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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사람들이 남긴 한글 편지 이야기
손글씨를 써본 게 언제였던가? 디지털 세상에 익숙한 나머지 나의 손글씨마저 잊기 쉬운 요즘이다.
역사 속 인물들이 나눈 한글 편지를 살짝 엿볼까?
김서울(작가, <뮤지엄 서울>저자)
"결혼을 해서 시집에 정성을 바치겠다더니 어찌 고양이만 껴안고 있느냐?
감기에 걸렸으면 약이나 해다 먹으라"
숙명공주에게 보낸 효종의 편지
옛날 사람들은 편지로 ‘카톡’ 했대
유물을 들여다보는 일을 업으로 하며 더러 조선시대 왕실 사람들이나 양반들이 남긴 편지 유물을 본다.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남긴 글씨를 보며 글씨 주인의 성정은 어땠을까 상상도 해보고, 한편으로 소탈하고 격없이 요새 메신저 앱에 쓰는 우리들 메시지 같은 내용들을 보며 살짝 웃음도 난다. 어린아이의 순수하고 맑은 마음이 담긴 글씨로 적은 편지부터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가볍게 마음을 전하는 편지, 그리고 가을날 우리가 단풍잎을 길에서 주워 예쁘게 모양을 잡아 편지에 담은 것처럼 예쁘게 편지를 꾸며 그 꾸밈에 마음을 담은 편지까지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편지를 쓴 이도, 받은 이도 이제는 세상에 없지만 그들이 남긴 편지를 보면 괜스레 내가 그 편지를 쓰고 받은 것만 같아 가슴 한 켠이 살짝 따뜻하고 몽글해진다.
효종과 숙명공주의 편지
숙명공주는 효종의 세 번째 딸로 효종과 딸 숙명공주 사이에 얽힌 정다운 편지는 꽤 유명한 유물이다. 숙명공주, 효종, 인선왕후와 장렬왕후가 주고받은 한글 편지 65통을 모은 <숙명한신첩>이 국립청주박물관에 소장 중으로 가장 유명한 것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 편지다.
“결혼을 해서 시집에 정성을 바치겠다더니 어찌 고양이만 껴안고 있느냐? 감기에 걸렸으면 약이나 해다 먹으라”는 다소 걱정과 꾸중이 섞인 안부 편지다. 숙명공주는 효종이 유난히 아끼고 귀여워했던 딸로 시집을 보낼 때에도 궐 밖에 짓는 숙명공주의 신혼집 규모나 공사비가 워낙 많이 들어 <효종실록>에 신하들이 이를 비판하는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 두 사람이 나눈 편지를 보면 효종의 아버지로서 인간적인 면모가 많이 엿보인다. 귀엽게 탐을 내는 숙명공주를 꾸짖는 듯 어르는 말씨로 쓴 편지에선 ‘쇼락이’(소락이)라고 적은 애칭을 발견할 수 있다. 색을 물들인 예쁜 초와 받침을 보내주고, 다른 공주들이 궁궐에 들어와 패물과 재산을 챙길 때 기척도 없이 고양이만 좋아하는 숙명공주에게 네 몫을 꼭 욕심내서 챙기라는 채근을 하는 편지도 남아있다. 매번 사극에 정쟁과 암투가 난무하는 것과 달리 화목한 분위기라 새삼 놀랍기도 하다.
<숙명신한첩>중 일부 (사진 출처: 한국고문서자료관)
그 유명한 ‘궁서체’로 쓴 업무 편지
한글 폰트에도 기본으로 들어가 있어 우리에게 익숙한 ‘궁서체’로 쓰인 편지다. 궁녀들은 당시 왕실의 살림꾼이자 행정관으로 업무상 필요한 일이 있다면 직접 궁서체로 편지를 적어 내용을 전했다. 앞에는 안부와 건강을 묻는 내용인데 뒤에 따라오는 업무 전달 사항이 인상적이다. “전날에 말씀하신 공문서 좀 내시고, 급히 편지를 써서 경상감사(종이품 장관)에게 말씀하셨습니까? 속히 좀 하여 주옵소서” 이메일이 없던 조선시대 업무 메일 대신 빠르게 흘림체로 편지를 적어 편지를 전했을 궁녀의 바쁜 하루 일과를 상상해보게 하는 내용이다.
<상궁 한글편지>(사진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명성황후의 편지
앞서 본 편지들과 달리 조금 더 화사하고 장식된 구석이 많다. 염료로 물들인 색지에 시전지판(목판화)으로 편지지 무늬를 찍어 장식한 것으로 이런 시전지판으로 편지를 꾸미는 문화는 조선 초기 왕실을 중심으로 일부 양반가에서 유행했다. 조선 후기에는 집집마다 단 몇 개의 시전지판이라도 물려주며 사용해 민가에서도 편지지 꾸밈을 하기도 했다. 은행잎을 닮은 깊은 노란 색에 화사하게 색을 발라 찍은 문양이 단정하고 예쁘다. 명성황후는 본가인 여흥 민씨 가족들과 여러 편지를 나누며 당시 본인의 마음이나 궁궐 상황을 전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상전하의 문안도 아주 평안하시고 동궁의 정황도 매우 편안하다. (편안하길 바란다.) 나는 한결같지만 끝내 어딘가 말끔하지 않고 답답하다. 날씨는 매우 맑고 화창하다.”
<명성황후 한글편지>(사진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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