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On.
월드클래스를 만드는 모멘텀은 실패를 만나는 방법이다
오늘은 실패에 대해 말하려 한다. 이상하다 싶을 것 같다. 실패? 성공이 아니고? 사람들 앞에선 성공을 말하는게 디폴트 아닌가? 사람들은 성공을 말하길 좋아한다.
듣는 것도 그렇다. 누구나 다 성공하고 싶으니까. 일종의 성공의 사회화다. 성공을 갈망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성장하는 순간은 실패를 딛고 나아가려는 힘에서 시작된다.
박문성(축구해설가)
승리를 향한 추진력은 어디에서 올까? - 멘탈 리커버리
물론 실패하라는 건 아니다. 실패하지 말라고 꺼내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우린 살면서 성공보단 실패를 더 많이 겪는다. 원했던 성적을, 사고 싶었던 물건을, 사귀고 싶었던 상대를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반대의 그것보다 많다. 더 많이 겪는데도 이상하게 우린 실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니 좀 더 솔직히 하자면 애써 밀어낸다. 더 익숙하지만 못 본 척한다. 일이 꼬이는 건 이 때문이다. 가까운 일인데도 못 본 척 피하다 사달이 난다. 대가다. 가깝고 소중한 걸 챙기지 못한.
축구 경기를 보면 잘 풀릴 때도 있지만 한없이 꼬일 때도 있다. 패스가 안 되거나, 슈팅이 빗나가거나, 부상을 당하거나 하는. 모두 다 이기기 위해 싸우지만 모두 다 이길 순 없는 게 스포츠다. 이기는 팀이 있으면 지는 팀이 있다.
지는 팀엔 공통점이 있다. 왜 졌는지 돌아보지 않는다. 사실 이겼을 땐 딱히 할 게 없다. 넘치지만 않도록 분위기만 잘 잡고 가면 된다. 문제는 졌을 때다. 경기에 패하면 분위기가 가라앉고 주변에서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팀 안팎의 공기가 어수선해진다. 이때가 진짜 힘과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다. 뭐가 문제였고 다시 시작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되짚어야 한다. 실수를 빠르게 털어버리고 다음에 집중할 수 있는 ‘멘탈 리커버리(Mental Recovery)’가 필요하다. 이는 곧 리스크의 관리다. 리더의 리더십 역량이 있는 그대로 평가받는 대목이기도 하다.
‘리더의 실패’는 실패를 탓하는 것
실패를 관리하지 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건 책임의 전가다. ‘너 때문에 졌어!’ 전형적인 남 탓이다. 무너지는 조직에 빠짐없이 벌어지는 일이다. 실패의 요인을 찾는 건 중요하지만, 책임의 소재에 매몰되면 불신으로 팀워크를 무너뜨리는 건 순식간이다. 서로에게 화살을 쏘아대는데 안 무너지는 게 용한 일이다.
여기에 더해 리더가 범하는 흔한 실수. 결과만 가지고 탓하는 것이다.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가지고!’ 결과와 성과에만 매몰돼 구성원을 몰아세우는 일이다. 이런 리더일수록 의도나 과정은 살피지 않는다. 실패라는 결과에 대해 집착하면 파장은 만만치 않다. 해당 구성원은 몸을 사리기 시작한다.
‘이럴 거면 뭐 하러 일해!’ ‘다시는 하나 봐라’ 결과만 따져 책임을 물으니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외려 낫다는 복지부동이 조직을 갈아 먹기 시작한다.
주위에서 이러한 리더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리더가 방패막 이가 되기는커녕 책임을 전가하는 걸 보면서 리더를 불신하기 시작한다.
20년 전, 히딩크의 말에 힌트가 있다
실제로 가까이 지켜본 최고의 실패 관리 리더십의 축구 감독은 히딩크였다. 2002월드컵을 앞두고 일어난 일이다. 본선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우리 대표팀은 계속해서 패했다. 그것도 골을 넣지 못하고 대량 실점하면서 무너지는 경기가 이어졌다. 비난이 쏟아졌고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대표팀이 경기에 패하고 이어진 기자회견 자리였다. 기자 한 명이 물었다.
우리 대표팀의 공격수가 계속 골을 못 넣고 있는데 당신은 화가 나지 않는가. 왜 그 선수를 비판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는가.
“나도 사람이니까 화가 날 때가 있다. 하지만 공격수가 골을 못 넣었다고 해서 화가 나진 않는다. 그 대신 결과만 가지고 욕하고 비판하는 사람들 때문에 두려워 슈팅조차 하지 않으려고 할 때, 난 정말 화가 난다. 우리 팀의 공격수들이 뭘 잘못했는가? 그들은 공격수로서 슈팅을 했고 뛰어다녔다.
골이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는 그다음의 문제다. 당신과 같은 사람들 때문에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할 때 난 그 선수를 혼낼 것이고 빼버릴 것이다. 우리 선수들은 잘못한 게 없다.”
실패 ‘그다음’을 볼 때
그다음 벌어진 일들은 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자신들을 비난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을 보호해주고 끝까지 믿어준 히딩크 감독에게 우리 선수들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다주었는지를. 결과의 실패를 나무라지 않고 과정의 노력에 주목했던 리더에게 그 구성원들이 어떠한 집중력을 발휘해 주었는지. 리더십은 자신이 내세우는 게 아니다. 구성원이 인정하고 존중함으로써 드러남을 당하는 것이다. 실패했을 때는 특히 그러하다. 화살을 쏘지 말고 화살을 대신 맞거나 함께 피할 방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그다음을 보게 하는 것. 그게 진짜 리더의 일이다. 또한 이는 삶의 자잘한 실수를 만나는 우리 스스로에게도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