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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지형도 다시 쓰는
OTT* 플랫폼의 힘
오스카를 향해 돌진하는 OTT의 기세가 무섭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전통적으로 ‘미국에서 발표된, 혹은 미국 극장에서 상영된 작품’만을 후보로 선정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영화들이 개봉을 미루고 극장들이 문을 닫자 한시적으로 OTT 작품에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2022년, OTT 작품이 드디어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주인공은 애플TV+ ‘코다’였다.
류지윤(데일리안 기자)
*OTT(Over The Top)는 전파나 케이블이 아닌 범용 인터넷망으로 영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일컫는다.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디즈니+, 애플TV+ 등을 꼽을 수 있다. 다양한 콘텐츠를 통한 점유율 확대를 위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도
큰 투자를 하고 있다.
‘고인 물’을 덮친 플랫폼의 파도
OTT 영화가 오스카를 향해 문을 두드린 건 2020년이었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넷플릭스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아이리시 맨’과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가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당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게 작품상을 양보했고, ‘아이리시 맨’의 경우 10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지만 빈손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첫 오스카 입성으로 영화들을 최고상에 해당하는 작품상 후보에 올려 기존 영화계의 아성에 도전하는 듯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넷플릭스는 지난해 16편의 영화로 35회 후보로 지명됐다. 넷플릭스 영화 ‘맹크’는 작품상 후보를 비롯해 10개 부문에 최다 노미네이트되는 강세를 보였다. 본 시상식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가 분장상과 의상상, ‘맹크’가 미술상과 촬영상을 차지했다. 이로써 넷플릭스는 배급한 작품이 7개 부문에서 상을 받아 오스카 최다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두 번째로 많은 상을 차지한 배급사는 5개 부문을 수상한 월트 디즈니였다. 물량공세를 일삼는 ‘중개상’이었던 OTT가 100년 전통을 가진 제작사를 추월한 것이다.
다른 OTT 작품들도 존재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존 스튜디오와 애플TV+는 후보로 각각 12회, 2회 호명됐다. 워너 브러더스가 8회, 포커스 피처스가 7회 지명 성적표를 냈다. 넷플릭스와 아마존 스튜디오의 오스카 도전은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영화 배급사들과 비교해도 손색 없었다.
코로나도 이긴 대세 플랫폼, 올해의 주인공은?
올해 오스카를 향한 OTT의 도전은 더욱 맹렬했다. 넷플릭스 영화 ‘파워 오브 도그’가 최다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데다 작품상 후보 10편 가운데 절반이 OTT 작품*이다. 그리고 애플TV+가 드디어 또 하나의 유리천장을 깼다.
* 파워 오브 도그(넷플릭스), 듄(HBO Max), 코다(애플TV+), 돈룩업(넷플릭스), 킹 리차드(HBO Max), 벨파스트, 드라이브 마이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리코리쉬 피자, 나이트메어 앨리 →후보작 열 작품 중 앞 다섯 작품이 OTT 태생이다!
보수적인 유럽 영화제와 힘겨루기는 현재 진행중
OTT 작품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점령하며 영향력을 뻗어가고 있지만, 칸 국제영화제는 여전히 OTT 작품을 후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칸과 넷플릭스의 대치는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칸 영화제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와 노아 바움백 감독의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스’를 경쟁부문에 초청했지만, 프랑스 극장협회는 즉각 반발했다. 극장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과 개봉 영화는 3년이 지나야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능한 당시 프랑스 법에 위배되는 행위라는 이유였다.
이에 칸 영화제 측은 급작스럽게 넷플릭스 영화를 향후 경쟁작 부문에 초청하지 않겠다고 규정을 변경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넷플릭스가 앞으로 칸 영화제 경쟁· 비경쟁 부문 모두 출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작품성으로 영화를 심사해야 한다는 넷플릭스와 형평성을 근거로 경쟁작에는 초청할 수 없다는 칸 영화제 조직위 측의 대립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반면 칸 국제영화제와 세계3대 영화제로 꼽히는 베니스 영화제는 OTT 영화를 이미 받아들였다. 2018년 75회 베니스 영화제의 황금사자상 주인공은 넷플릭스 영화 ‘로마’였다. 넷플릭스 영화가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은 첫 사례다.
칸 국제영화제가 여전히 넷플릭스와 대립 중이긴 하지만, 프랑스는 36개월간의 ‘홀드백’을 15개월로 단축시키는 결정을 했다. 다른 국가에 비해 15개월은 긴 기간이지만 보수적인 프랑스 영화 협회로서는 OTT의 영향력에 한 발 물러난 셈이다.
영화 ‘코다’가 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극장 개봉영화가 아닌OTT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건 94년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다.
영화를 보는 방법이 변하면 영화도 변할까?
코로나19 이후 비대면이 일상화되며 사람들은 더 이상 영화를 ‘극장’에서만 보지 않는다.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OTT를 선호하고 있다. 이를 캐치해 디즈니 플러스, 아마존 스튜디오, 애플TV+, HBO 맥스 등이 넷플릭스에 이어 OTT 사업을 강화하고 작품에 막대한 자본을 쏟고 있다. 영화계가 코로나19로 잃어버린 2년의 시간과 영향력을 되찾기 위해 힘쓰고 있지만, 이미 OTT, 특히 넷플릭스는 미디어의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결과를 수용하든, 거부하든 각 시상식의 조직위 몫이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이 상생에 더욱 유리하지 않을까. 재편된 미디어 지형이 ‘영화’를 어떻게 바꿀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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