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춘애 여행작가(‘쿠바 홀리데이’ 저자)
세계 몇 없는 공산주의 국가, 카리브해, 체 게바라, 올드카까지. 쿠바를 상징하는 것들은 많다. 그 중에서도 쿠바의 올드카와 재즈를 중심으로 쿠바여행을 떠나 본다.
개도 고양이도 춤춘다는 곳, 세상 최고 낭만주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 쿠바. 그런 쿠바가 요즘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도 크지만 2021년 미국은 쿠바를 테러지원국 리스트에 추가했다. 여행객이 급격히 줄었고 경제는 한없이 곤두박질 중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1년 시행한 이중 화폐제도 폐지 후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랐다. 그래도 쿠바는 웃는다. 한없이 가벼워진 주머니에도 여전히 로맨스는 있고 음악은 흐른다. 무엇이 쿠바를 춤추게 할까. 알 수 없는 무한 매력의 나라, 쿠바.
쿠바의 거리에선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멋진 클래식 카다. 그래서 ‘움직이는 자동차 박물관’이라 부른다. 왜 유독 쿠바엔 이렇게 오래된 클래식 카가 많을까? 그 답을 찾으려면
시간을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야 한다.
쿠바는 1898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다. 이후 3년간의 미군정이 있었고 1902년 쿠바 공화국이 설립됐다. 쿠바 혁명이 성공하기 전까지 미국 부자들의 최고 놀이터는 쿠바의 수도
아바나(Havana)였다. 수많은 호텔과 카지노가 세워졌고 아바나의 거리는 미국산 자동차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국산 자동차의 생산연도는 대부분
1950년대다. 1959년 1월 1일, 쿠바 혁명이 성공하고 쿠바 정부는 국유화를 선언했다. 미국인들은 모두 떠났고, 자동차는 남았다. 일흔 살이 훨씬 넘은 미국산 자동차가 쿠바의
화려했던 과거다. 반면 쿠바의 아픈 상처이기도 하다. 이유가 어떻든 쿠바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클래식 카를 타고 말레콘 달리기’다. 여행자들을 유혹하는 형형색색의 클래식
카가 반짝반짝 빛을 내며 여행자를 기다린다. 짙은 코발트색의 대서양을 바라보며 한 시간을 달리는데 비용은 약 50불이다. 쿠바에 간다면 빼놓지 말자, 안 하면 후회할 Must Do
프로그램이다.
수도 아바나의 역사지구는 ‘올드 아바나(Old Havana 또는 Habana Vieja)’라고 부른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역사지구는 쿠바의 역사를 함축하고 있다.
여행자가 가장 많이 몰리는 오비스포 거리(Calle Obispo)를 걷는 것으로 여행은 시작된다. 헤밍웨이가 칵테일 다키리(Daiquiri)를 즐겨 마셨다는 바 엘 플로리디타(El
Floridita)에서부터 음악 소리가 들린다.
쿠바 거리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노래는 아프리칸 리듬, 그러니까 타악기로 구성된 음악이다. 16세기부터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들이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며 부르던 노래이고 그
음악이 스페인식과 섞여 다양한 장르의 음악으로 만들어졌다. 오비스포 거리는 라이브 밴드의 연주로 가득하다. 수준급의 연주를 자랑하는 쿠바인들의 음악은 여행자의 넋을 뺀다. 발걸음은
멈추기 일쑤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가 버릴지도 모른다.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쿠바 음악을 세상에 알렸다. 영화가 개봉하고 20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들의 음악을 찾아 쿠바를 찾는 여행자들이 많다. 쿠바인들이 즐기는
음악과는 거리가 있다고 해도 ‘찬찬 Chan Chan’의 도입부만 들어도 가슴이 콩콩 뛰는 건 어쩔 수 없다. 거리 가득 퍼지는 쿠바의 음악, 말레콘의 파도는 춤을 추고 아바나는
노래한다.
여름이 시작됐다. 한국에서도 여름 칵테일 하면 ‘모히토 Mojito’가 먼저 떠오르기 시작한 시기는 좀 된 것 같다. ‘몰디브에서 모히토 한 잔’이 유행하면서 쿠바 태생의 모히토가
몰디브에서 다시 태어났다. 이유야 어떻든, 쿠바를 대표하는 칵테일은 모히토다. 럼을 베이스로 하는 칵테일, 그러니까 모히토, 다이키리, 쿠바 리브레 그리고 피냐 콜라다는 쿠바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양념 같은 것들이다. 쿠바는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설탕과 럼을 생산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브랜드인 바카디(Bacardi)는 1862년 쿠바의
산티아고 데 쿠바(Santiago de Cuba)에서 처음 럼을 만들었다. 혁명 후 바카디 브랜드는 쿠바를 떠났지만 바카디 럼의 고향은 쿠바다.
현재 쿠바를 대표하는 럼은 아바나 클럽(Havana Club)이다. 아바나 클럽으로 만드는 쿠바의 모히토와 다이키리는 헤밍웨이와 쿠바가 합작한 쿠바 최고의 마케팅 성공작이다. 그가
즐겨 찾았다는 바 엘 플로리디타(El Floridita)와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La Bodeguita del Medio)는 그 한 잔을 마시기 위한 치열한 경쟁과 기다림이 있는
곳이다. 쿠바의 뜨거운 여름 더위에는 시원한 모히토와 다이키리 한 잔이면 족하다. 거기에 라이브 음악이면, 천국이 따로 없다.
수도 아바나의 말레콘은 아바나 사람들의 일상, 사랑 그리고 여행자의 낭만이 있다. 저녁이면 따개비처럼 붙어 있는 사람들, 노을을 보며 럼 한 병을 돌려 마셔도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쿠바 여행은 조금은 불편하고 낯설지만 그들을 이해하고 즐긴다면 세상 어느 곳보다 매력적인 여행의 추억을 만들 수 있다. 말레콘에서 지는 노을 보며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마시며 잠시 돌아보자.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고,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쿠바 여행은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또 다른 매력도 있다. 이번 겨울엔 쿠바에 다시 갈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