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전력을 의존하는 국가들, 어떻게 대처할까?
러시아로부터의 전력망 분리는 우크라이나, 몰도바 이외에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도 추진하고 있다. 발트 3국은 1990년대 초반 구소련에서 독립하였고, 2004년 EU에 가입하였다. 하지만 발트 3국의 전력은 계속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었다. 러시아와 벨라루스 그리고 발트 3국은 그동안 BRELL(Belarus, Russia, Estonia, Latvia and Lithuania)이라는 하나의 전력망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최근까지 발트 3국은 러시아와의 긴장 관계가 점차 높아지고 있었지만, 가스 및 석유와 달리 전력망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리투아니아 서쪽에 러시아 발트해 함대의 본거지이자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이스칸데르 미사일이 배치된 러시아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러시아가 발트 3국에 대한 전력공급을 차단할 경우 칼리닌그라드까지 정전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더불어 러시아 최대 도시 가운데 하나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시 하나의 전력망으로 연결되어 있어 러시아가 자국의 막대한 피해를 무릅쓰고 전력망을 차단할 것으로는 상상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기술 및 보안 관점에서 BRELL 분리는 시급하거나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간주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EU 가입 이후 2007년 BRELL과 분리하고 유럽 전력망과 동기화하려는 아이디어가 등장했으나 구체적으로 추진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2018과 2019년을 전후해 러시아가 발트 3국을 BRELL에서 제외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면서 상황은 변화하였다. 러시아는 서부 지역의 전력망을 발트 3국과 분리시키는 별도의 망 구성을 마쳤으며, 칼리닌그라드에 대해서는 전력을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가스화력발전소 건립을 추진하였다. 에너지 대기업인 가스프롬(Gazprom)과 로스네프트(Rosneft)의 배당금 1000억 루블(13억 5000만 달러)을 투입하여 2020년 말 4개의 가스 화력 발전소를 완공하고 가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2019년 봄에는 라트비아에서 정전이 발생했는데 그 타이밍이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에서 핀란드와 스웨덴을 연결하는 해저 인터커넥터인 ESTLINK 가동이 중지되던 시간과 일치하여 러시아의 의도는 더욱 확실해졌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BRELL 계약 및 절차에 따라 모스크바에 자리한 통제센터에서 그리드의 안정성을 복원하는 데 필요한 예비력을 활성화하도록 지시해야 했지만, 통제센터는 정전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리투아니아는 이 사건에 대해 러시아가 발트 3국의 그리드가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의도적으로 테스트했던 것으로 판단하였다. 다행히 정전사태는 인접국인 폴란드가 전력 공급을 확대하면서 빠르게 해소될 수 있었지만 발트3국은 BRELL에서의 빠른 분리가 필요함을 새삼스럽게 인식하였다.
이에 따라 발트 3국은 본격적으로 BRELL로부터의 분리를 위해 16억 유로 규모의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유럽 연합은 이 가운데 75%를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 현재 계획으로는 2025년까지 BRELL로부터 분리를 마무리하고, 2026년부터 EU의 전력망과 동기화되는 일정인데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더욱 빨라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