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공간
별점 다섯 개 : 나만 알고 싶은 멋진 것
MZ가 좌표 찍은 ‘별 다섯 개’
줄 서는 핫플
에쏘바, 노포 호프, 무인 매장 등등 요즘 뜨는 핫플레이스들의 운영방식은 다소 불편하다. 그런데도 왜 인기인 걸까? 서서 먹는 문화가 유행이라는 말에 “편한 의자 찾아 헤매는 난 늙은 건가!” 당황했다면 주목하자. ‘힙함’과 ‘새로움’은 늘 편안함과 익숙함을 넘어선다.
윤진아
ⓒ한국문화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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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힙스터들은 #궁케팅 하고 논다며?
‘궁 투어’ ‘능 투어’…. MZ세대가 ‘궁(宮)’에 푹 빠졌다. 고궁체험행사에 참여하기 위한 예매경쟁을 뜻하는 궁케팅(궁+티케팅)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궁 투어의 원조 격인 ‘경복궁 생과방’, ‘덕수궁 밤의 석조전’, ‘창덕궁 달빛기행’ 등은 대개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전 회차 입장권이 매진된다. 생과방은 조선시대 궁중 병과(간식)와 약차(음료)를 즐길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밤의 석조전은 궁 탐방과 가배(커피)를 함께 음미할 수 있고, 달빛기행은 청사초롱을 들고 창덕궁 곳곳을 누빌 수 있다. 전문해설사의 안내와 전통예술공연은 덤! SNS에는 “피케팅(피 튀는 전쟁 같은 티케팅) 끝에 궁에 다녀왔는데, 오늘 하루 내가 정말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는 후기가 줄을 잇는다. 고궁이라는 낯선 배경에서 사진을 찍고 새로운 경험을 해본다는 점에서, 옛 전통문화는 MZ세대 사이에서 세상 힙한 트렌드로 등극했다.
ⓒ한국문화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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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공족’이었던 MZ, 서서 마시는 ‘에쏘바’로 갈아탔다
카공족(카페에 장시간 머무르며 공부하는 사람들)이 즐비했던 카페 문화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진하게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바(bar) 형태의 카페, 에쏘바는 요즘 가장 핫한 외식문화다. 대부분의 에쏘바에는 의자가 없기에 사람들은 바 앞에 서 있거나 계단에서 자유롭게 커피를 즐긴다. 테이블도 없으니 여느 카페처럼 노트북 펴고 일하는 사람도 없다. 작은 잔에 제공되는 만큼 한 사람이 두세 잔씩 마시곤 하는데, SNS에 ‘#에스프레소컵쌓기’를 검색하면 다 마신 컵을 쌓아둔 사진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고이스트에스프레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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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핫플 조건 : 인스타그래머블 인생샷
최근 중요한 핫플 키워드는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ble)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이라는 뜻의 신조어로, 사진 찍기 좋은 장소를 일컫는다. 지난봄 롯데월드타워에 15m 높이의 벨리곰 조형물이 설치된 후, 초대형 분홍 곰을 보러 다녀간 방문객은 2주 만에 200만 명을 기록했다. 이들은 기꺼이 줄을 서서 밸리곰 아래서 인생샷을 남겼다. ‘핫플’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 자신의 취향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이와 관련된 경험을 찾는 MZ세대는 ▲브랜드가 아닌 내가 주인공이 되는 공간 ▲내 취향을 탐닉할 수 있는 공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흐려지며 확장된 공간경험에 열광한다. 지난 9월 온라인쇼핑몰 29CM가 성수동에 오픈한 플래그십 스토어 이구성수(29CM SEONGSU)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동네 특성을 살려 ‘변화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공간 테마로 정했다.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유니크한 설치물과 음악으로 공간을 채운 결과, 감성 인증샷 성지로 빠르게 입소문이 났다. 매장 안에 설치된 태블릿으로 티셔츠나 스니커즈를 커스텀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방문객이 크리에이터가 되어 자신만의 결과물을 만드는 데서 재미를 느낀 MZ세대는 SNS에 자발적 홍보 게시물을 올리며 화답하고 있다. 수백 가지 취향이 모이는 핫플레이스에서 MZ세대는 나만의 취향에 더 가까워지는 경험에 집중한다. 경북 영주에는 무인서점 ‘좋아서점’이 있다. 누구와도 말 섞지 않고 책과의 내밀한 시간을 원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책방지기에게 전화하면 입장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결제 후 봉투에 책을 담아 스티커를 붙이면 구매완료다.
ⓒ29CM
ⓒ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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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서도 좋아! 강력한 욕망 된 ‘내 취향’
이 시국에 ‘줄 서는 식당’들의 인기도 심상치 않다. 이제 식사는 경험이자 문화가 됐다. 요즘 MZ세대는 그리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에도 고가의 요리에 돈을 아끼지 않는 분위기다. 한 달 전부터 예약해야 하는 유명 맛집, 분위기 좋은 파인다이닝이 주는 가치가 가격에 부응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새로운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은 오래된 골목길에 숨은 허름한 노포도 멋지다고 느낀다. 최근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한 지역은 삼각지다. 현지 거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해외 감성’ 가게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는 것도 인기요인! 홍콩, 베트남의 뒷골목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 가게 하나하나가 인증샷 포인트로 유명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SNS에는 나만의 핫플 인증샷이 쉬지 않고 업데이트되고 있다. 누군가는 보여주기식 문화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나만의 취향을 하나쯤 발견하고 탐닉하는 것이 우리 일상을 좀 더 풍요롭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