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는 정글과 같다. 철이 들기도 전에 던져진 경쟁의 장. 그 안에서 죽기 살기로 버텨서 겨우 안착한 직장. 이제 멋진 직장인이 될 것 같았는데, 세상일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주어진 일만 하기도 버거운데, 뭔가 상황은 나를 더 어렵게 만든다. 상사도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으며, 동료들도 나에겐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 같다. 무슨 일만 하려고 하면, 상황이 나에게 나쁜 쪽으로 변한다. 왜 나에게 이렇게 나쁜 일만 생기는 걸까. 왜 나에게만? Why me? why
직장이나 가정에서 나에게만 안 좋은 일이 생기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우울해지고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 현상을 ‘와이미 증후군’이라고 한다. 와이미 증후군이 현대에 와서 새롭게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나에게 나쁜 일만 겹쳐서 발생한다는 ‘머피의 법칙’만 해도 유사한 개념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스스로를 귀하게 여긴다. 그래서 자존감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 된다. 자존감이 중요하니 우리 인간은 각자 나름대로의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는데, 가장 흔한 것이 남탓을 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기본 귀인 오류라는 개념이 있다. 우리는 어떤 일이 발생하면 그 원인을 찾는 경향이 있다. 이를 귀인(attribution)이라 한다. 귀인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내적 귀인과 외적 귀인이다. 내적 귀인은 일의 원인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외적 귀인은 내가 아닌 외부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우리는 타인의 행위에 대해서는 내적 귀인을 하는 반면, 동일한 일을 동일한 상황에서 내가 하면 외적 귀인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기본 귀인 오류라 한다.
내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외적 귀인을 해서 환경 탓, 남 탓을 하는 행위는 와이미 증후군과 다르지 않다. 와이미 증후군은 인간이라면 대부분이 가지고 있음 직한 보편적인 현상 이라 할 수도 있다.
‘기억’하는 것일까?
여기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주먹구구식 판단 과정은 와이미증후군을 더 강화시킨다. 가장 논리적이라는 인간이지만, 우리의 의사 결정 및 판단 과정은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다. 논리적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연산법(algorithm)을 사용해야 하지만, 게으른 우리 뇌는 굳이 많은 인지적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연산법 대신 어림법을 주 판단기제로 사용한다. 말이 좋아서 어림법이지, 대충 때려 맞춘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인간의 판단은 논리적이지 않다.
가용성 어림법이라는 방식이 있는데, 우리는 머리에 생생하게 떠오르는 사건이 실제로 더 많이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말한다. ‘k로 시작하는 영어 단어’와 ‘k가 세 번째 철자인 영어 단어’ 중 어떤 것이 더 많은지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k로 시작하는 영어 단어’가 더 많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k가 세 번째 철자인 영어 단어’가 3배 정도 더 많다. ‘k로 시작하는 영어 단어’는 쉽게 머리에 떠오르는 반면, ‘k가 세 번째 철자인 단어’는 쉽게 떠오르지 않아서 가용성 어림법에 따라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부정성 편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부정성 편향은 좋은 일과 나쁜 일 중에서 나쁜 일에 더 주의가 가는 경향을 말한다. 이는 생존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진화적 목적과도 연관된다.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을 빨리 탐색해서 해결해야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부정성 편향이 발생한다.
이 부정성 편향이 가용성 어림법과 만나면 재앙이 발생한다. 부정성 편향 때문에 나쁜 일에 더 주의가 가고, 나쁜 일이 더많이 생각나니 가용성 어림법 때문에 나에게는 나쁜 일만 발생한다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된다.
‘핸디캡’이다
나에게만 나쁜 일이 생기는 것 같고, 나만 대우를 못 받는 것같고, 나만 주변 환경이 도와주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왜 누구에게는 별것 아닌 감정이 되고, 누구에게는 ‘와이미 증후군’이 되는 걸까?
단순하게는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정신력, 혹은 긍정적 에너지의 차이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고, 조금 더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자존감 수준 차이라고 말할 수 있을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자존감의 수준을 높이는 훈련이 와이미증후군 탈출에 도움이 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상황에 대한인식을 바꾸려는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의식적으로 외적 귀인보다 내적 귀인을 하고, 나쁜 일들 사이에 발생하는 좋은 일들에 더 주의를 주고, 나쁜 일들이 가져오는 영향력에 대해서 과대평가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노력을 해야 할것이다.
만화 <슬램덩크>에서 주인공 강백호는 중요한 경기에서 부상을 당한다. 주변에서 경기를 포기할 것을 권하던 그때, 강백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깟 부상, 나 같은 천재에게는 적당한 핸디캡이지.” 와이미 증후군에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다. 생각과 달리 우리의 주변은 나쁜 일로만 가득 차 있지 않고, 그나마 있는 나쁜 일들도 유능한 우리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것들이다. 그렇게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내 마음에 있는 불안과 걱정이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하기 때문이다.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차분히 주변을 둘러보자. 별것 아니다. 내가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핸디캡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