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테마가 있는 여행

서퍼들의
숨은 낙원,
포르투갈
에리세이라

글. 이지혜 여행전문기자

유럽 대륙의 서쪽 끝.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포르투갈의 서쪽 경계에는 저마다의 파도를 기다리는 수많은 서퍼가 둥둥 떠 있다. 서핑의 최전선. 그 한복판으로 단숨에 내달리고 싶다면 목적지를 에리세이라로 설정하자.

아름다운 파도를 품은 유럽 최초의 서핑 보호 구역

포르투갈에는 수도 리스본을 기준으로 남북에 걸쳐 수십 개의 서핑 도시와 수백 개의 서핑 포인트가 있다. 그 중 에리세이라가 서핑으로 가는 관문이자 성지로 여겨지는 이유는 이 소도시가 유럽에서 첫 번째로 서핑 보호 구역(World Surfing Reserves)으로 선정될 만큼 멋진 파도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서핑 보호 구역이란 다양한 국적의 서퍼와 과학자를 비롯해 환경 운동가들이 전 세계 서핑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비정부기구, 세이브 더 웨이브즈 코얼리션(Save the Waves Coalition)에서 지정한 구역을 말한다. 세이브 더 웨이브즈 코얼리션은 현재까지 미국 말리부, 호주 맨리, 페루 완차코를 비롯한 10여 개의 해변을 서핑 보호 구역으로 지정했다.

지난 2011년, 이 단체는 에리세이라의 뛰어난 파도 품질과 밀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이곳을 보호하기로 했다. 사실 훨씬 전부터 에리세이라는 탄성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질 좋은 파도로 유명했다. 포르투갈 최초의 서핑 클럽이 에리세이라에서 탄생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게다가 서유럽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마을과 해안도로를 따라 절벽 밑으로 이어지는 서핑 포인트는 경이로울 정도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포르투갈.
대서양 넘어 미지의 땅을 갈망했던
이 나라는 특유의 탐험 정신으로
15세기 신대륙 발견에 앞장섰고,
그 결과 전 세계를 상대로 활발한 무역을 펼쳤다. 풍파에 맞서 파도를 타고 기꺼이 신대륙으로 나갔던 포르투갈의 정신. 리스본에서 차로
40분이면 닿는 바닷가 소도시 에리세이라에서
그 정수(精髓)를 발견할 수 있다.

초보부터 고급 서퍼까지 모두 OK!

포르투갈의 서핑을 알려면 최소한 192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부셀라스의 국립 영상 보관소에 있는 28초짜리 영상에는 레사 다 팔메이라(Leça da Palmeira) 해변에서 한 무리의 남자들이 서핑하고 있다. 이 영상은 유럽에서 알려진 가장 오래된 서핑 기록으로 등재됐고, 포르투갈을 서핑의 근간으로 단숨에 올려놓았다.

이후 1950년대 들어 수영선수이자 배우로도 활동했던 ‘포르투갈 서핑의 아버지’ 페드로 마르틴스 데 리마(Pedro Martins de Lima)가 서핑의 대중화에 앞장섰고, 에스타도 노보(Estado Novo) 독재 정권이 무너진 1974년부터 국경이 개방되며 전 세계 서퍼들은 포르투갈로 몰려들었다. 미국과 호주에서 온 서퍼들이 매력적인 파도가 몰아치는 에리세이라로 찾은 것은 당연했다.

에리세이라가 서퍼들에게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수준의 서퍼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파도가 모여 있기 때문이다. 서핑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초보자라면 남쪽에 있는 포즈 두 리잔드로(Foz do Lizandro)와 상 훌리앙(São Julião) 해변에서 안전한 파도를 타자. 중심가에서 해안도로를 타고 10분 정도 달리면 닿는다.

서핑을 즐기는 중급 서퍼라면 고민할 것 없이 에리세이라에서 가장 훌륭한 파도가 친다는 인기 해변, 히베이라 드 일하스(Ribeira d’ilhas beach)로 향하면 된다. 중심가에서 북쪽으로 3km 정도 떨어져 있어 접근이 편할 뿐더러, 포르투갈의 굵직한 서핑 대회가 개최되는 메카인 만큼 샤워실이나 화장실, 서핑스쿨과 레스토랑, 바가 즐비하다. 중심가의 북쪽 끝에 있는 마타두로(Matadouro) 해변도 조용한 휴식을 원하는 중급 서퍼들에게 좋은 포인트다.

숙련된 서퍼라면? 에리세이라는 그야말로 지상낙원이 되어줄 것이다. 북쪽 끝 코소스(Coxos) 해안의 거칠고 긴 파도가 아드레날린을 폭발하게 한다. 코소스에서 조금씩 내려오면 만날 수 있는 크레이지 레프트(Crazy Left), 더 케이브(The cave)같은 해변에서도 익스트림한 서핑을 경험할 수 있다.

와인이 있는 작은 해변마을에서 즐기는 휴식

에리세이라에 치는 대부분의 파도는 빠르게 부서지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롱보드보다는 숏보드가 알맞다. 또 5월부터 9월까지 파도가 작고 잔잔해 초보자가 타기 좋지만, 이곳의 서핑 성수기는 너무 작지도, 그렇다고 거칠지도 않는 파도가 치는 9월과 10월이다. 한겨울의 파도는 무척 거칠어 숙련된 서퍼에게만 추천한다.

에리세이라에선 거의 모든 숙박 시설에서 서핑을 배울 수 있다. 작은 게스트하우스부터 호텔까지, 저마다 서핑 스쿨을 운영하거나 연계해 준다. 특히 최근에는 고급 호텔이 앞다퉈 문을 열고 있어 서핑이 목적이 아니었던 관광객도 아름다운 바다를 보며 럭셔리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찾았다가 서핑에 입문하는 경우가 많다고.

사실 에리세이라는 서핑의 성지이기 이전에 19세기 포르투갈에서 가장 큰 와인 수출지역 중 하나였다. 덕분에 이곳에선 다양한 와인을 시음하거나 투어 할 수 있다. 또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클럽 우리코(Ouriço)에서 환상적인 나이트 라이프도 즐겨보자. 낮이 되면 산악자전거를 타거나 아침 요가를 체험할 수 있는 스폿도 많다.

에리세이라에 닿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웜 슈트를 입은 채 해변의 모래사장에 앉아 보길. 그리고 대항해시대를 열듯 파도를 향해 천천히 해엄치길. 부디 당신만을 위한 파도가 나타나길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