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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부캐, 기타리스트와의 만남

박다정 수요전략처 효율화사업실

독자 여러분께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베토벤은 이 악기를 보고 ‘작은 오케스트라’라고 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학창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고, 누군가에게는 먼지 쌓인 인테리어 용품일 수도 있는 이 악기는 무엇일까요? 정답은 (다들 이미 짐작했겠지만) 기타입니다. 모두에게 친숙하고 표현의 폭도 풍부하며 대중음악에서 빠질 수 없는 악기인 기타와 관련된 저의 부캐인생을 소개합니다.

저의 기타 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밀물과 썰물입니다. 처음 밀물은 중학생 때였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던 부친의 권유로 클래식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저도 원래 음악을 좋아하기도 했고, 클래식 음악이라 딱딱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래도 여전히 기타가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소리가 좋아 클래식 기타에 금세 빠져들었습니다. 기타 전공을 할까 고민할 정도였지만, 아쉽게도 공부에 집중하게 되면서 기타와는 잠시 이별하였습니다. 두 번째 밀물은 대학교 시절입니다. 입학한 이후, 저는 바로 클래식기타 동아리에 가입했습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기타만 쳤던 것 같네요. 방학마다 다른 것 다 제쳐두고 기타 오케스트라 활동에 전념했으니까요. 모두가 같이 집중해서 하나의 소리를 만든다는 것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취준의 늪에 빠져들며, 저는 다시 기타의 손을 놓아야 했습니다. 기타를 치지 않던 부캐 휴업의 기간 동안, 중간중간 기타를 잡아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에 대한 기대와 듣는 귀의 수준은 한껏 높아져있는데 내 손은 제 맘처럼 되지 않았던 날들이 반복되며 기타에 대한 열정이 조금 식어갔습니다. 취직을 한 이후로도, 한동안 이상하게 기타에는 손이 가지 않고 캘리그라피나 만년필, 방송댄스 같은 다른 취미에 기웃거리게 되더라구요. 기타리스트 부캐는 그렇게 말라비틀어져가나 싶던 찰나였지요.

그 이후로 저에게 다시금 찾아온 밀물은, 밴드 HQ SOUND입니다. Headquater Sound, 직역하자면 ‘본사의 소리’인데요(High Quality Sound라는 뜻도 있다고 합니다) 삼성동 본사 시절부터 있었던 전통을 자랑하는 밴드입니다. 저는 21년 초에 음악을 좋아하던 동기의 권유로 밴드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렉기타를 시작하게 되었고, 얼마 전에는 세컨 기타로서 공연도 했습니다! 밴드에서 만날 수 있는 재미는 클래식기타 오케스트라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습니다. 조금 더 자유로운 분위기이기도 했고, 관객과 조금 더 가깝게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지금은 학원에서 기타를 더 배워서 멋진 무대를 만들고, 더 나아가서는 조그맣게나마 개인 기타 유투브를 만들어 보는 것이 꿈입니다!

혹자가 말하기를, 인간에게는 세 가지의 취미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첫 번째 취미는 티비보기와 같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취미, 두 번째는 신체를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운동할 수 있는 취미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내가 무엇인가를 창의적으로, 적극적으로 창조하는 취미라고들 하죠. 바쁘디 바쁜 현대인이지만, 다양한 부캐를 만들어서 이 세가지를 모두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타를 다시 잡게 되면서, 삶에 활력도 더 생기고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던 시간들을 더욱 알차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즐겁습니다. 내가 언젠가는 더 멋진 기타리스트 부캐와 함께할 수 있기를. 독자 여러분도 (여건이 허락하는 하에서! 하지 않는다고 인생을 망친다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3개의 취미를 즐기는 부캐를 만들 수 있기를, 한전인 본캐와는 다른 부캐만의 매력을 찾는 시간을 열심히 즐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에게 기타란? 지판에 손을 올린 기간 자체는 길지만, 지속적이지 않았습니다. ‘기타 좀 치세요?’ 라고 물으면 자랑스럽게 딱 보여줄 한 곡이 없달까요? 마스터했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면에서는 애증의 취미이기도 합니다.

추천하는 기타 : 요새 기타들이 다들 잘 나와서 2~30만 원대 기타를 사면 입문용으로 실패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다만 통기타 중 예쁜 색깔이 칠해진 기타들이 있는데, 질이 나쁜 목재를 가리는 용도일 수 있으니 나뭇결이 잘 보이는 것을 추천드려요. 물론 비싸면 비쌀 수록 소리는 예쁜 것 같습니다.

기타 칠 때 미리 알아두면 좋은 힘든 점 : 손의 굳은살과 자세의 비대칭입니다. 손이야 어느 정도의 연습 기간을 거치면 익숙해지기는 하지만, 자세의 비대칭은 처음부터 좋은 자세를 익히는 게 제일 좋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기타를 쳐서 그런지 아님 다른 습관들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자세가 비대칭이 되었습니다. 필라테스 선생님한테 기타 친다고 한 소리 들었습니다.

기타 배우는 방법 : 펭귄 밀크를 아시나요? 어른 펭귄은 아기 펭귄에게 고기를 잡아다 주지 않고, 자기가 먹어서 소화시킨 펭귄밀크를 입을 통해 아기에게 전해준다고 합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저는 무언가를 배울 때 킬리만자로를 혼자 다니며 얼은 고기를 씹어먹는 표범파가 아니라 펭귄밀크 파라서요. 돈 써서 누군가가 열심히 소화시킨 지식을 유동식으로 섭취하는 게 저한테는 최고입니다. 돈을 써야 의지도 생기고, 운동도 돈을 써야 하더라구요 저는 그래서 기타 배우시려면 학원 가세요! 학원이 최고입니다. 물론 저와 달리 의지력이 뛰어나신 분들은 좋은 유튜브나 온라인 강의가 많으니 그쪽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언젠간 꼭 치고 말겠다! 하는 로망곡 : 롤랑 디옹의 <탱고엔스카이>, 이병우의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