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대기
일상의 감칠맛을 더하는 MSG
인류를 삼킨 ‘제5의 맛’ MSG 변천사 한 걸음 뒤에~ 내가 있었는데...
MSG가 ‘맛소금’의 약자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MSG의 정확한 명칭은 ‘L-글루탐산나트륨 (Monosodium L-Glutamate)’이다. 감칠맛의 핵심성분인 ‘글루탐산’ 대량생산 시대가 열리면서 이제는 누가 만들어도, 적은 재료와 시간, 정성을 들이고도 ‘엄마의 손맛’을 닮은 감칠맛을 즐길 수 있게 됐다. 100여 년간 인류의 입맛을 살려온 MSG의 변천사를 살펴보자.
윤진아
혜성처럼 등장한 기적의 가루
과학 시간에 배웠던 혀 모양의 그림 위에 그려진 단맛·짠맛·신맛·쓴맛 네 가지 맛만 알아왔던 인류에게 새로운 맛이 등장했다. 감칠맛이다. 1907년 일본의 이케다 기쿠나에 교수가 다시마에서 기존의 맛과 전혀 다른 제 5의 맛을 추출해 ‘우마미(旨味, 감칠맛)’라고 명명했다.
본래 감칠맛을 즐기려면 고기처럼 단백질이 풍부한 식품을 먹거나 숙성이나 발효로 단백질을 분해해서 먹어야 했다. 이케다 교수가 감칠맛의 비밀을 찾기 위해 다시마를 대량으로 구매해 연구한 끝에 찾아낸 성분이 바로 ‘글루탐산’이다. 글루탐산이 물에 쉽게 녹도록 나트륨을 붙인 것이 글루탐산나트륨, 즉 MSG다. 이케다 교수는 회사를 설립해 아지노모토(味の素, 맛의 정수)라는 상표를 붙여 판매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입맛을 길들인 조미료도 아지노모토였다. 국이나 찌개에 조금만 넣어도 맛이 확 살아나는 마법의 가루는 쌀보다 수십 배 비싼 값에 거래됐다고 한다.
‘1가구 1미원’ 국민조미료의 탄생
순수 국내 자본과 기술로 만든 최초의 조미료는 ‘미원’으로, 1956년 탄생했다. 대상그룹 창업자인 故임대홍 회장이 일본에서 글루탐산 제조공정을 익히고 돌아와 ‘맛의 원천’이라는 의미의 미원을 출시했고, ‘1가구 1미원’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로 미원을 안 쓰는 집이 없게 됐다. 소고기는 단 1g도 넣지 않았는데 국물 가득 소고기 맛이 나니, 이 마법의 가루를 넣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이후 제일제당공업(CJ제일제당 전신)이 1963년 ‘미풍’을 출시하며 조미료 시장에 도전장을 냈지만, 결과는 미원의 완승이었다. 제일제당을 시작으로 삼성그룹을 일군 故이병철 회장이 자서전에 ‘세상에서 내 맘대로 안 되는 세 가지는 자식농사, 골프, 그리고 미원’이라고 썼다는 일화도 화제를 모았다.
그래, 이 맛이야! ‘고향의 맛’의 반격
2세대 조미료 시장은 판세가 바뀌었다. 제일제당이 1975년 쇠고기, 파, 마늘, 양파 등의 양념을 배합한 종합조미료 ‘다시다’를 내놓으며 업계 선두로 도약했다. “그래, 이 맛이야!” 라는 유명한 광고와 함께 시장을 장악한 다시다는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던 서민들의 밥상을 업그레이드하며 음식의 간을 맞춰왔다. 이후 대상㈜의 종합조미료 ‘쇠고기 맛나’, 럭키(LG생활건강 전신)의 ‘맛그린’이 도전장을 내놓았지만 미원과 다시다의 벽을 넘진 못했다. 후발주자였던 럭키는 ‘경쟁사 제품과 달리 MSG를 뺀 조미료’라는 네거티브 마케팅으로 MSG 유해성 논란에 불을 지폈다. 맛그린을 제외한 미원·다시다가 화학조미료라고 간접적으로 지목한 것이다. 이제는 많이들 알고 있지만, MSG는 화학조미료가 아니다. 사실 우리 주변을 둘러싼 물질 중 ‘화학’이 아닌 건 없으니까. 잘못된 사실로 대중을 호도한 럭키는 결국 시정명령을 받았지만, 이 여파로 ‘MSG=화학조미료’라는 인식이 소비자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미원·다시다 발목 잡은 ‘MSG 유해성’ 논란
MSG는 정말 몸에 안 좋은 화학적 조미료일까? 우선, MSG는 발효조미료다. 사탕수수를 발효시켜 나온 대사산물에 나트륨을 붙여 만든다. 또한, WHO(세계보건기구)와 미국식품의약국(FDA)은 1985년 MSG에 대해 ‘평생 먹어도 안전한 식품첨가물’이라고 결론 내렸고,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청도 2010년 ‘일일섭취허용량에 제한이 없는 안전한 물질’이 라고 밝혔다. 물론 일부 음식점에서 원가 절감과 맛을 위해 과도하게 MSG를 사용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지만 말이다.
맴찢! 긴 세월 조연이었던 MSG에 조명!
MSG 유해성 논란은 인공원료를 배제한 자연 조미료 경쟁구도로 이어졌다. 2007년 CJ제일제당이 출시한 ‘산들애’와 대상㈜이 출시한 ‘맛선생’이 대표적이다. 2010년 샘표가 간장을 주원료로 한 ‘연두’를 출시한 이후에는 액상조미료가 세를 확장하고 있다.
반세기 넘게 우리 식탁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 MSG가 최근에는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한 마케팅을 펼치며 새로운 변화를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미원 출시 65주년을 기념해 만든 유튜브 광고가 큰 화제가 됐다. ‘각종 요리의 감칠맛을 살리고도 MSG에 대한 오해 때문에 찬장 속에 숨어 있어야 했지만, 그 숙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미원’을 의인화한 신박한 아이디어에 미원을 잘 몰랐던 MZ세대도 열광했다. 특히, 미원으로 분한 배우 김지석은 싱크대 안에서 주부들이 밀봉집게로 쓰는 빨간 핀까지 머리에 꽂으며 미원의 짠한 처지를 대변해 웃음을 자아냈다. 해당 영상은 공개 열흘 만에 조회수 148만 회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고, 2021년 12월 현재 조회수 500만 회를 훌쩍 넘긴 상태다.
100여 년에 걸쳐 인류 입맛을 사로잡아온 MSG는 지금도 멈추지 않고 진화하고 있다. 단순한 장수 브랜드를 넘어 전 세대에 공감을 일으키려는 제조사들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으니, 진화한 MSG가 차려낸 밥상을 소비자 들은 마음껏 즐기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