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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EX : 멋의 정의
요즘 힙스터들은 촌구석에서
플렉스한다!
‘촌스러움’이 새로운 ‘힙(hip)’이다. 낙후된 시골로 사람들이 모이고 자본이 흐르기 시작했다. 팬데믹은 그동안 전 세계로 향했던 시선을 지역으로, 외부에서 자신에게로 돌려놨다. 판에 박힌 도시생활에 등 돌린 사람들이 낡고 오래된 시골에서 답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윤진아
요즘 시골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최근 SNS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밭멍’, ‘논멍’이다. 이제는 ‘호캉스’ 대신에 ‘촌캉스’, ‘오션뷰’ 대신에 ‘논밭뷰’가 유행이다. 러스틱 라이프(Rustic Life)란 서울대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 제시한 키워드로, 자연 고유의 매력을 즐기면서 도시생활에 여유를 부여하는 시골향(向) 라이프스타일을 뜻한다.
시골은 더 이상 시대에 뒤떨어지는 낙후된 공간이 아니다. 일상마저 버거운 도시인에게 시골은 ‘따분함을 넘어서는 여유로움’과 ‘불편함을 무릅쓰는 날것의 경험’을 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변모했다. 여행 선호도도 바뀌었다. 체크아웃 시간 등 은근히 맞춰야 할 게 많은 호텔도 싫증 나고, 텐트 치고 거두는 것도 꽤나 수고로운 일이지만 색다른 자극을 원한다. 그래서일까? 산동네에 있는 오래된 한옥을 개조한 아날로그 감성의 숙소, 주인장의 할아버지가 쓰던 손때 묻은 가구를 리폼해 사용하는 빈티지 숙소 등 유명세를 얻은 시골집은 평일에도 예약이 꽉 차 있다. 가마솥, 아궁이, 고무신 등 시골 느낌 물씬 나는 소품들도 촌캉스를 즐겁게 한다. SNS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자연 하나로 충만해진다’, ‘진정한 리틀 포레스트를 경험하고 왔다’와 같은 촌캉스 예찬이 끝도 없이 올라온다.
러스틱 라이프의 인기에는 뉴트로(Newtro) 트렌드도 한몫하고 있다. 사람들은 낡고 오래된 지역을 찾고, 시간과 공간 속에 켜켜이 쌓인 이야기를 꺼내 들으며, 소소하지만 특별한 매력에 집중한다. 그저 낡기만 했던 ‘노잼’ 공간에 새 숨을 불어넣어 ‘시간과 이야기를 품은 매력적인 공간’으로 변신시키며, 낡은 동네에 멈춰 있던 시간을 흐르게 하는 것이다.
#밭멍논멍 #오도이촌 #농어촌유학 #촌에서힙하게
1박 2일, 길게는 3박 4일 정도 시골에서 지내보고 만족한 사람들은 한 달 살기에 도전하기도 한다. 그 지역의 거주민이 되어 관광명소 대신 현지인만 아는 장소를 돌아다니거나,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비행기 모드로 맞춰 놓고, 현지인들에게 길을 물어가며 돌아다니는 재미도 쏠쏠하다. 심지어 요즘엔 촌에서 수업도 듣고, 일도 할 수 있다. ‘농어촌유학’이 대표적이다. 원격수업이 본격화되면서 도시에서만 수강 가능했던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온라인으로 지식을 쌓고 오프라인에서는 자연의 정취를 느끼는 전인격적인 교육이 실현되는 셈이다.
재택근무 장기화로 곳곳에 디지털 기반 업무환경이 조성된 덕분에 ‘워케이션(Workation)’ 도 확산하고 있다. 일(Work)과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휴가지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새롭고 낯선 지역에서 재충전 기회를 누리며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업무효과를 끌어내 젊은 직장인들이 특히 선호한다. 지자체들도 두 팔 걷고 지원에 나서고 있다. 경남 하동군은 ‘오롯이 하동, 워케이션’과 같은 직장인 체류형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한다.직장인 한 달 살기 프로그램으로, 농어촌체험·관광지 입장료와 숙박시설 등을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하면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도록 휴대용 와이파이와 테이블·의자 등을 지원한다.
MBC 최별PD는 여행 겸 찾았던 전북 김제시에서 덜컥 4500만 원짜리 폐가를 구입했다.
리모델링 과정, 농사를 짓는 모습 등을 유튜브로 공개했다.
귀농·귀촌에 대한 로망을 대신 실현해 주는 채널로, 구독자는 32만 명에 달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비교적 여유 있는 사람들은 시골에 두 번째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일주일 중 5일은 도시에 머물다가 2일은 시골을 찾는 ‘오도이촌(五都二村)’ 트렌드가 번지고 있다. 도시의 삶에 지쳤지만 경제활동 거점을 벗어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들이 택한 절충안이자, 다른 삶의 방식을 실험해보는 대안인 셈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정착으로 여가시간이 늘어나고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일상화하면서 ‘5도 2촌’이 아니라 ‘3도 4촌’도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러스틱 라이프 트렌드는 과밀한 주거·업무환경으로 고통받는 대도시나, 고령화·공동화로 시름하는 지자체 모두에게 귀중한 기회”라며 “이 추세를 잘만 이용하면 소멸하고 있는 지방 소도시가 부활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하고 싶은 일’을 ‘살고 싶은 곳’에서
적극적으로 러스틱 라이프를 실험 중인 주역은 3040세대다. 이들은 다른 사람이 원하는 삶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신이 원하는 삶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화려한 도시를 뒤로하고 외딴 촌구석을 찾아 들어간 사람들의 모토는 명료하다. “하고 싶은 일을 살고 싶은 곳에서 하자!”
러스틱 라이프 트렌드는 내일을 위해 오늘의 불행을 참고 살아왔던 많은 사람에게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지금의 행복을 희생하기보다는, 독립적 휴식공간을 찾아 후회 없이 즐기라!”고 일갈한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대, 남다른 경험에 투자하며 나날이 심화하는 취향과 신념을 가진 이들이 트렌드의 새 판을 짤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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