육으로 과학기술과 예술·인문학의 접점을 만든다. 추상적 사고력을 기르기 위해 작곡과 화성학을 배우고, 감정의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 오페라를 배운다. 과학자들이 ‘관찰되는 사실’ 밖의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면? 예술가들이 과학자의 방법론을 배울 수 있다면 세상의 많은 문제는 보다 쉽게, 그리고 아름답게 풀어질지도 모른다.
허미선(브릿지경제 문화부장)
어떤 이야기가 첨단 네트워크를 만났을 때
애플TV+의 ‘파친코’를 보자. 오랜 세월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 알리기에 힘썼지만 네트워크를 핵심으로 한 OTT에 실린 ‘파친코’는 일제의 만행과 강제 노역, 쌀 수탈 등 침략의 역사를 단박에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는 한국에서는 천대받던 글로벌 OTT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 초 네트워크 시대를 맞으면서 급성장했고, 그에 실린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등 한국 콘텐츠들이 주목받으면서 가능했던 일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한 미술품 분할소유, NFT 등은 화랑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미술시장의 패러다임을 단박에 변화시켰고 MZ 세대들을 유입시키며 때 아닌 르네상스를 맞았다.
기술의 첨단화와 인문학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기술의 발전은 편리함과 여유를 제공하고 인간은 ‘먹고 사는 것’ 보다 ‘인간으로 존재하기’ ‘오롯이 나로 서기’에 집중하게 된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중시하고 아날로그를 추구하게 된다. 휴머니즘이 ‘포스트’, ‘트랜스’라는 수식어를 달고 진화하며 핵심 가치로 자리매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 자신 사랑하기’라는 스토리텔링으로 시작해 글로벌 슈퍼스타로 성장 중인 BTS가 그렇고, 최근 LP시장의 호황이 그렇다. 이에 기술 발전은 인문학, 예술성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의 바이올린 실력
사실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는 유명 과학자, 유수의 글로벌 대학 커리큘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모차르트 전문가’로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를 즐긴 것으로 알려진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그의 음악에서 상대성이론의 영감을 얻었다. 양자역학의 기초를 세운 막스 플랑크(Max Planck)는 작곡가이자 지휘자이기도 했다.
90여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이 과학, 기술, 공학, 수학 등만큼이나 인문학과 예술 교육에 비중을 두는 이유도 그래서다. 라파엘 레이프 MIT 학장의 말처럼 물 부족, 식량난, 온난화, 디지털 러닝 등 과학 기술의 발달로 생긴 문제는 대개 인간에 대한 이해의 결여에서 비롯된다. 물론 그 문제들은 과학이나 공학으로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그 해결의 시작은 문화, 경제, 정치 등을 고려하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음악사부터 화성학, 연주 실기까지
MIT의 교육이념은 ‘창조’ 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예술과목을 꾸준히 늘려온 MIT의 음악수업은 ‘서양음악사 입문’ ‘오페라’ ‘비틀스’ ‘월드뮤직 입문’ ‘아프리카 음악’ 등 문화·역사, ‘화성과 대위법’ ‘조성 음악작곡’ 등의 작곡·이론, 디지털 오디오 알고리즘 해석을 배우는 ‘음악 프로세싱 입문’, ‘전자음악 작곡’ 등 음악테크놀로지, 오케스트라·재즈앙상블 등 연주 실기까지 본격적이며 전문적이다.
MIT의 키릴 마칸 음악학과장은 “대부분의 엔지니어는 뛰어난 문제해결사가 되려면 예술이나 문학 분야의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기술이나 과학 발달로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는 인간성의 이해나 관심의 결여 등 엔지니어 이외의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음악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분야 간 융합이 품은 가능성
아름다운 음악, 새로운 화성 등의 구성과 구조를 이해하는 음악이론은 낯선 상황에서 발생한 문제에 하향식 접근을 하는 공학 분야의 사고법을 닮았다. 슈만의 ‘어린이를 위한 앨범’ 중 제21곡의 18마디 소품을 하나하나 분해해 진행과 모티프, 도입부의 불협화음, 독특한 울림과 주목해야하는 화음, 예상을 뒤집는 전조, 의외성의 카덴차 등까지를 분석해 예술의 자유로움과 모호함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뼈대와 구조를 배우는 식이다. 이는 어떤 패턴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단순한 체계나 구조를 도출하는 수학적 사고방식을 향상시키곤 한다.
“창조는 구조를 파악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MIT의 네이슨 램 교수는 “플라톤의 저서에도 음악이론, 수학, 천문학이 같은 장에 묶여 있다”며 MIT에 앞서 고대 그리스에서도 음악이론은 과학의 일부로 분류됐다고 전한다.
인문학적 통찰, 예술적 영감을 바탕으로 한 기술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이어진다. 기술이 발전하고 최첨단화될수록 인문학과 예술의 융합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음악을 비롯한 예술, 문화가 그렇듯 과학과 기술 역시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공감, 교류가 근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