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대로 비평
일상의 감칠맛을 더하는 MSG
빠지면 서운한 TV 속 MSG
‘PPL 맛집’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아이돌 그룹 세븐틴의 자체 제작 콘텐츠 <고잉 세븐틴>은 케이팝 팬덤에게 널리 사랑받는 웹 예능 시리즈다. 농촌 마을에 모습을 드러낸 멤버들이 열성적으로 모내기를 하던 어느 날, 제작진은 깜짝 게임을 제안한다. 프로그램에 ‘PPL(간접광고)’이 들어왔다며 지금 바로 ‘홍삼 게임’을 해보자는 것이다. 제작진의 의도를 찰떡같이 이해한 멤버들은 이내 “관장님(?) 감사합니다”라는 우렁찬 구호와 함께 난데없는 홍삼 배틀을 시작한다.
남지우(대중문화 칼럼니스트)
TV 속 광고가 ‘안 멋지게’ 살아남는 법
세상 모든 방송이 저들의 능청맞음을 따라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문제는 그리 단순해 보이지 않는다. ‘광고 문제’의 복잡성은 먼저, ‘웹’과 ‘방송’의 구분에서 온다. 다채로운 OTT 플랫폼의 등장과 함께 두 영역의 경계가 예전만큼 선명하지 않게 된 요즘이다. 하지만 웹과 달리 방송은 여전히 방송법, 방송 광고 판매대행 등에 관한 법률 등 다양한 형태의 규제 아래에 놓여있고, 이 사실은 창작자의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친 다. 특히, 고도의 연출을 통해 광고 대상을 작품 내부에 녹여내고, 궁극적으로는 시청자를 상대로 ‘눈속임’을 저질러야 하는 PPL의 경우엔 더 높은 수위의 규제를 적용받을 수밖에 없다.
(광고)지만 웃음을 줬으니 괜찮아
‘광고 문제’의 두 번째 복잡성은 장르와 깊게 연관되어 있다. <고잉 세븐틴>의 경우처럼, 오락·예능 프로그램은 그 자체로 광고라는 ‘장르’ 와 함께 비슷한 성질의 쾌락을 공유한다. 자본주의와 기업, 그리고 광고라는 연료로 굴러가는 텔레비전 세계는 ‘소비자가 봉이 되는 것을 촉구’하며 ‘시청자의 수동성을 자극’한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어떤 미디어 연구자들은 주장의 반대편에 서서, TV 앞의 사람들은 광고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를 쾌락의 대상으로 삼는 방법까지 알고 있다 말한다. 그리고 현대의 오락·예능 창작진은, 바로 이 소수의견이 내놓은 지점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난데없는 먹방처럼 출연자가 PPL에 노골적으로 가담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MBC<놀면 뭐하니?>), PPL 농담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토크쇼라는 정적인 포맷의 한계를 타파하는 모습(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등은 광고주의 물질적 욕망이 시청자의 쾌락으로 전환되는 순간 이다. 이 순간이 더욱 흥미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시청자들은 방송 중 PPL의 존재를 인지함과 동시에 그 대상을 구매하지는 않을지언정, 광고와 함께 촉발된 웃음의 쾌락은 즉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효능감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TV도, 광고주도, 자본주의가 아닌, 시청자가 승리 하는 순간이다.
갑작스러운 ‘먹방’ 연출로 웃음을 유발한 <놀면 뭐 하니>(왼쪽). 드라마 <지리산>(오른쪽)에서도 마찬가지로 먹방을 연출 했지만, 시청자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짭짤한 재미 좀 본 ‘PPL 맛집’의 비밀
그렇다면, 오락 예능이 아닌 드라마 시리즈에서도 광고의 욕망과 시청자의 쾌락이 충분히 맞닿을 수 있을까? 드라마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광고는 어떤 방법을 써서 시청자들에게 승리의 경험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지난 12월 종영한 JTBC<구경이>는 전에 없이 독특한 광고 연출을 시도하며 ‘PPL 맛집’이란 수식어를 얻은 바 있다. 이 작품이 포함하는 PPL은, 주인공 ‘구경이’(이영애)이가 중독 수준으로 게임에 빠져 사는 인물이라는 설정에서부터 출발한다. 드라마는 현실적 순간에 게임적 그래픽을 입힘으로써 게임중독자 구경이가 인식하는 세계의 모습을 재현하곤 하는데, <구경이>의 PPL은 이렇게 작품 내부에 구축된 톤 앤 매너, 그리고 정체성의 자장 아래에서만 수행되고 실현된다.
구경이가 바라보는 세상이 그러하듯, 찜닭이나 버블티 등 PPL 상품이 게임과 애니메이션 프레임을 두른 채 화면에 등장하는 식이다. 창작자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광고에 대한 현실 감각을 의도적으로 하향 조정할 때, 몰입 상태의 시청자들은 삽입된 광고와의 충돌을 비껴가며 유쾌한 관람을 이어가게 된다. 또한 세계관 내 PPL의 적절성을 따져 묻기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과 배우를 ‘지원’(support)한다는 마음으로 PPL 상품을 구매할 것이다.
눈 흐리고 보고, 때로 유희거리로 삼는다
절대다수의 시청자들이 미디어의 상업적 욕망을 인지하고 있고, 그것을 실현하는 자본의 메커니즘을 그 어느 때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지금. 미디어가 시청자의 머리 위에 올라, 우리의 생각과 욕구를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그 누구도 tvN<지리산>이라는 드라마의 지시에 따라, 산행 중 콜라겐으로 피부 관리를 하거나, 산 중턱 대피소에서 토스트를 사 오려고 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능동적 시청자로 거듭난 사람들은 ‘엉터리 PPL’을 놀릴지언정 텔레비전을 떠나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텔레비전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삶을 투영하는 작업을 하고 싶어 하고, 시청자는 그 삶이란 것을 살아내며 사랑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확산, 대중의 성숙과 참여에 발맞춰 방송과 광고의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