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승용 ICT기획처 인프라계획실 대리
작년 7월 친동생의 방에서 수상한 종이컵을 보았습니다.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친한 후배에게 달팽이를 분양받았다고 합니다. 새끼손톱만 한 달팽이 스무 마리 정도를 보고 “뭐 이런 걸
받아왔냐”고 핀잔을 주고 누웠습니다.
잠시 뒤 동생은 스마트폰을 보며 누워있던 제 손에 갑작스레 달팽이 한 마리를 올려주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달팽이가 신기해서 가만히 있었더니 껍데기 속에 숨어있던 아이가 천천히
몸을 피고 얼굴과 눈을 내밀었습니다. 본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려고 느릿느릿 나아가는 달팽이를 저도 모르게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동생이 그걸 보더니 몇 마리 가져가겠냐고 묻길래
덥석 ‘응’ 하고 받아버렸습니다.
집으로 가져와서는 곧장 이름을 ‘에스카르고’(애칭 : 에고쓰)로 지어주고, 이 아이들은 어떤 종류이며 어떤 환경에서 키워야 하고 어떤 먹이를 줘야하는지 또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공부했습니다.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는 생물이었기에 놀라운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영양 섭취가 없어도 일주일 정도는 문제없을 정도로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 수분이 중요해서 염분은 무조건
피해야 하고 습도가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점, 가장 놀라웠던 점은 달팽이마다 식성과 성격이 다르다는 부분이었습니다.
같은 상추를 줘도 잎사귀 부분부터 먹는 아이가 있고 중간이나 끝단부터 먹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또한 자기 취향에 맞지 않는 것을 주면 아예 먹지 않는 단호한 모습도 보였습니다.
무취에 무소음이라 출근 후에도 아무 걱정이 없고 며칠 집을 비워도 괜찮습니다.
요즘은 퇴근하면 에고쓰를 씻겨주며 물놀이도 해주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가만히 보는 것이 일상의 루틴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달팽이를 키우면서 좋은 점은 항상 분 단위로 시간을 재고 시간에 쫓기던 일상에서 여유로움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쁘게 움직이려는 저와 상반되는 느긋한 달팽이를 보며 마음속에
여유를 계속 남겨놓으려고 합니다.
언제부턴가 시간만 나면 무언가를 자꾸 하려는 것 같습니다. 틈만 나면 괜히 스마트폰을 보며 괜히 남들은 어떻게 지내는가 구경하고 내 주식은 어떤 상황인가 확인합니다. 물론 나쁜
것들은 아니지만 이런 것들이 쌓여서 마음속 여유를 갉아먹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저에게 ‘에스카르고’와의 만남은 신선한 경험입니다. 이젠 일부러라도 스마트폰을 놓고 TV를 끄고 여유로움을 갖고자 합니다.
사우 여러분도 꼭 달팽이 양육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방법을 찾아 제가 느끼는 이 여유로움을 느껴보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