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처 김현종 차장 &
성동전력지사 이선희 차장 가족
글. 조은겸 자유기고가 사진. 신진호
꽁꽁 얼어붙은 영하의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1월의 어느 오후. 선남선녀 부부와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로 태어나 어느덧 키가 부부만큼 자란 중학생 딸과 초등학생 아들, 네 사람이
난생처음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야외촬영을 위해 마당으로 나가자 얇은 비단옷깃 사이로 냉기가 스며들지만, 손을 꼬옥 맞잡고 온기를 전하며 견뎌본다.
“자, 여기 보세요.” 가족은 동시에 카메라를 바라본다. 플래시가 터지고, 만개한 동백꽃 같은 네 사람의 밝은 미소가 사진 속에서 환하게 피어난다.
막내 재빈이에게 물었다. 타임캡슐에 꼭 하나만 담을 수 있다면 뭘 담을 거고, 언제 열어볼 거냐고. 그런데 재빈이에게서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가족사진을 담을 거고 나중에 한…
80년 후에 열어볼래요. 할아버지가 되어도 지금 이 순간을 잊지않고 기억하려고요.” 아들의 어른스러운 대답에 현종 씨는 새삼 놀란다. 우리 아들 기저귀 갈아주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컸나 싶다.
현종·선희 씨 부부는 한전에서 만나 사랑을 키웠다. 연애를 시작하고, 미래를 약속하고, 결혼하고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는 다시 못올 아름다운 순간들을 함께했다. 밤마다 한 뼘씩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을 매일 기록하고 싶어 사진을 찍었다. 구글포토 용량이 3TB를 넘길 만큼 많은 추억이 쌓이는 동안,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는 속 깊은 청소년으로
무럭무럭 자랐다.
예나 지금이나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꼽으라 하면 가족이다. 결혼식 이후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한복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온 가족이
함께하는 특별한 이 시간은 훗날 부부와 아이들에게 바쁜 삶 속에 꺼내어 볼 수 있는 소중한 위로가 될 것임을 알기에 인생사진관에 사연을 보냈다.
아내 이선희 씨는 연분홍빛 한복에 화사한 메이크업으로 단장하고, 딸은 커다란 꽃을 아롱아롱 수놓은 한복을 입고 단아하게 머리를 땋았다. 현종 씨와 아들도 한복을 고르고 말끔하게
단장하며 촬영 준비로 분주하다. 큰딸은 별말 안 해도 거울 속 자기 모습이 싫지 않은 눈치다. 어릴 적 명절 때 입어본 이후 오랜만에 입는 한복이 마음에 드는지, 옷매무시를
가다듬으며 빙그레 미소 짓는다.
현종씨와 그에게 세상 가장 소중한 두 여자, 세 사람이 나란히 카메라 앞에 섰다
자녀들이 아주 어릴 적부터 네 사람은 주말마다 야외로 나갔다. 맞벌이 부부라 주중에 시간을 같이 못 보내니, 주말은 오롯이 가족과 함께였다. 주로 박물관에 가서 각종 체험시설과
휴게시설을 이용하며 하루를 즐겁게 보내곤 했다.
가족의 단골 나들이 코스 두 번째는 도서관이다. 동대문구 도서관에서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책을 대여하여 책 읽는 가족으로 선정되었다. 국립어린이도서관, 미사도서관, 송파책박물관,
헤이리 책마을 등 거리가 먼 도서관으로도 나들이 겸 다녀오곤 한다. 그 영향으로 딸은 독서를 좋아하는 아이로 자랐다. 사진 촬영 중 쉬는 시간 중간중간에도 책을 꺼내 들고 틈틈이
읽는다.
이들은 문화생활뿐 아니라 스포츠도 즐기는 활동적인 가족이다. 소백산과 백운대 정상을 가족이 함께 올랐다. 가족과 함께라면 무엇을 하건 어디에 있건 행복하다. 관심사가 풍부한 아들은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아직 꿈을 정하지 못했다. 어딜 가도 즐겁고, 뭘 해도 재미있단다. 하지만 재빈이가 그 무엇보다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란다.
웃고 떠들며 메이크업과 헤어를 하는 동안 촬영 준비가 완료되었다. 평소 자주 함께 시간을 보내왔기 때문인지 사진 촬영이 어색하지 않다. 플래시가 터지는 순간 밝게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본다. 포즈를 취하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건 쉽지 않지만 촬영기사의 지시대로 손발을 척척 맞추더니 금세 촬영을 마쳤다. 촬영이 끝난 후 네 사람은 한 화면을 함께 나란히
바라본다.
“엄마, 이렇게 차려입으니까 꼭 다른 사람 같아요. 아빠, 한복 잘 어울리시네요. 재빈이 멋지다!” “륜하, 정말 예쁘다”며 서로에 대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사진 속 네
사람은 고운 얼굴선과 웃는 모습이 서로를 똑 닮은, 누가 봐도 영락없는 현종 씨네 가족이다.
대화가 끊임없이 오가는 다정한 부자지간
연애 시절부터 같은 곳을 바라보며 미래를 약속한
천생배필 잉꼬부부
최근 기후변화로 겪는 지구의 아픔을 바라보며, 부부는 장차 아들딸에게 물려줄 미래의 세상에 대한 고민에 빠지고는 한다. 세상 대부분의 것들은 운만으로 이뤄지진 않는다.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오늘은 그동안 두 사람이 땀흘려 일하고 열심히 가정을 가꿔온 노력에 의한 결과다. 발전소를 가동하고 에너지를 생산하는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가 전기를 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기 없으면 안 되는 세상이기에, 마음껏 누리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국민들의 편의를 위해 묵묵히 노력해온 엄마와
아빠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생각이 깊은 딸은 엄마와 아빠가 하는 일에 조용히 존경을 표한다.
현종 씨는 스스로를 천운을 가진 사람이라 말했다. 지난해 교통사고가 있었는데 차량이 완파될 만큼 큰 사고였음에도 차에서 멀쩡히 걸어 나와 치료받고 일주일 만에 회복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비슷한 일을 초등학교 6학년 때도 경험했다. “커다란 사고에서 무사히 살아남는 행운이 두 번이나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어떤 소명을 맡기셨는지 늘 생각해보고는
합니다. 국민들의 삶에 꼭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는 한국전력처럼 저는 우리 가족이 건강하고 무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불을 밝혀주는 전기 같은 남편이자 아빠가 되고 싶어요.”
현종 씨는 후배들에게도 전하고픈 말이 있다고 한다. 지난 17년부터 19년까지 인재개발원에서 신입사무기초 담임과 요금강의를 진행했다. 그는 이때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보람되고
재미있었던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그때 당시 강의를 들었던 사우들이 승진 한 뒤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고. 그 사우들에게 “항상 응원하고 있고, 고마웠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현종 씨 부부는 양가에 방문할 때마다 어르신들의 모습을 촬영해두고는 한다. 세월의 무게에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 서글프고, 그래서 부모님과 함께하는 이
순간을 추억할 수 있는 사진으로 담는 것은 두 사람에게 더없이 소중한 일이기 때문이다.
“저희의 어떠한 모습도 부모님께서 사랑해주신다는 것을 자녀를 키우며 알게 되었습니다. 인생사진관에 나올 기회를 주셔서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