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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도’를 통해 경영 위기를 극복한 기업 ‘소니’

1946년 설립된 일본을 대표하는 다국적 기업 ‘소니’. 세대마다 ‘소니’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시도를 통해 경영 위기를 극복한 소니의 이야기를 알아보자.

카세트테이프와 CD로 음악을 들었던 5060세대에게 ‘소니’ 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물으면 대부분 ‘워크맨’을 언급할 것이다. 세계 전자시장을 제패한 1980~90년대, 소니를 최정점에 올려놓은 ‘3대장’은 단연 워크맨, 바이오 노트북, 트리니트론 TV였다. ‘기술과 디자인의 연결’을 모토로, 타사를 압도하는 디자인과 장인정신에 기반한 견고한 만듦새와 탄탄한 품질이 소니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지금의 MZ세대에게 ‘소니’에 대해 물으면 열에 아홉은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과 스파이더맨, 귀멸의 칼날 같은 애니메이션을 떠올릴 것이다.
소니는 더 이상 가전 제품이 아닌 소니 뮤직, 소니 픽처스를 앞세운 문화 콘텐츠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인기 PC게임과 드라마가 대표 상품인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거듭났다.

뼈를 깎는 노력 끝에 미디어 기업으로 환골탈태하다

1980년대 워크맨의 세계적인 성공으로 소니는 글로벌 기업으로 급부상했고, 이후 브라비아 TV, 노트북 등 고품질의 가전제품을 출시하며 명실상부 일본을 대표하는 가전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세계 전자 업계를 호령했던 소니가 2000년대 들어 한국·중국 업체에 밀리면서 위기가 시작됐다. TV·노트북 사업이 부진을 면치 못했던 2000년대 중반 소니는 게임·영상 사업을 키우겠다고 선언했지만 주위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2011년에는 역대 최악인 4,600억 엔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니는 1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차근차근 기술력과 콘텐츠를 융합해 하나의 콘텐츠를 가전·스마트폰·게임기에서 모두 사용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이른바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Multi Use)’ 전략으로 반전을 모색했다. 스파이더맨이 대표적이다. 자사가 판권을 가진 만화 스파이더맨을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소재로 활용하고, 자체 제작하던 게임 소프트웨어를 외부 업체와 공동 개발해 다양성을 확보했다.
그 결과 2020년 소니의 매출 비율은 게임이 31%, 전자 22%, 음악 19%로, 완벽하게 소프트웨어·미디어 기업으로 변신했다. 소니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제치고 역대 일본 영화 흥행 1위에 오르는 등 콘텐츠 사업에서도 대박을 터트리며 완벽하게 소프트웨어·미디어 기업으로 변신했음을 보여줬다. 적자까지 기록했던 순이익은 1조 엔을 달성했는데 이는 1946년 소니가 창립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업의 전환은 실적뿐만 아니라 ESG 평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탄소 배출이 필연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는 제조업에서 상대적으로 탄소 배출이 적은 콘텐츠업으로 체질이 변하면서 ESG 등급도 A등급에서 AA를 거쳐 마침내 최고 등급인 AAA로 상승했다.

소니 부문별 배출 비교 2003년 VS 2022년 (단위: 십억 엔)

소니를 구한 진짜 히어로 ‘히라이 가즈오’ 대표

2000년대 중반 소니는 게임·영상 사업을 키우겠다며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전문가인 하워드 스트링어(Howard Stringer) 소니 필름 총괄역을 CEO로 선임했었다. 스트링어는 부진했던 전자 사업들을 정리하며 실적을 개선해 주주들에게는 기대를 받았지만, 단기 성과에 급급한 경영진에게 실망한 기술자들이 회사를 떠나면서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야심작인 플레이스테이션3까지 대실패하면서 ‘소니는 끝났다’라는 평가가 시장에 만연했다. 이때 소니의 구원 투수로서 등장한 인물이 플레이스테이션의 북미 매출을 책임지고 있던 히라이 가즈오 前 대표였다.
히라이 가즈오 대표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소니의 CEO를 맡았고 소니 부활을 이끈 장본인이다. 히라이 가즈오 대표는 플레이스테이션3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플레이스테이션4는 가성비 제품으로 만들었다. 소니의 차세대 반도체 계획을 백지화시키고 AMD의 반도체를 사용했다. 가격을 대폭 낮춘 덕분에 플레이스테이션4는 대성공을 거뒀다.
히라이 가즈오는 소니를 3가지로 분류했다. 하나는 게임과 영화, 음악 그리고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디바이스로 구성된 성장 견인 영역이었다. 다른 하나는 카메라용 이미지 센서 같은 안정 수익 영역이었다. 지금도 소니의 스마트폰용 이미지 센서는 아이폰의 인기 덕분에 세계 시장 점유율 50%를 자랑한다. 나머지 하나는 TV와 스마트폰처럼 사업 변동 리스크 영역이었다. 더 이상 투자해도 성장하기 어려운 사업들이었다. 히라이 가즈오 대표는 2012년 화학 부문을, 2014년엔 유명 노트북 브랜드인 바이오 부문을 정리했다. 2017년엔 리튬이온 배터리 사업도 매각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비주류 계열사 출신 CEO가 소니의 뿌리를 흔든다는 비판도 거셌다. 하지만 히라이 가즈오 대표의 원칙은 분명했다. ‘감동’이었다. 과거 워크맨이나 TV에서 소니가 소비자에게 제공했던 진정한 가치는 제품 자체가 아닌 ‘제품을 통한 감동’이었다는 것이다.
2017년 소니는 마침내 적자의 수렁에서 벗어났고 히라이 가즈오의 방향성은 옳았음이 증명됐다. 위기에서 기회를 찾아 소니를 부활시킨 히라이 가즈오 대표는 2018년 소니 CEO에서 물러나 후임으로 소니 CFO였던 요시다 겐이치로를 선택했다. 2018년부터 소니를 이끌고 있는 요시다 겐이치로 대표는 소니 그룹으로 만드는 개혁 작업을 완수했고, 2022년 소니는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
2024년에도 세계 경제는 여전히 미래가 불투명하다. 경제 침체 위기가 기업을 위협하고 대중들의 소비 심리는 얼어붙었다. 하지만 소니의 사례를 돌이켜보면 위기는 또 하나의 기회이다. 특히 업의 전환을 계획하고 있는 기업에게 있어서 불안정한 경영 환경은 오히려 기존의 리스크 요인들을 털어내고 빠르게 새로운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호기(好機)로 작용할 수 있다.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는 말이 있듯이 국내 기업에서도 경제 위기를 극복할 새로운 영웅 탄생을 기대해본다.

김재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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