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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FETY FIRST!
안전에 대한 모두의 재인식이
필요한 시점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티베트 속담이 전하는 말에 누구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쓸데없는 걱정은 우리를 지치게 할 뿐, 아무런 문제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면 생각이 달라진다. 연일 뉴스에 등장하는 사건 사고와 주변에서 직접 경험하는 불안한 순간들 때문이다. 나와 가족과 공동체의 안전은 과연 어떻게 얻어낼 수 있을까?
이명석(문화비평가)
당신은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끼십니까?*
한국리서치가 물었다.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응답자는 23%였고 안전한 편이라는 사람은 77%였다. 전체적으로 우리 사회를 안전하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높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취약 계층은 분명히 존재한다. 여자(27%)와 월평균 가구소득 300만 원 미만(29%)의 사람들의 불안감이 높았고, 보호가 필요한 취약 계층을 묻자 미취학 영유아 및 어린이(51%), 노인(27%), 장애인(18%) 순으로 대답했다.
* 2021년 11월 12일~15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
한국이 OECD에 가입한 지 25년이 지났다. 그러나 우리가 선진국 수준의 안전을 확보하고 있는가 자문할 때 쉽게 긍정의 답을 내놓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쩍쩍 벌어지고 있는 불안의 틈들 때문이다. 수십 층의 아파트가 건설 도중에 무너진다. 거리엔 신호를 무시한 오토바이들이 속도 경쟁을 하니 아이들의 짧은 등하굣길조차 안심하기 어렵다. 국민들의 건강 검진표엔 빨간 숫자가 선명하지만 이를 개선하는 일은 개인의 몫이 된다. 국가의 경제 순위가 높아지더라도 개인의 경제적 파산을 막을 안전망은 여전히 부실하다. 심지어 가족과 연인 사이에도 폭력이 오가고, TV 연애 상담 프로그램에서는 안전 이별을 위해 가스총을 준비하라고 한다.
안전제일, 단순한 표어가 아니다
안전제일(Safety First)! 지금은 초등학생도 아는 캠페인 문구다. 이 말은 1906년 US 철강회사의 사장이었던 E. H 개리가 처음 쓴 말이다. 당시 시카고 동쪽에 대규모 철강크러스트를 구축하면서 재해가 잇따르자 그는 회사의 사훈을 돌아봤다. ‘생산제일, 품질제이, 안전제삼’ 그는 이것을 ‘안전제일, 품질제이, 생산제삼’으로 바꾸었는데 재해 예방은 물론 품질과 생산성까지 개선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곧바로 여러 나라에 ‘안전제일협회’가 만들어지고 안전을 우선으로 삼는 문화가 퍼졌다.
안전은 나무판자로 둘러싼 오크통과 비슷하다. 딱 한쪽만 부서져도 우리의 일상은 쉽게 무너져 버린다. 건강, 경제, 국방, 치안 등 모든 면에서 최소한의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안전을 확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영국에는 이런 말이 있다. “가장 안전하게 운전하는 방법은 백미러에 경찰차가 보이는 거다.” 규율을 세세히 알고 지키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공사장에서는 안전모를 쓴다. 승용차를 타면 안전벨트를 멘다. 약을 먹을 땐 설명서를 꼭 읽는다. 귀찮거나 불편할 때도 있다. 그러나 안전을 위한 방지턱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이 문명이다.
또한 안전은 서로가 서로를 지켜줘야 한다. 어느 나라든 안전에 대해 경계하는 사람을 ‘겁쟁이’라고 멸시하는 문화가 있다. 하지만 자신이나 집단이 위험하다고 경계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노동 재해를 방지하는 ‘작업중지권’, 배달 업체의 ‘위드 세이프티 캠페인’, 초등학생들을 위한 ‘안전 우산’ 등 다양한 안전선은 우리에게 더 큰 자유를 준다. 스포츠에서 서로 다투거나 다치지 않게 해주는 규칙과 같은 것이다.
과도기, 사회 변화에 따라 새롭게 나타나는 위험들
세상이 달라지며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들도 변화하고 있다. 지난해 3월 통계개발원이 발간한 ‘국민 삶의 질 2020’ 보고서에서 국민들은 개인정보 유출(54.7%), 신종질병(52.9%), 범죄(39.9%), 정보보안(39.3%), 교통사고(35.0%) 등에 높은 불안감을 나타냈다. 앞서 언급한 조사에서도 ‘안전을 위협하는 원인’으로 사이버 범죄를 든 비율이 가장 높았다(79%). 보이스 피싱 등 전자금융범죄 등이 크게 늘어나고 있고, N번방 사건, SNS 악플 등 사이버 상에서 새로운 형태의 위협들이 우리의 안전을 침해하고 있다. 사이버 범죄의 특성상 직접적 접촉 없이 누구든 피해 대상이 될 수 있고, 현행 법률과 대응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도 어려움이다.
안전은 도전과 창의를 ‘리부트’한다
전통 사회에서는 친족들이 사는 마을에 들어서면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았다. 개인의 병, 빈곤, 재해 등도 공동체가 함께 책임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금도 지진, 수해 등 큰 재해가 발생하면 지역사회가 힘을 모으기도 한다. 그러나 1인 가정들이 도시에 밀집해 살아가는 지금, 각자의 안전을 개인이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고령화로 인해 안전 취약계층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최근 여러 지자체가 ‘시민안전보험’ 제도를 실시하고 ‘공동주택 재난안전 매뉴얼’을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도쿄 올림픽 이후 스포츠 클라이밍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자그마한 몸집의 서채현 선수는 어떻게 겁도 없이 암벽을 오를까? 안전을 위한 장비 ‘자일’과 ‘퀵드로’가 자신을 지켜준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안전망이 튼튼한 곳에서 자란 사람들은 도전 의식이 강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신선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서로서로 발밑을 확인하는 문화부터 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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