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Place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거리 부산 & 중부산지사
천마산 산복도로 중턱에 자리한 전망대에 서니 부산 시내의 풍광이 선명하게 펼쳐진다. 부산항에서부터 해운대구까지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찬 풍경은 대한민국 제2의 수도이자 제1의 항구도시답게 화려하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천루와 현대적인 건축물들 사이로 1930년부터 형성된 낡고 남루한 판자촌이 공존하며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장은경 사진 이원재(Bomb 스튜디오)
부산시 원도심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천마산 하늘전망대.
천마산 산복도로와 하늘 전망대
원래 한적한 어촌이었던 부산은 일제시대 수탈을 목적으로 개항되면서 근대도시로 성장했다. 6.25 전쟁 때는 전쟁피란민들이 모여들어 임시 수도로서의 역할을 했다. 전쟁통에 전국에서 부산으로 모여든 피란민은 깎아지른 산비탈이건, 도심이건 가릴 것 없이 삶의 터전을 삼았고, 판자촌을 형성했다. 지금도 부산시 곳곳에는 당시에 형성됐던 산동네들이 많이 남아있다.
천마산 하늘전망대에는 부산 피란민들의 삶을 담아낸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이었던 노부부가 역사의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겪으며 치열한 생을 살아온 세대의 상징처럼 벤치에 나란히 앉아 부산 시내를 굽어보고 있다. 이들이 이곳에 서서 바라보는 부산 시내 풍광은 헤아릴 수 없는 애환과 회한이 필터처럼 입혀져 있을 듯하다.
갈 곳 없는 피란민들이 일본인공동묘지 위에 마을을 만들었다는 비석마을 입구.
한 사람이 겨우 다닐만한 비석마을의 좁은 골목.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마을, 아미동 비석마을
하늘 전망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미동 비석문화마을도 피란 시절 형성된 산동네 중 하나다. 감천문화마을, 흰여울문화마을 등이 더 유명하지만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은 아직 덜 알려져서인지 신산했던 피란민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일제 강점기 때 이곳은 일본인들의 공동묘지였다. 해방되어 일본인들은 떠나고 그들의 묘지는 버려진 공간이 되었다. 그 후 6·25 전쟁 당시 몰려든 피란민들이 묘지 위에 집을 짓고 마을을 형성했다. 비석들은 집의 주춧돌이나 벽돌의 일부로 사용됐다. 지금도 거리를 걷다 보면 그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에 마을 초입에 있는 지도를 미리 보고 가면 좋다. 비석에 새겨진 누군가의 죽음이 누군가의 삶으로 이어져 온 아이러니한 공간이다.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길
부산시에서도 서구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경남도청 소재지였고, 한국전쟁기에는 1,0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대한민국 임시수도로서의 기능을 수행했다. 그래서 이곳엔 근대역사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 곳곳에 남아있다.
1936년 조선와사전기(주)의 본사 건물로 지어진 중부산지사 사옥도 근대역사를 품은 공간으로서 의미가 깊다. 당시 이곳에서는 부산의 전차 운행과 전등 및 가스 공급을 담당하였고 이후 남선전기 사옥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임시수도 시기에는 상공부 건물로 활용됐으며 1988년부터 중부산지사 사옥으로 쓰이고 있다. 1930년대 건축양식, 건물 구조가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어 2007년에는 국가등록문화재 제329호로 지정되었다. 실제로 중부산지사 건물을 보니 86년 된 건물답지 않게 깨끗하고 번듯해 여느 현대식 건물 못지않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르네상스식 처마와 연돌 등에서 오래된 건물의 위엄을 발견할 수 있다. 두꺼운 석조로 된 계단 난간, 귀빈응접실의 고풍스러운 천장 몰딩 등 건물 내부의 디테일한 인테리어에서도 오래된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다. 건물 옥상에는 옛날 방공포대의 흔적이 남아있다.
또 부산 최초의 엘리베이터를 만날 수 있다. 현재도 실제로 사용되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오래된 내부 기기는 현대식으로 전면 교체됐다. 하지만 성인 4~5명이 타면 운신하기조차 어렵게 좁은 내부 공간과 벽에 남아있는 고풍스러운 문양의 장식들이 이 승강기의 오랜 역사를 보여준다. 3층에 올라가면 거대한 철문이 눈길을 끈다. 구릿빛 문고리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비밀스러워 보이는 이곳은 대형금고로 사용됐던 곳이다. 두께가 30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철문은 성인이 밀기에도 벅찰 정도로 무겁다. 안으로 들어가면 생각보다 넓은 내부 공간에 또 한 번 놀란다. 이곳은 조선와사, 남선전기 당시 전차사업을 했었기 때문에 승차권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졌단다.
이곳에서 실제로 생활하는 중부산지사 사우들은 어떨까? 사실 불편한 점이 꽤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건물이 오래되다 보니 단열도 잘 안 돼서 창문과 문틈으로 바람도 많이 들어오고, 난방설비들이 열을 내기 시작하면 요란한 소리를 내기도 한단다.
하지만 국가등록문화재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 자체도 의미 있을뿐더러 조선와사, 남선전기 등 한전의 원류였던 전력 회사들의 흔적을 보며 100년 전기역사의 한 페이지를 이어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일깨울 수 있다고 이들은 뿌듯하게 이야기한다.
근대역사의 흔적이 지층처럼 남아있는 중부산지사 건물 전경.
회의실의 조명, 몰딩 등에서 근대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다.
중부산지사 엘리베이터. 부산에서 최초로 지어졌다고 한다.
전차사업 당시 승차권을 보관했던 대형금고 철문.
전력사의 맥을 잇는 중부산지사
중부산지사가 관할하는 부산시 서구, 중구, 사하구는 특히 근현대를 이어온 부산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공간이다. 역사적 의미는 매우 크지만 오래되고 노후화된 설비들이 많다. 특히 원도심과 재래시장에 지중설비를 비롯한 노후설비들이 몰려있고 해안과 가깝다보니 염진해 등으로 설비관리에 어려움이 많다.
원도심의 중심부로 상가들이 밀집된 남포동에 두 개의 배전스테이션을 운영하고 있다. 배전스테이션은 배전용 변전소로 전력설비를 도로, 공공용지에 설치하지 않고, 건물, 지하구조물 등에 집약해 설치하여 전력공급상태, 설비운영상태, 화재 및 보안상태를 자동으로 종합 감시하는 효율적인 전력공급시스템이다. 남포배전스테이션은 두 곳을 합하면 약 600호(7,700kW)의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남포 #1 배전스테이션을 가보니 지하포함 5층으로 특별히 이곳에는 전국에서 유일한 배전스테이션 모의 훈련장이 있다. 전력공급장치반, 전력공급절체반, DC전원반 등의 모의 설비를 구축해놓아 모의훈련과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또 이곳 중부산지사엔 특별한 선로가 있다. 바로 남포해저전력구이다. 남포동 부산변전소와 영도구 영도변전소를 잇는 약 1.5km 길이의 터널식 해저전력구다.
실제로 해저전력구를 들어가 보았다. 끝없는 나선형 계단을 따라 54m를 내려가니 양옆으로 선로들이 이어지는 길고 긴 터널이 나온다. 이곳에는 송전선로 3회선, 배전선로 4회선이 설치돼있다고 한다. 해저선로지만 전력구를 오가며 진단장비를 가지고 수시로 진단할 수 있으며 화재 방지 장치들도 설치되어 있어 중부산지사와 영도지사간 안정적인 전력공급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아울러 중부산지사는 영도지사, 서부산전력지사와 합동으로 안전진단TF를 구성하여 송배전 합동점검을 추진하고, 열화상 진단, 보수와 NDIS도면 정비 등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안전이 화두인 요즘에는 지속적이고 정기적인 점검으로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해 설비관리에 힘쓰고 있다.
1. 남포동 부산변전소와 영도구 영도변전소를 잇는 남포해저전력구를 점검하는 중부산지사 사우들. 2. 중부산지사의 깔끔한 종합봉사실 전경.
3. 남포#1 배전스테이션에는 전국에서 유일한 배전스테이션 모의훈련장이 설치돼있다. 4. 부산의 근대역사의 상징인 중부산지사 사옥 앞에 선 사우들.
5. 중부산지사 1층에는 한전의 뿌리인 근대시기 전력사를 볼 수 있는 작은 전시관이 마련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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