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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유일한 주주는지구입니다”
100년 앞을 내다본 빅 픽처
기업경영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큰 흐름이 되고 있다.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 회장은 ESG라는 말이 사용되기 전부터 환경경영을 해왔다. 올해 9월에는 모든 지분을 환경단체에 기부하면서 파타고니아의 성장이 곧 지구를 보호하는 데 힘이 되는 구조를 완성했다. 기업이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다.
곽은영 (우먼타임스 기자)
신뢰를 총알로 장전하라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인 샌드라 서처는 저서 <신뢰를 팔아라>에서 미래를 선점한 기업에는 ‘신뢰자산’이 있다고 말했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통과하면서 기업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신뢰자산을 제대로 쌓고 팔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뢰자산을 총알로 장전하고 성장한 대표적인 기업이 파타고니아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어떻게 신뢰를 얻었을까. 이본 쉬나드 회장은 신뢰를 자연스럽게 얻기를 원한다고 했는데 이를 위해 파타고니아가 선택한 방법은 사회적·환경적 가치를 브랜드에 성공적으로 통합시키는 것이었다. 쉬나드 회장은 자서전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에서 “최상의 제품을 만들고 자연과 환경에 불필요한 해악을 끼치지 않으며 비즈니스를 통해 환경 위기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실천한다”는 방향성을 말했다.
100년 앞을 내다보는 의사결정 방식
패션기업이 환경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기본은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것이다. 파타고니아는 망가져도 다시 고쳐서 입을 수 있는 옷, 세대를 넘어 물려 입을 수 있는 옷을 추구한다. 모든 제품은 환경 철학에 입각해 유기농 원단과 친환경 방식으로 만들고 회사가 적자일 때도 매해 회사 매출의 1%를 ‘지구세(Earth Tax)’로 환경단체에 기부해왔다. 2011년 블랙 프라이데이에는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라는 역설적인 광고 문구를 내걸면서 환경을 위하는 브랜드 가치관을 대중에게 대대적으로 알렸다.
파타고니아는 1973년 창업될 때부터 환경보호에 대한 이상 실현을 좇아왔지만 환경을 좌표로 그 방향성을 더욱 견고하게 설정한 것은 위기의 순간이었다. 쉬나드 회장이 자서전에서 회고한 바에 따르면 파타고니아도 초기에는 제품 수를 늘리고 직영점을 열고 새로운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식의 전형적인 기업 성장 방식을 따라가며 사업을 키웠다. 그러다 1991년 전 세계적으로 찾아온 경제 불황으로 직원의 20%를 해고하면서 사업을 지속해야 할 이유를 찾아야 했다. 그때 택한 것이 7세대 앞을 내다보는 인디언 이로쿼이 부족의 의사결정 방식이었다. 이로쿼이족은 의사결정 과정에 향후 7세대를 대표하는 사람을 포함시켜 100년 후까지 유지할 수 있는 속도로 성장하는 방식을 택한다.
쉬나드 회장은 유지할 능력이 없는 성장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우고 자연과 사회를 위협하는 폭발적인 성장에서 벗어나 ‘지구를 살리는 건강한 성장’에 방점을 찍는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되 불필요한 환경 피해를 유발하지 않으며 사업을 이용해 환경문제를 해결한다’는 내용으로 사명선언문을 변경한 것도 이때의 일이다. 그는 자문했다. 무엇을 위해서 사업을 할 것인가? 그리고 답을 찾았다.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한다.’
새로운 자본주의 형태
환경보호라는 가치를 일관되게 지켜온 쉬나드 회장은 올해 지배구조를 개편하면서 다시 한 번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9월 14일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된 내용은 쉬나드 회장과 일가족이 보유한 회사 지분을 모두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환경보호를 목적으로 설립한 환경단체와 비영리 재단에 양도한다는 것이었다. 30억 달러, 한화 4조 원이 넘는 규모의 파타고니아 주식을 기부한 쉬나드 회장은 “이제 지구가 유일한 우리의 주주”라는 말을 남겼다.
이 통 큰 결정을 내리기 2년 전 쉬나드 회장은 경영진에 ‘사업을 하면 할수록 지구를 살릴 수 있는 새로운 방향성’을 찾으라고 요구했다. 매각과 기업공개가 선택지로 제시됐다. 기업공개를 통해 지분가치를 올리면 기부 액수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쉬나드 회장은 그 너머 리스크를 내다봤다. 회사의 새 소유주가 환경적 가치를 우선순위에서 밀어낼 수도 있고 상장과 함께 단기 이익을 위해 환경보호와 직원복지를 소홀히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쉬나드 회장은 기존의 자본주의 형태, 즉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로 귀결되는 구조 자체를 전복시키는 선택을 한다. 파타고니아의 지배구조 개편이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였다.
경영학에서는 기업의 제 1목적이 주주의 수익 실현에 있다고 한다. 파타고니아는 그 주주를 지구로 설정하고 앞으로의 역량을 주주인 지구를 보호하는 데 사용하기로 의기투합했다. 앞으로 사람들이 파타고니아의 옷을 살 때 그들은 단순히 소비를 하는 것이 아닌 지구를 지키는 일을 하는 것이 된다. 그것이 파타고니아가 그린 큰 그림이다. 파타고니아의 선례는 전 세계적인 사회경제적 위기 속에서 새로운 사업 방향을 설정하는 데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