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테마가 있는 여행

영원히 잠들지 않는
고대의 숨결
과테말라

글. 이지혜 여행전문기자

일 년 내내 온화한 날씨로 ‘영원한 봄의 나라’로 불리는 과테말라. 예상 가능한 여행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과 찬란한 문명이 꽃피었던 역사를 목도하고 싶다면, 중남미의 보석 과테말라로 떠나는 것이 당연하다.

파괴와 재건의 찬란한 시간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모습과 마야인의 뜨거운 심장을 동시에 가진 과테말라 여행은 인디오를 이해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스페인 정복자들의 본거지가 있던 과테말라가 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많은 핍박을 받았다는 것을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과테말라에는 현재까지 가장 많은 인디오가 생존해 있다. 이 사실은 인디오들이 몸을 숨길 수 있을 만큼 무수히 솟아 있는 과테말라의 산맥이 얼마나 거친지를 명증한다.

수도 과테말라시에서 북서쪽으로 약 25km 떨어진 작은 도시 안티과는 식민지 시대의 수도로, 식민지 상징이자 인디오의 피와 땀이 서린 도시다. 1542년, 대폭발로 인해 스페인의 정복자 페드로 데 알바라도가 세운 도읍이 하루 아침에 침몰했다. 그러자 스페인 정복자들이 인디오의 노동력을 착취해 세운 도시가 지금의 안티과다. 비록 200년 뒤 대지진으로 안티과 역시 반폐허가 되었지만, 오늘까지 그 흔적은 곳곳에 남아 여행자의 발길을 잡는다.

1800년 중반 커피 농장과 관련한 산업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지진으로 파괴되었던 안티과는 하나둘씩 재건됐다. 그나마 남아있던 건물을 이용하다 보니 자연스레 도시는 다시 식민지풍으로 만들어졌다. 재건된 안티과는 이후부터 독보적인 색깔을 띠고 본격적인 관광지로 발전했다.

300년 전 개척 시대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안티과의 유적과 저택 인근에선 지금도 다양한 문화 행사들이 열린다. 전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과 전통 복장을 한 인디오가 섞여 거닐고 있는 모습은 이곳이 남미 여행의 중심부임을 말해준다.

아메리카 대륙의 중앙부에서 원시 자연과
고대 문명까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과테말라는 찬란한 흔적의 나라다.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 시절,
중앙아메리카 전 지역을 관찰하는 총독청이 소재하기도 했던 과테말라에선
가는 곳마다 놀라운 유적지를 마주한다.
동시에 40여 개의 화산이 분포한 이 장엄한 나라에는 여전히 활동하는 활화산이 지금도 붉은 숨을 내쉬고 있다.

과테말라의 보석, 안티과

안티과는 하루 만에 모두 돌아 볼 수 있을 정도의 소도시다. 중앙 공원 근처에는 시청으로 쓰이는 총독부 건물과 대성당이 자리했다. 카톨릭이 융성했던 도시답게 공원 동쪽에는 산티아고 대성당, 북쪽의 라 메르세드 성당, 남동쪽의 산타 테레사 수도원과 산타클라라 성당 등이 분포했다. 인디오와 눈 맞추며 오래된 성당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안티과 여행은 반을 한 것과 다름없다.

이후에는 센트럴 파크의 분수대와 중미 최초의 대학인 산카를로스 대학교, 식민지 예술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물론 인근의 화산 여행도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1979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안티과 근처에는 세 개의 화산이 있다. 그중 한 번도 활동한 적 없는 멸종 성층 화산인 아구아 화산은 안티과 시내 어디서나 보일 만큼 거대하다. 거의 완벽한 원뿔 모양으로 압도적인 풍경을 선보인다.

아구아 화산이 안티과의 풍경 말고도 일조하는 것이 있다. 바로 커피다. 아구아 화산을 비롯한 세 개의 화산에서 쏟아지는 화산재에는 미네랄과 질소가 풍부하다. 이 화산재가 쌓인 땅이 수시로 내리는 비를 맞고 뜨거운 태양을 받아 전 세계에도 없는 독특한 풍미의 커피나무를 키운다. 덕분에 안티과 커피는 마치 참나무로 훈제한 음식에서 풍기는 스모키한 냄새와 달콤하면서도 쌉싸래한 맛으로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의 미각을 사로잡았다.

그런가 하면 안티과가 남미 여행자들의 시작점인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저렴한 가격에 스페인어를 배울 수 있는 어학원 때문이다. 이 작은 마을에는 수십 개 이상의 스페인 어학원이 있는데, 여행자들은 대개 어학원에서 간단하게 스페인어를 습득한 뒤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한다.

대자연과 마야의
심장을 품은 나라

안티과에서 과테말라 여행의 시작을 알렸다면, 아티틀란 호수와 티칼 국립공원에선 여행의 정점을 찍는다. 수도 과테말라시티에서 북쪽으로 4시간가량 달리면 나타나는 아티틀란의 호수는 러시아의 바이칼, 페루의 티티카카와 더불어 세계 3대 호수로 손꼽힌다. 휴화산 속에 들어앉아 장대한 자태를 내뿜는 아티틀란 호수 인근에는 ‘인디오들의 고향’이라는 별명처럼 십여 개의 인디오 마을이 자리했다.

호수를 따라 산악도로를 달리다보면 원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자연에 벅찬 감동이 퍼진다. 폭발을 멈춘 화산이 낳은 장관부터 푸르른 호수, 독특한 산새, 예상치 못하게 만나는 야생 동물까지 마주할 수 있다.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아티틀란 호수를 두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라고 극찬했다. 체 게바라는 아티틀란에서 쉬며 혁명가의 꿈을 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야 문명권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이자 과테말라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티칼로 마지막 목적지를 정한다. 티칼은 과테말라 북부 페텐 지방의 거친 밀림 속에 남아 있는 마야 문명 최대 도시 유적이다. 여러 종의 열대조류와 원숭이, 파충류 등이 서식하는 페텐 지역의 밀림을 한 시간가량 달리면, 어느새 정글에 파묻힌 거대한 유적이 나타난다.

이곳은 1979년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등록됐을 뿐만 아니라 1990년에는 페텐 지방 총 면적의 약 40%가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신비를 간직한 티칼 국립공원에는 빽빽한 밀림 속에 숨은 수천 개의 유적들이 남아있다. 오랜 발굴 작업에도 불구하고 공개된 것은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다.

티칼 국립공원에선 가장 중요한 여섯개의 피라미드를 감상한다. 특히 70m에 가까운 높이의 제4호 신전의 꼭대기에선 거대한 피라미드가 섬처럼 솟아 있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밀림의 녹음이 펼쳐진 마야의 세계에서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마야 문명의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가 아름다운 과테말라의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특별한 경험을 해보자.

찬란한 문화유산과 인상적인 고대 유적, 원시의 자연까지. 과테말라는 ‘영원한 봄’이란 별명처럼 영원히 잠들지 않을 숨결을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