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할 말 있습니다

불행이 스치고 지나갈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권철 해상풍력사업단 사업총괄부 차장

한국 복귀 한 달 전에 우리 가족 무사귀환을 기념하며 케이프 타운 테이블 마운틴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지난달 남아공 근무에서 복귀했습니다. 남아공 생활은 우리 가족에게 하마터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될 뻔했습니다.

자카란다가 흐드러지던 어느 주말, 큰아이가 갑자기 쿵 하고 넘어졌습니다. 미끄러졌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 그날 저녁부터 아이 상태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남아공 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남아공에서 한국입국이 불허되던 시기라 대사님도 한국입국을 도와주실 수 없는 당혹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한 달 동안 병원을 다 돌아보았지만, 발병 원인을 모른 채 골든타임이 임박할 즈음, 처형이 동일한 증상을 앓았던 지인 자녀가 있었다며 그 증상이 아닌지 살펴보라고 전화를 해 왔습니다. 하늘이 도왔는지 검사를 해보니 처형 말씀이 맞았고 큰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수술 후 발등에서 피를 뽑아 목덜미에 수혈하는 혈액투석 과정에서 간호사의 무지로 아이 심장에 피가 고이면서 호흡이 멎어가는 큰일이 생겼습니다. 수술 후에 약으로 일부러 재워둔 상태였는데 아이는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는지, 고통스럽게 컥컥대면서 눈을 감은 채로 침상 위로 일어섰습니다.

다행히도 지나가던 의사가 이 상황을 발견하고 침상 위로 몸을 날려 아이를 눕히고 기도삽관과 수혈을 하면서 한쪽에서는 심장에 대주사를 꼽아 피를 뽑아냈습니다. 동시에 야간 병원 전체에 비상 사이렌이 울리더니 아이 방으로 의료진 30여 명이 몰려들었고 워낙 위급상황이라 그 방에서 바로 심장 수술을 했습니다. 아이 상태가 어떠냐는 물음에 주치의는 대답 대신 교대 간병을 방금 끝내고 집에 돌아간 아내를 다시 부르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순간 집중치료실 복도바닥에 그만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아이와의 14년 시간이 슬라이드처럼 천천히 지나가면서 마치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은 상태에서 맹렬한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 앞에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의 예전 웃음소리와 저의 울부짖음이 뒤섞인 너무 슬픈 광경이었습니다.

그때 남아공 심장 수술 권위자인 다른 병원 협진 의사가 마침 병원 앞 사거리에서 신호 대기 중이었다가 병원 연락을 받고 바로 올라와서 세 시간 수술 끝에 아이를 살렸습니다. 아이는 지금 다행히 아무런 후유증 없이 건강하게 중학교를 잘 다닙니다. 학원가기 싫어하는 여느 중학생들처럼 말이죠. 불행은 어느 날 예고 없이 다가오고 때로는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기도 합니다. 생전 경험해보지 못했던 극한의 고통이었지만 절망하지 않았던 것은 가족 덕분이었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신가요. 그래도 집에서 기다려주는 가족들 얼굴을 떠올리면 힘이 나지 않습니까. 오늘은 퇴근길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와플을 좀 사가야겠습니다. 그리고 부디 해외에서 국내 오지에서 어려운 여건임에도 최선을 다하고 계신 직원 여러분들의 건강과 안전을 기원합니다. 그런 여러분 가족의 행복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