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생존법
피곤하지 않게,
하지만 돈독하게! 직장에서 적정거리 유지하는 법
어렵고 부담스러운 회사 속 인간관계, 돈독한 것도 좋지만 적정거리 유지도 필요하다. 회사에서 마음을 터놓을 동료를 꼭 만들어야 할까? 점심을 혼자 먹으면 안 될까? 생일이나 기념일은 어느 선에서 챙겨야 할까? 업무 고민보다 미묘하게 신경 쓰이는 관계 고민에 대해 생각해보자.
권순재 (서울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친밀한 관계만큼이나 ‘애매한 관계’를 다루는 방식이 중요하다
옥스퍼드대 진화생물학 교수 ‘로빈 던바’는 저서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친구가 필요한가’에서 한 사람이 제대로 사귈 수 있는 친구의 수는 최대 150명이라고 했습니다. 이를 ‘던바의 법칙’이라 부릅니다. 던바의 법칙은 3배수의 법칙으로도 불립니다. 곤란한 상황이 닥쳤을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진짜 친구는 5명, 절친한 친구는 15명, 좋은 친구는 35명, 그냥 친구는 150명, 아는 사람 500명…과 같은 식입니다. 던바의 법칙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깊이 있는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생각보다 적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다른 포유류의 집단생활과는 다른 ‘초집단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침팬지가 150마리 모여 있으면 난장판이 일어납니다. 침팬지는 모든 구성원을 알아야 사회가 형성되고, 모르는 이를 위험 요소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중 일부만을 알아도 평화로운 사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다른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선천적으로 충돌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지만, 계획적인 자기 수정을 통해 이에 대응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친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익명도 아닌, 회사 동료와 같은 ‘애매한 관계’를 다루는 방법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애매한 사람과의 관계를 다루는 방식은 시대적 분위기나 사회문화의 영향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직장생활에서 회식 참여는 거의 필수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직에 대한 희생만큼이나 개인의 행복을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대두되었고, 권위적이고 불통하는 리더는 무능한 리더의 대명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이 커다란 조직 안의 한 개인으로서 애매하고 넓은 인간관계를 다루는데 혼란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식의 변화가 너무 빨라 우리가 받은 교육이 쫓아가기 어렵고, 정답을 찾기가 힘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친밀한 관계’보다 ‘불편하지 않은 관계’를 우선해야 하는 이유
그러나 애매하고 넓은 관계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정답은 없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중요한 지침은 존재합니다. 바로 ‘공백’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가치관은 서로 다릅니다. 그리고 아무리 같은 교육을 받고 같은 회사에서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차이’가 존재합니다. 상당히 많은 대인관계의 갈등은 그 차이를 ‘틀린 것’으로 인식하느냐 아니면 ‘공백’으로 남겨두느냐에 따라 발생하기도 하고, 발생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리고 임상경험상 이 공백의 부분에 그 사람의 경험과 인격의 중요한 부분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과거의 상처가 있는 경우도 있었고, 정말 소중히 여기는 삶의 방식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간혹 드물게 정말 건드려서는 안 될 역린이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잘 모르는 상대방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면 우리는 그 공백의 존재를 의식해야만 합니다.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처럼 되거나 불편한 분위기를 형성하게 되지 않도록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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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함’까진 시간이 필요해요
따라서 ‘친밀한 관계’를 추구하기에 앞서서 ‘나쁘지 않은 관계’로 시작하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상대방이 가진 사회적 입장과 나이에 대한 가치관이 나와는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하고, 그 부분을 존중하면서 거리를 좁히는 거죠. 누군가에게 친한 관계라는 건 같이 술을 먹고 취해 어깨동무를 하며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있어서 친밀한 관계라는 것은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편안한 거리를 유지하고 때로 커피 한잔 같이하는 그런 관계를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분명히 존재하는, 아직은 알 수 없는 그 공백을 염두에 두고 천천히 상대방을 알아가세요. 상대방에 대하여 잘 모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생기는 조심스러움을 ‘어색한 관계’나 ‘불편한 관계’로 단정 짓고 어려워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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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가능하고 편안한 상대가 되기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편안함’과 ‘예측 가능성’입니다. 내가 상대방의 행동 방식을 큰 무리 없이 예측할 수 있고, 상대방이 나의 행동 방식에 대하여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될 때 서로를 잘 몰랐던 두 사람은 비로소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상대방의 가치관을 충분히 예측할 시간을 여러분 스스로에게 주세요. 여러분의 가치관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간을 상대방에게 주세요. 그런 다음 거리를 좁혀가세요. 당신이 불편하지 않을 최적의 거리가 될 때까지요.
우리에게 직장생활이란 함께 일하는 공간인 건물보다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경우가 더 많지요. 즉 직장생활은 곧 인간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의 공간, 수천 명의 사람, 수천 개의 가치관. 서로 같지 않기에 알아가는 데 시간이 조금 필요하지만, 서로 다르기 때문에 둘이서 만나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리고 관계는 곧 우리의 세계입니다. 부디 이 넓은 지구상에서 80억 명의 사람들 중 아주 기적적인 확률로 한 공간에 있는 우리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멋진 세계가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