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Place
사라져가는 것들의 웅숭깊은 울림 대전 & 전력연구원
이야기를 품은 공간은 울림이 있다. 누군가의 일상을 담아내는 주거공간에는 그 삶의 이야기가 흔적으로 덧입혀진다. 그 일상의 흔적들이 오랜 세월 동안 무수히 덧칠되어 웅숭깊은 울림을 주는 특별한 공간을 만나러 대전으로 떠났다.
장은경 사진 이원재(Bomb 스튜디오)
소제동 거리에서 만난 추상미술작품과 같은 풍경들.
소제동, 그 세월의 흔적
대전역을 나서면 지척에서 만나게 되는 소제동은 대동천을 중심으로 서울의 해방촌처럼 오래되고 낡은 주택들이 늘어선 동네이다. 슬레이트 지붕과 시멘트로 이루어진 담장, 녹슨 철제 대문, 옛날 타일이 덮인 옥상 등 누군가는 그곳에서 웃고 울었을 공간, 한때 일상의 온기로 채워졌을 그 공간은 빛이 바래고 낡아서 껍데기만 남아있다. 폐허가 된 공간은 쓸쓸하고 스산하다. 개발과 보존의 논쟁이 거듭되면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묘하다. 1930~40년대 일제강점기 시대의 일본풍 나무문짝과 6~70년대 스타일의 창살과 타일, 철제 대문이 공존한다. 이처럼 소제동은 100년 세월의 이야기들이 수없이 덧칠되어 지금의 풍경을 이루고 있다.
소제동 거리에서 만난 추상미술작품과 같은 풍경들.
덧칠된 소제동의 100년 역사 속으로...
일제가 대륙침략의 기지를 만들기 위해 대전철도를 부설하면서 그저 ‘한밭’이었던 작은 시골 마을이 대전이라는 대도시로 성장했다.
대전역 주변에는 경부선 철도 부설을 위해 일본에서 파견된 철도 기술,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마을이 생겨났다. 이른바 관사촌이다. 일본의 침탈과 수탈이 본격화되면서 대전역은 더욱 활기를 띠었고, 관사촌의 인구도 늘어나고 확대되었다. 소제동 관사촌은 여러 개의 관사촌 중 하나인 동관사촌이다. 해방 후 소제동 관사촌만 6·25 전쟁의 폭격을 피해 유일하게 남아 그 공간의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다.
본래 소제동에는 소제호라는 호수가 있었다. 이곳은 중국의 소주나 항저우의 아름다운 호수에서 이름이 유래했을 정도로 경관이 빼어난 곳이었으며, 대유학자인 우암 송시열 선생이 사랑하여 관직을 접고 노년생활을 보낸 공간으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제가 소제동 관사촌 거주자들의 편의를 위해서 대대적인 치수 사업을 벌이면서 소제호는 1927년 매립되어 사라졌고 호수가 있던 자리에는 대동천이 연결되어 지금까지 흐르고 있다. 해방 이후에는 피난민촌이 형성되었다가, 재개발계획으로 거주하던 주민들이 대부분 이전하면서 이 공간은 쇠락했고, 소멸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이곳의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관사촌이라는 역사적인 의미가 주목을 받으면서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빛바랜 폐가들이 늘어선 골목 사이에서 뉴트로 트렌드로 재탄생한 다양한 공간들을 찾아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소제동 이발소.
1932년 지어진 옛 충남도청이자 현 대전근현대사전시관.
대전시 동구 인동에 자리한 옛 대전보급소 외관.
옛 충남도청이었던 대전근현대사전시관
일제강점기에 성장한 도시답게 대전에는 붉은 벽돌의 근대식 건물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현재 대전 근현대사전시관으로 쓰이는 옛 충남도청 청사는 1932년에 지어져 한국전쟁 중에는 임시 중앙청과 전방지휘사령부로 사용됐고, 2012년까지 충남도청으로 사용됐던 곳이다.
등록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된 이곳은 1930년대식의 디테일한 건축양식과 외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이채롭다. 그래서인지 영화 <변호인> 등 다수의 영화가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다고 한다.
전력사의 한 페이지를 간직한 대전보급소
근대 시기 건축문화재들이 밀집해있는 대전에는 전기역사의 한 페이지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바로 대전시 동구 인동에 자리한 한전 대전보급소이다. 이곳 역시 대전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대전보급소는 1930년에 건립되었고, 당시 대전의 전기사업을 맡았던 대전전기주식회사에 소속된 발전소였다. 설계자는 조선총독부라 명시되어 있다. 대전전기주식회사는 전기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3개의 발전소를 건립하였는데 한국전력공사 대전보급소는 그 중 제3발전소이다. 2004년에 국가등록문화재 99호로 지정되었다. 이는 현재 전력연구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한전 대전보급소는 대전지역 근대시기 문화재로 지정된 가장 이른 시기의 산업유산으로서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솟을지붕과 오래된 붉은 벽돌의 외관이 주변의 고층아파트들과 대조되며 백년 세월의 흔적을 드러낸다.
1. 미래에너지사회 비전을 제시하는 홍보전시관 2. 융복합프로젝트 연구소의 로봇&드론연구팀 3~4.전력연구원 R&D현장
5. 세계 최초 서남해해상풍력 일괄설치기술을 개발하고, 진수식을 개최한 전력연구원 주역들.
2050 탄소중립을 여는 R&D의 핵심공간, 전력연구원
전력연구원은 1961년 경성전기, 조선전업, 남선전기 등 3개의 전력사가 한국전력주식회사로 통합되면서 전기시험소로 출범하여 1993년 현재의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둥지를 틀었다. 지난 60여 년 동안 전력공급 안정화를 위해 광역 전력계통 실시간 해석기술, 지중케이블 시험기술, 한국형 배전자동화시스템(DAS) 기술 등을 개발하여 세계 최고의 전기품질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2050 탄소중립’목표로 나아가기 위하여 전력연구원의 R&D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앞으로 확보해야 할 기술로는 공급 측면에서 해상풍력, 태양광 재생에너지 핵심기술과 수소·암모니아 등 무탄소 연료 기반 발전기술과 탄소포집·활용 및 발전효율 향상이 핵심이 될 것이다. 망 운영 측면에서는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에 따른 수용한계 확대, 전력망 유연성 확보 및 분산화·마이크로그리드화에 대비한 기술 개발 등이 당면한 현안이다.
최근 성과로는 해상풍력 석션버켓 및 일괄설치선(MMB) 기술을 꼽을 수 있다. 전력연구원은 10여 년 전부터 해상풍력 분야 기술개발을 진행해 왔고, 그간의 성과로 신개념 해상풍력 석션기초 개발을 통해 획기적 공기단축과 투자비 절감을 실현하였다.
석션버켓은 대형 강관파일 내부의 물을 펌프를 통해 배출할 때 발생되는 수압차만을 이용하여 풍력터빈을 하루 만에 바다에 설치할 수 있는 급속설치 공법이며, 해상풍력 일괄설치선(MMB : Multi-purpose Mobile Base)은 상기 석션기초 기술을 기반으로 해상풍력 터빈 전체를 한 번에 들어 올려 운송·설치하는 특수선박을 일컫는다.
이러한 석션버켓 및 해상풍력 일괄설치선 기술을 통하여 해상풍력터빈 하부기초 설치비용을 기당 약 30억 원 절감할 수 있으며(5MW 기준), 획기적인 해상 공사기간 단축(최대 80일→1일)이 가능하다. 전력연구원이 개발한 석션버켓 기초는 국내 최초의 국가 해상풍력 발전단지인 실증단지에 직접 적용되어(′17년 8월 설치) 안정적으로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앞으로도 전력연구원은 국내 해상풍력의 기술리더로서 단순 기술 개선이 아닌 해상풍력의 판도를 바꾸는 혁신적인 연구에 매진할 계획이다.
지난 60여 년 동안 전력연구원은 국가 경제의 중요한 축인 전력산업 생태계와 전력산업 발전의 성장과 역사를 함께 하여 왔다. 1961년 발전설비는 427MW, 국민 1인당 전력소비량은 46kWh에 불과하였으나, 2020년 기준 발전설비는 133GW, 1인당 전력소비량은 9,826kWh로 큰 성장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성장 가운데 전력연구원은 연구개발을 통해 국가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소비자들과 함께 고품질의 안정적 전력공급을 가능케 하는 밑거름 역할을 해왔다.
앞으로 전력연구원이 대학, 연구소, 민간기업과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개발하여 2050 탄소중립의 주역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