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이유
문학으로 떠나는 제주 여행 김애란 제주본부 기획관리실 차장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제주는 섬이라는 특수성과 함께 많은 이야기 소재를 갖고 있다. 소설가이자 제주문학관 명예관장 강용준(필명 강준)은 이런 환경적인 이유로 ‘제주사람에게는 창작의 DNA가 있다’라고 말한다. 제주도에는 문인협회 등 문학단체에 가입되어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이 500여 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그 증거이다. 구체적으로 제주가 갖고 있는 창작의 소재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찾아 나서 보고자 한다.
신화의 섬
제주도 탄생 신화의 주인공인 설문대할망을 비롯하여 한라산 영실, 삼성혈 등 곳곳에 신화적인 이야기가 많다. 이들은 문자가 없던 시절부터 설화, 민요, 무가, 속담 등의 형태로 오랜 시간 구전되어 내려오면서 생활 규범의 잣대가 되기도 했다. 제주 문학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구비문학은 현재까지도 변함없이 구술, 구현되고 있는 살아있는 문학이다. 동복리 어촌마을에 “이어도사나~ 저어라 저어!” 노 젓는 소리와 함께 구성진 구전민요 한 가락이 바람에 실려 오는 듯하다. 제주의 관광지를 둘러볼 일이 있다면 각 지역에 담긴 옛날이야기에도 귀 기울여보자. 스토리텔링과 함께 한다면 더 맛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바다가 품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볼 것
제주 해안도로 주변에는 특색 있는 카페가 많다. 바다 조망권을 차지하는 것이 핫플레이스의 중요 요소가 되고 있지만, 과거의 바다는 제주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삶의 공간이었다. 동시에 두려움의 공간이기도 했다. 바다는 무역과 교류를 통해 외부로 나아가는 열려 있는 공간이 되었고, 때로는 전란이나 폭정으로 인해 닫힌 공간이 되었다. 닫힌 공간의 바다는 제주 해녀들에게 힘들고 서러운 삶을 노래하게 했다. 어렵게 물질을 하여 건져 올린 해산물도 대부분은 착취당했다.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날의 연속이었다. 바다의 문학 안에서 항일운동으로 이어진 해녀들의 고통은 흘러넘쳐 ‘휘파람 한숨’으로 새어 나온다.
검은 안색에 / 눈시울 적시고 있는 슬픈 해녀여 / 생명 짧은 처녀이기에 / 멋 부리는 심정에서 사온 치마를 / 벽에 그을린 채 바다에서 지새노라면 / 나오누나 가느다라이 휘파람 한숨 - 김이옥의 시 <슬픈 해녀여> 중 -
유배의 공간
제주도는 정치범의 수용소이자 유배의 섬이었다.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신념 때문에 배척받은 삼백여 명의 사람들이 제주로 유배되었다. 그중 1614년(광해군6년), 동계 정온은 영창대군의 죽음과 관련된 상소로 제주 대정현에 위리안치되었다. 정온은 이곳의 풍토와 환경에 적응하며 유배 기간 10년 동안 280여 제의 한시를 남겼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뿐 아니라 제주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시로 드러내기도 했다. 정온은 1682년(숙종8)에 제주 귤림서원(지금의 오현단)에 배향되어 제주 오현(五賢)중 한사람으로 추앙되었다. 오현 중 유배인으로는 김정, 정온, 송시열이 해당한다. 이들이 실천한 유학과 선비정신은 제주 사람들의 교육·문화적 수준 향상의 계기가 되었다.
토속에 방아는 없어도 / 아낙네 방아타령을 부르네 / 높낮이엔 가락이 있는 듯 / 끊어졌다 이어졌다 서로 화답하는 듯 / 이해하자니 번역을 해야 하겠으나 / 자주 들으니 점점 우습지가 않네 / 처량한 새벽달 아래에서 / 나그네 귀밑머리 먼저 세었더라 - 동계 정온의 유배시 <촌녀저가(村女杵歌)> -
4·3, 눈물을 머금은 땅
풍광에만 넋을 빼앗긴 사람은 제주도가 아픔이 있는 섬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제주는 삼별초 항몽 투쟁, 목호(원나라 목마관리인) 토벌, 일제 침탈, 4·3에 이르기까지 상처가 크다. 그중 4·3은 상상도 못 할 상처를 남겼다. 제주 4·3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54년 9월까지 무장대와 토벌대의 무력 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밤에는 산에서 내려온 무장대에, 낮에는 토벌대에 이중의 피해를 당했다. 해안선 5km 이외의 중산간 마을은 초토화되었다. 강경 진압 작전으로 95% 이상의 마을이 불타 없어지고, 집단학살이 자행되었다.
이 시기에 살아남은 제주 사람은 심한 후유증으로누구도 아픔을 외부에 드러내 말하지 못하였으나 1979년, 4·3을 정면에서 응시하여 고발한 책이 출간되었다. 4·3을 직접 경험한 현기영 작가는 본인 자신뿐 아니라 제주 사람의 억압을 깨뜨리기 위해 소설 『순이삼촌』을 썼다고 말한다. 이 책으로 고초를 당하기도 했으나, 용기 있는 작가의 필력은 제주 4·3을 객관적으로 연구하고 <제주 4·3 바로알기 운동>의 물꼬를 트게 했다. 제주 4·3평화공원, 너븐숭이 유적지 등의 다크투어리즘을 통해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제주어의 맛 촘말로 좋수다
제주에는 제주어 문학이 있다. 2010년, 제주어가 유네스코 소멸 직전의 언어로 분류·등록되었다. 언어의 소멸 위기 극복을 위해 제주도에서는 제주어 표기법을 제정·고시하였다. 또한, 학문적인 연구와 함께 제주어 말하기 경연, 제주어 문학상 공모 등을 통해 본격적인 제주어 부흥의 노력을 펼쳐가고 있다. 표준어도 있는데 왜 굳이 제주어로 표현하느냐고 묻는다면, 제주어는 다른 외국어 작품을 읽듯 작품 감상의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문학은 인간의 사상, 경험, 정서 등을 문자로 표현하는 것이다. 제주어에는 제주의 역사와 함께 제주 사람의 얼이 깃들어 있다. 제주어는 문학 작품 안에서 고유 언어로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쉬엇당 갑서 / 아직도 살날은 먼먼헌디 / 무시거 경 급하게 가미꽈 (쉬었다 가세요 / 아직도 살날은 멀고도 먼데 / 뭐 그렇게 급하게 가십니까) 게메마씸 / 사는 것이 무시거 산디 / 쉴 틈 어시 걸어 봐도 / 갈 길은 감감하우다 (그러게요 / 사는 것이 무엇인지 / 쉴 새 없이 걸어 봐도 / 갈 길은 아득히 멉니다) - 김용해 작가의 시집 <비바리사랑> 중 -
제주 문학 중 신화, 바다, 유배지, 제주 4·3, 제주어를 매개로 한 짧은 문학 여행을 마무리하며 제주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 힘입어 제주 문학이 더 이상 변방의 문학이 아니라 한국문학의 중심에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때론 날 것처럼 거칠지만, 많은 날 따뜻하고 정겨운 제주! 문학의 숨결을 따라 잠시나마 마음의 휴식을 가져보길 권하여 본다.
필자 김애란 차장은 제3회 제주어문학상 소설부문에 '마음꼿 심지꼿'이란 작품으로 당선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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