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승 수요전략처 효율화사업실 부장
독서를 즐기고 책 욕심도 있습니다. 욕심이 있으니 빌리지 않고 주로 사서 봅니다. 그렇다고 대단한 독서가(讀書家)는 아니지만, 나름 고수하는 ‘루틴’은 있습니다.
진화학(進化學)은 호모 사피엔스가 약 20만 년 전에 출현했다고 말합니다. 사피엔스는 다른 호모속보다 유연한 발성(發聲)기관을 지녔고, 뇌 발달 등 호재(好材)까지 겹쳐 특출한 언어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요컨대 우리는 언어 능력을 타고났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하기’의 습득은 단지 시간문제입니다.
그러나 ‘읽기’는 다릅니다. 15세기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읽기 보편화의 출발점이라고 한다면 600여 년 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찰나입니다. 책이 수면제가 되는 건 ‘뇌’가 힘들어서입니다. 평소 하지 않던 운동을 하면 지치고 아픈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여러 독서법 책의 공통적인 결론은, 다독(多讀)이라는 훈련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선 많이 읽음으로써 뇌가 독서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책 읽는 뇌(2009)>의 저자 매리언 울프는 이를 ‘뇌 가소성(可塑性)’으로 설명하는데, 뇌세포의 연결이 변하여 독서를 위한 경로가 형성된다는 얘기입니다.
다독(多讀)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분야의 책으로 시작해서 책 뒤쪽에 있는 ‘참고문헌’으로 넓혀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제 루틴은 이렇습니다. ①포털 사이트 서평이나 읽던 책들의 참고문헌 목록을 확인합니다. ②마음에 드는 책은 표지를 하드카피해서는 휴대폰 폴더에 모아둡니다.(한 달에 대략 40~50권 정도입니다.) ③월 1회 서점에 가서 모아둔 책들을 찾아 훑어봅니다.(책 위치를 조회·출력할 수 있는 서점도 있습니다.) ④훑어보고 마음에 드는 책은 다시 주제별 폴더에 저장해둡니다.(저는 철학·인문학, 역사, 과학(우주론, 양자론, 진화론), 수학(정수론), 에너지·환경, 정치·사회학 등 7개 폴더가 있습니다.) ⑤다음에 읽을 책은 그 폴더에서 골라서 구매합니다.
많이 읽어도 금방 환골탈태(換骨奪胎)는 안 됩니다. 하지만 점차 독서가 쉽고 재미있어집니다. 의견이 생기고 안목도 생깁니다. 관심 분야의 지식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지만, 축적을 통해 지혜와 통찰이 되길 고대합니다. 그 과정은 비가역적이어서 과거의 무지와 몰이해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오직 전진(前進)만 있습니다.
가볍고 예쁜 새 돋보기를 장만했습니다. 노안(老眼)이라 불편하긴 합니다. 그래도 독서는 즐겁고 책은 욕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