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테마가 있는 여행

맥주와 축구로
채우는 가을밤
독일 뮌헨

글. 이지혜 여행전문기자

‘독일인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 ‘심장을 가진 세계도시’, ‘학문과 예술의 도시’, ‘독일 최대의 산업도시’, ‘독일 전자산업의 메카’… 바이에른주 최대 도시이자 독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뮌헨은 무수한 별칭을 가진 여행지다. 하지만 올가을, 뮌헨을 찾는 여행자의 대부분은 이보다 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바로 맥주와 축구다.

순수법에서 시작된
독일 맥주 이야기

전쟁의 아픔과 복원의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온 뮌헨에서 맥주는 독일인의 변하지 않는 주식이었다. 1158년 도시로 설립된 뮌헨에서 1280년 양조업에 세금을 부과하는 법이 발효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지금은 폐지된 ‘맥주 순수법’이 뮌헨에서 시작된 것만 봐도 이 도시가 얼마나 맥주에 진심인지 알 수 있다.

사실 맥주 순수법은 꽤 흥미로운 이야기다. 물과 맥아(싹튼 보리), 홉으로만 맥주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1516년 법이 공표된 이후 맥주 판매에 대한 기준이 확립됐다. 당시엔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미생물의 존재를 몰랐다. 때문에 효모 대신 발효 과정에서 나오는 자연 침전물을 효모로 사용하는 램빅(Lambic)방식을 이용했다.

효모의 유무를 떠나서 맥주 순수법은 독일 맥주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까지는 맥주의 독특한 맛을 위해 종이, 물고기 부레 심지어 사람의 손가락까지 넣었다는 설도 있었다. 위생 개념이 없었던 양조장들은 맥주 순수법이 공표된 이후 오로지 주어진 재료만 가지고 맛을 승부해야 했다.

결국 맥주 순수령은 양조 기술의 표준화를 일으킨 식품위생법이나 다름없었다. 이 법은 1993년 임시 독일 맥주법으로 바뀔 때까지 약 500년을 이어왔다. 지금도 발아하지 않은 보리를 맥주에 넣을 수 없는 것은 유효하지만 말이다.

약 1,000년 전 대륙을 동서로 가르는 유럽의 젖줄 다뉴브강의 지류, 이자르강에서는 새로운 도시가 움텄다.
이 지역을 통치하던 바이에른 공작은 상품 교역에 따른 통과세를 독점하기 위해 이자르강 강가의 베네딕트 수도원 인근에 다리를 건설했다.
그 후 도시는 바이에른 영지가 둘로 나눠지고 통일된 바이에른 왕국의 수도가
될 때까지 약 400년의 세월 동안 건축과 예술을 비롯해 무역과 르네상스의 심장으로 성장한다. 뮌헨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광란의 맥주 파티, 옥토버페스트

매년 9월과 10월 사이 열리는 옥토버페스트는 맥주의 상징과 같은 축제다. 1810년 바이에른 왕세자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시작돼 이듬해부터 농업을 장려하기 위한 각종 이벤트가 곁들어지며 200여 년간 풍성하게 발전했다. 춤과 음악 사이에서 특산품이었던 맥주가 즐거움을 더한 것은 당연했다.

축제는 뮌헨 시장이 첫 번째 맥주 통의 꼭지를 따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기간에 먹는 맥주는 일반 맥주보다 알코올 도수가 1% 정도 높다. 작정하고 취한다는 말이 좀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여행자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민속 의상을 차려입은 독일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커다란 맥주잔을 손에 쥐고 과격한 건배를 나눈다.

올해 옥토버페스트는 9월 16일부터 10월 3일까지 열렸다. 총 12만 석 규모의 17개 대규모 천막에서 전통 양조장의 맥주가 쏟아졌다. 뮌헨에서 가장 유명한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auhaus)와 아우쿠스티너(Augustiner)부터 풍부하고 크리미한 밀맥주 파울라너(Paulaner), 600여 년을 이어온 슈파텐(Spaten) 등 다양한 뮌헨 맥주가 특별하게 제공된 것. 또 전통 방식으로 만든 소시지, 독일식 족발 슈바인스학센을 비롯해 다양한 비건 요리까지 총 39개 회사가 축제 기간 내내 음식을 판매하며 성황리에 축제를 마무리했다.

유럽 축구의
심장에서 뛰는
코리안리거

뮌헨의 가을 여행은 맥주로만 끝나지 않는다. 뮌헨에서 축구를 뺀다면 여행은 반만 한 것이나 다름없다. 분데스리가는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하다. 사실 분데스리가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스포츠 리그를 뜻하는데, 축구뿐만 아니라 핸드볼이나 야구, 배구, 농구리그 등에도 사용된다. 하지만 축구리그가 압도적으로 유명한 만큼 독일의 축구리그를 대표하는 말로 통용된다.

11시즌 연속 우승을 기록하며 분데스리가를 지배하는 팀이 바로 ‘FC 바이에른 뮌헨’이다. 분데스리가는 물론 챔피언스리그, 유러피언컵 등 굵직한 대회에서도 여러 번 우승할 정도로 유럽 전체에서도 명문으로 손꼽히는 클럽이다. 한국인에겐 차범근 선수로만 기억되던 분데스리가에 얼마 전 김민재 선수가 이름을 더했다. 게다가 다른 클럽도 아닌 FC 바이에른 뮌헨의 주전급 수비수다.

유럽리그에 진출하는 한국 선수가 많아지며 축구 관람 위주의 여행객도 늘었다. 세계 최정상 클럽에서 선발로 뛰는 한국 수비수. 한국의 축구 팬들이 뮌헨으로 몰리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테레지엔비제 광장에서 FC 바이에른 뮌헨의 경기장 알리안츠 아레나는 단 12km 떨어져 있다. 흥취에 젖어 추억을 채울 적당한 거리다. 올 가을, 뮌헨으로 가는데 이보다 더 큰 이유가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