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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춤신춤왕의 댄스 연대기

매주 시간이 되면 나는 본사 지하 연습실로 향한다. 사내 댄스동아리 연습을 하러 말이다.
일찍 가는 날이면 음악을 틀어놓고 스트레칭하며 다른 친구들이 오기를 기다린다. 조금 늦게 가는 날에는 먼저 온 이가 틀어놓은 웰컴송을 들으면서 입장한다. 그렇게 사람이 다 모이면 그때그때 연습하는 곡을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며 안무를 익혀나간다. 한참 땀 흘리며 춤추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난 뒤다. 마무리는 언제나 스마일 인증샷이다.

이런 생활을 한 지 1년이 채 안 되었다. 돌이켜보면 입사 후 한동안은 회사-집-회사-집의 반복이었다. 업무는 항상 머리끝까지 쌓여 있었고 지하 주차장부터 31층 베즐리까지 그 큰 건물 내 어디에도 새콤달콤한 맛은 없었다. 별정직으로 입사한 나는 동기가 없어 남들처럼 남측 로비에서 누군가를 기다려 본 적도 없고, 4시 멸추 김밥이 그렇게 맛있는 줄도 까마득히 몰랐다.
물론 부서 동료분들이 잘 챙겨주신 덕에 소외되는 일 없이 잘 지내기는 했으나, 그래도 타 부서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생겼는지 또 무엇을 먹고 사는지 늘 궁금했다. 어디 이뿐인가. 출근 전 퇴근 후 각자 취미생활을 즐기는 사람들도 부러웠다.
그러던 중 내 회사생활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을 발견한바, 사내 댄스동호회 NJDC_3191)의 홍보 포스터였다. 보자마자 스스로 ‘이쯤이면 됐다’ ‘나도 이젠 숨 쉬어가며 회사생활할 때가 됐다’ 하는 생각과 함께 나주 케이팝 댄스의 노예가 됐다.

1) 내적댄스. 나주댄스 아님.

댄스의 경이로움에 빠져들다

대학 때부터 본격 댄스 인생을 시작했다. 입학하자마자 댄스동아리부터 가입하고 더 이상 아이돌 커버댄스가 아닌 스트리트댄스를 연마해 나갔다.
힙합댄스라고 많이 아는 스트리트댄스에는 여러 장르가 있다. 비보잉, 락킹, 하우스, 힙합, 크럼프 등이 그렇다. 나는 그 중 팝핑을 한다. 팝핀 현준2)으로 대표되는 춤으로, 현 시은3) 아빠 구 박남정이 췄던 춤이라 하면 아시려나. 근육을 튕겨 딱 끊었다가 파도처럼 웨이브를 쳤다가 마치 형상기억합금 로봇처럼 추는 춤이다. 그런 움직임에 대프트 펑크4) 같은 강렬한 비트의 음악이 어우러지면 참 멋지고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렇게 팝퍼가 되고 싶어 고인물들의 춤을 시작했는데, 그 난이도 있는 움직임을 몸에 익히려 처음엔 장소 가리지 않고 어디에서든 연습했다. 아무도 없는 곳이면 음악 없이도 팝을 줬다.5) 음악이 없으면 기괴해 보일 수 있는 이 춤에 내리 집중하다 보면 자칫 나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뒤늦게 뒤통수 레이저를 느끼고 창피하지 않은 척 난 원래 이런 놈인 척 문워크로 슬며시 사라지기도 여러 번. 당시 누군가에게 음악이 국가가 허락한 마약이라면 내겐 춤이 그랬다.
춤추며 하게 되는 동작은 아무 의미 없는 동작이 아니다. 제대로 된 안무, 동작은 마치 플라톤의 동굴 그림자처럼 그 어떠한 것에 대한 표현이다. 그 움직임이 무엇을 표현하려는 것인지까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춤을 제대로 춰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처음 하는 동작은 어색하나 연습할수록 그것은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생겨난 움직임이란 것을. 이를 몸으로 찾아내는 것이 나는 좋다.

2) 1세대 아이돌 영턱스클럽 객원 멤버이자 국내 최고 팝핑 댄서.
3) 2020년 데뷔한 6인조 여자 아이돌 STAYC의 멤버. 가수 박남정 딸.
4) 1993년부터 2021년까지 활동한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전자 음악 2인조 가수.
5) 팝핑 댄스의 한 동작을 하다의 구어체.

이데아를 춤으로 구현하는 짜릿함

요즘은 춤출 기회가 오히려 회사에서 밖에 잘 없다. 홍대 클럽에서 나이 많다고 입뺀6) 당한 후론 특히나. 소싯적 먹여 살려준 것도 모르고 부들부들했지만 지금 내 옆엔 NJDC가 있어 괜찮다. 새삼 나이 차에도 잘 지내준 동아리원들이 고맙네. 앞으로 동아리 내에서 더욱 왕성하게 활동해 보고 싶다. 여건만 허락한다면 한빛홀에서 사장님 모셔놓고 공연하기나 한전인 단체로 광주 클럽 도장 깨기도 해보고 싶다.
아이돌 댄스나 스우파를 볼 때 심장에서 요동치는 바운스를 느낀다면 당신은 동굴 그림자를 그려나갈 자질이 있다. 주변 신경 쓰지 말고 댄스 이행을 바란다. 빛이 있어 세상은 밝고 따뜻하며 우리 마음에는 내적으로 댄스가 가득할지도 모르니.

6) 입구에서 출입 거절.

황창욱 안전처 산업안전기획실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