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대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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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의 잠재된 결핍과 인정욕구를 자극하다 <금쪽이>가 선물하는 새로운 관점과 질문
장기간 용변 보기를 거부하고 미용실이라면 기겁하는 아이를 두고, 오은영 박사가 두 보호자에게 이 행동의 이유를 추측해보라고 했다. 곧장 두 가지 답변이 돌아왔다. 하나는 하기 싫은 건 어떻게든 안 하기 위해 똥고집을 부려서고 또 하나는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있질 못하는 집중력 부족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모두 오답이었다. 알고 보니 아이는 촉각이 지나치게 예민했고 자신의 기질을 참지 못해 때마다 울음을 터뜨린 것이었다. 모든 배경을 알게 된 보호자에게 오 박사가 다시 물었다.
“지금도 그렇게 보이시나요?”
이자연(대중문화 칼럼니스트)
“네 잘못이 아니었어~”
MBN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이하 ‘금쪽같은 내 새끼’)>를 향한 2030 세대의 환호가 요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프로그램 내에서도 2030 미혼 시청자가 많다는 소식을 간간이 전하고, 육아 경험이 없는 이들을 위해 부가 설명을 첨언하기도 한다. 새로운 회차가 방영을 마치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가 해당 에피소드로 시끌벅적하다.
도대체 왜 밀레니얼 세대는 유독 <금쪽같은 내 새끼>에 환호하는 것일까? 그 중심에는 단연 오은영 박사가 금쪽이를 진단하는 방식에 있다. 오은영 박사는 양육자의 고민을 두고 ‘문제’가 아닌 ‘어려움’이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그는 방송에서 “아이의 어려움을 찾아 살펴볼 거예요”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 미묘한 언어 선택은 문제를 아이의 잘못이 아닌,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목표로 인식하게 한다.
2030 세대는 어린이를 탓하지 않는 어른의 존재를 낯설어하면서도 어렸을 적 친구를 사귀는 게 어려워서, 학교 가는 게 무서워서, 용변 조절이 잘 안 돼서 등 오로지 자기 잘못인 줄로만 알고 지냈던 어린 나를 다시 만나 위로한다. 무엇보다 ‘YOLO’, ‘홧김비용’, ‘워라밸’ 등이 보여 주듯 2030이 정서적 안정이 중요한 세대라는 것을 감안할 때, 어린 시절의 상처를 뒤늦게나마 치유 받는 게 이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가늠할 수 있다.
어른의 마음을 어루만진 ‘금쪽이’
<금쪽같은 내 새끼>의 킬링 포인트 중 하나는 어려움의 당사자인 금쪽이가 속마음을 진솔하게 고백하는 것이다. 특정 사안에 관해 어른들만 논의하지 않고, 어린이에게도 직접 의사 표현할 기회를 줌으로써 금쪽이는 자기감정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이때 어린이는 어리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모를 거라는 선입견이 여지없이 무너진다. 또 이 과정을 통해 2030 세대는 어린 시절의 나 또한 모두 알고 있었다는 공감의 기억을 꺼내게 된다. 주변 어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희미한 의문을 느끼고도 도움을 채 받지 못해 결핍을 감내해야 했던 어린 나에게 연민을 느끼면서, 결국 일종의 인정욕구로 발현되고 만다. 당시 내가 확신하지 못했던 감정이 사실은 옳았다는 인정욕구. 너무 어린 나머지 나조차도 내게 주체성을 주지 못했던 게 깊은 아쉬움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한편 고백 시간을 다루는 프로그램의 태도도 무척 인상적이다. 금쪽이가 속마음을 말하도록 상황을 억지로 몰아가지 않고, 어린이의 결정을 오랫동안 기다려주거나 필요할 경우 방식을 뒤엎기도 한다. 일례로 대화가 어려운 금쪽이에겐 메신저 채팅으로 이야기하게끔 한다. 가장 배려해야 할 우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라 볼 수 있다.
우리 모두 한때 어린이였다
오은영 박사는 금쪽이 보호자에게 잘못을 지적하기도, 훈계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 또한 어린이로서의 역사가 있고, 그 역사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아왔다는 걸 계속해 강조한다. 부모가 된 이들 또한 금쪽이라는 사실을 계속해 상기시키는 것이다. 오 박사는 어렸을 적 받은 상처와 아픔을 그대로 간직한 보호자들을 위로하고 보듬는다. 어려서 부모의 사랑을 받은 기억이 거의 없다는 이들에게 어여쁜 인형을 선물하거나, 다정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러주며 유일하게 외로움을 알아주는 장면들. 그 앞에서 하릴없이 눈물 나는 이유는 부모가 된 것이 완벽한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이들 또한 매일을 처음 맞이하는 서툰 사람이라는 것을 놓치지 않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순간을 통해 양육자는 유년시절의 미완된 슬픔이 자신에게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되짚고, 부모가 되어본 적 없는 이들도 자신의 부모를 깊숙이 이해하게 된다.
혐오의 시대 속 한 톨만 한 상상
온라인 세상만 보면 마치 모두가 아이들을 미워하고 적대하는 것처럼 보이곤 한다. ‘급식이’, ‘잼민이’ 등 아동청소년을 가리키는 온갖 유희어가 난무하고 ‘노키즈존’으로 아이들을 배제하며, ‘민식이법 놀이’라는 명명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모두 어린이로 치환해버린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금쪽이의 문제적 행동을 보면 인터넷에 무성하게 퍼진 ‘요즘 아이들’에 관한 소문들이 진실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오은영 박사의 장면 단위의 분석과 정확한 설명을 듣는 순간, 그제야 우리는 ‘모두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중대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중요한 건 바로 이 깨달음이다. 그간 혐오를 가벼운 농담이나 하나의 놀이 문화로 고착시켜온 이들에게 오은영 박사는 한 가지 가정을 상상해 보자고 제안한다. 모든 어른이 아이들을 마음대로 오해하지 않고 나름의 배경과 이유를 찾아주려는 관대함을 장착할 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 질문 앞에서 2030 세대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자기 안의 아이를 소생시키며 비로소 다시 갈망한다. 사실 어린 시절의 내가 그토록 원했던 건, 그런 어른들이 꾸려준 존귀한 세상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