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대기
스몰톡 : 일상과 ‘말’들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모지 연대기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1969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웃음을 표현할 수 있는 활자기호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문자열에 그림을 넣는다는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이모지는 이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제2의 언어가 됐다. 문자 소통을 돕는 ‘수단’에서 나아가 새로운 ‘언어’가 된 이모지의 흥미로운 역사를 알아보자.
윤진아
말 안 해도 알지?! ‘알잘딱깔센’ 디지털 상형문자의 탄생
우선, 이모티콘과 이모지는 다르다. 이모티콘(Emoticon)은 감정을 뜻하는 이모션(Emotion)과 아이콘(Icon)의 합성어로, 미국의 컴퓨터공학자 스콧 팔먼이 컴퓨터 자판의 특수 부호를 조합해 표정을 만든 게 시초가 됐다. 1982년 스콧 팔먼은 카네기멜론대학 온라인 게시판에 웃는 얼굴 모양의 ‘:-)’와 슬픈 표정 ‘:-(’ 두 개의 이모티콘을 제안했다. 쌍점과 줄표, 괄호 세 개를 조합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학생들은 크게 호응했고, 텍스트에 감정 아이콘을 덧붙이면서 더 생동감 있는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다양한 표정으로 울고 웃는 동그란 얼굴, 이모지(Emoji)는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고유한 그림문자다. 1999년 일본 통신사 NTT 도코모의 쿠리타 시게타가 180여 개의 표정·사물을 12X12픽셀 크기로 디자인한 것이 시초로, ‘그림문자’라는 뜻의 일본어 ‘에모지’(えもじ)에서 유래했다. 이 디자인 원본은 뉴욕현대미술관 현대미술 컬렉션에 영구 소장됐다.
이모지는 누가 어떻게 만들까?
지금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언어는 바로 이모지다. 사람이 취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표정과 몸짓은 물론이고 엄지, 하트, 동물, 사물, 심지어 좀비까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대부분의 개념이 이모지로 존재한다. 컴퓨터 표준 언어 코드인 ‘유니코드’에 입력돼있어 여러 기기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2000년대 들어 구글과 애플의 스마트기기에 이모지 입력기능이 추가되면서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모지를 만드는 곳은 비영리기관인 유니코드협회(Unicode Consortium)다. 유니코드협회 내 ‘이모지 소위원회’가 매년 새로운 이모지의 종류를 정하고 관리한다. 어떤 이모지를 만들지 결정되면, 구글·삼성·애플 등 각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디자인한다. 같은 이모지라도 스마트폰 기종마다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는 이유다.
말보다 강한 이모지, 언어와 문화를 바꾸다
2015년 옥스포드 영어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가 글자가 아니라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얼굴’ 이모지였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또한, 글로벌 랭귀지 모니터에 따르면 2014년 가장 인기 있는 단어 역시 글자가 아니라 하트 이모지였다. 온라인 소통이 급증한 현대사회에서 이모지는 미묘한 억양과 감정을 담아내고 휴머니즘과 위트까지 전달하는 수단이 되어준다.
웃는 이모지와 실제 사람의 웃는 얼굴이 뇌의 동일 부분을 활성화한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감정이나 상황을 직관적으로 표현한 이모지는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과도 쉽게 소통할 수 있게 해준다. 덕분에 전 세계 인터넷 사용 인구의 90% 이상이 이모지를 쓰고 있다. 심지어 글보다 이모지를 더 많이 사용하는 요즘 세대는 텍스트 하나 없이 이모지만으로 대화하기도 한다.
진화한 IT 기술도 이모지 사용의 재미를 높여준다. AR 기술을 카메라와 접목해 셀피 촬영으로 사용자와 닮은 아바타를 만드는 이모지도 나왔다. AR 이모지는 내 모습이나 원하는 캐릭터를 이모지로 만들어 사용하거나 증강현실로 움직이게 만들 수도 있다.
‘최초의 세계언어’ 이모지는 진화한다
사용량이 늘면서 이모지에 점차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담기고 있다. 이모지는 시대 상황과 가치관의 변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모티콘 정보 사이트 이모지피디아(Emojipedia)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마스크, 비누, 기도하는 손, 주사기 이모지 사용이 급증했다고 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모지도 리뉴얼된다. 2012년에는 처음으로 동성커플 이모지가 등장했고, 2015년에는 다양한 피부색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2019년에는 장애인, 휠체어, 안내견 이모지가 추가됐으며, 2020년에는 턱시도 입은 여성, 아기 보는 남성 등 성 중립 이모지가 등장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류의 진화한 가치관을 담은 다양한 이모지가 만들어지고 있다. 제안은 누구나 가능하다. 유니코드협회 홈페이지에 새 이모지 추가요청 가이드라인이 있는데, PNG 포맷으로 제출하면 매년 심사를 진행해 새 이모지를 발표한다. 이모지피디아에서 전체 이모지를 검색하고 제안 이유도 읽어볼 수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세계 공용어’ 창제의 보람을 느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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