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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움직이는 길을 찾다
‘톰톰’의 비결

유럽 내비게이션 사업 1위, 톰톰(TomTom).
구글 맵 등을 탑재한 스마트폰이 내비게이션을 대체하며 잠시 길을 잃었지만, 자율주행차 시대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저물어 가는 영광의 시대를 마주하다

톰톰은, 지금은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개인용 내비게이션 장치(PND)를 2004년에 세계 최초로 내놨다. 당시는 도로 곳곳을 꿰뚫고 있는 베테랑 운전사가 아니면 도로 지도책을 독해하며 길을 찾아가던 시절이다. ‘지도를 잘못 읽었네, 제때 진입을 못 한 거네’하며 운전자와 동승자가 실랑이하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차분한 음성 안내가 흘러나오는 ‘톰톰고 (TomTom GO)’에 매료되었고 톰톰의 매출은 5년 사이에 약 500억 원에서 2조 2천억 원으로 44배나 급등했다. 톰톰은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노키아가 지도 업체를 인수해서 휴대폰에 지도를 넣는 걸 목격한다. 당시 휴대폰은 화면이 작아서 노키아가 원하는 만큼의 파괴력은 없었지만 이에 자극을 받은 톰톰은 또 다른 지도 업체인 텔레아틀라스를 2008년에 인수했다. 내비게이션 장치뿐만 아니라 무선단말기, 인터넷 서비스 업체 등에 지도를 공급하면서 경쟁 업체를 따돌렸다. 그야말로 영광의 시대였다.
그러다 애플이 1세대 아이폰 후속으로 GPS를 탑재한 아이폰 3G를 2008년 7월에 출시한다. 큰 화면에 공짜 내비게이션 앱을 갖춘 아이폰은 내비게이션 장치를 빠르게 대체해갔다. 끔찍한 일이었지만 다행히 톰톰에는 구글이라는 가장 큰 고객이 있었다. 구글은 지도 서비스를 위해 톰톰의 지도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쁜 예감은 비켜가지 않는 법. 구글은 자체적으로 지도 서비스를 개발하고 2009년 10월에 톰톰과의 관계를 끊어버렸다. 구글의 운영 체제인 안드로이드에 내비게이션 앱을 번들로 넣었고 개발자들이 지도 API를 공짜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내비게이션 장치도 지도도 공짜인 세상이 되었다. 금융 위기까지 겹치면서 톰톰은 적자 기업으로 전락했고 주가도 75유로에서 3유로 대로 급락했다. 톰톰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톰톰은 로드DNA라는 고화질 지도를 통해 도로상에서 자동차의 위치를 5㎝의 오차 범위 내에서 관찰할 수 있다.

더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다

사실 구글은 톰톰의 직접적인 경쟁자가 아니다. 구글은 장치나 지도로 돈을 벌려는 것이 아니라 지도 위에 광고를 띄우고 사용자 위치, 이동 정보 등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타깃 광고에 활용하려는 것이 었다. 톰톰은 이 점을 파고들었다. 구글이 막대한 현금과 전 세계에서 수집한 데이터로 생태계 곳곳을 파괴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는 회사들과 동맹을 만들어갔다. 톰톰의 CEO는 지도 사업으로 생성된 데이터를 외부에 팔지도 않을 것이고 고객들의 사업 분야를 넘보지도 않겠다고 천명했다. 이러한 톰톰의 입장 정리는 마이크로소프트, 우버같이 데이터를 핵심 자산으로 보는 회사들에게 먹혔다. 이들은 구글 대신 톰톰의 지도를 선택했다. UPS, 트랜스어반, 도이치 포스트 등의 물류 회사도 자사 데이터를 보호하기 위해 톰톰의 지도를 선택했다.
톰톰은 구글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했다. 스마트폰에서 쓰는 일반적인 지도는 흔해져 톰톰이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그때 자율주행 시장에서 기회가 보였다. 자동차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스스로 돌아다니려면 기둥, 가드레일, 차선까지 세세한 정보 들이 빼곡한 고화질 지도가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톰톰이 그동안 쌓은 공력으로 누구보다도 잘할 수 있는 분야였다. 자동차 제조사들 입장에서도 구글, 애플 같은 거대 IT기업은 껄끄럽다. 차량용 소프트웨어 기술을 장악해서 알짜배기 먹거리는 다 가져갈까 봐서이다. 톰톰은 2015년부터 자율주행 시장에 큰 돈을 투자했다. 지도 자체의 품질에 올인했다. 2019년 9월 당시 톰톰의 자율주행 책임자는 ‘고화질 지도를 공급받을 업체를 결정한 자동차 제조사 중에 상위 10개 회사가 톰톰을 선택했다’고 말한 바 있다. 톰톰은 구글 때문에 거의 망할 뻔했지만 2024년 현재 시가총액 1조 3천억 원 규모의 기업으로 건재하다. 그 비결은 ‘톰톰은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는 힘’이다. 톰톰의 CEO는 시대의 변화를 잘 읽어냈다. 하드웨어 제조에 머물지 않고 고부가가치 창출과 확장이 용이한 지도 제작에 뛰어들었다. 공룡기업의 초토화 움직임에 기죽지 않고 능동적으로 대응했다. 구글이 데이터를 무기로 여러 산업 분야에서 위협이 된 상황에서 이해관계가 맞는 파트너들을 찾아냈다. 동맹을 구축하기 위해서 포기할 것은 명확히 포기했고 상호보완적으로 윈윈 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다. 무엇보다도 기술력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틈새시장 방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용수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사진톰톰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