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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피로를 위로하는
해질녘 광경

글 김소울(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 <치유미술관>저자)

지구가 쉼 없이 공존과 자전을 하는 만큼 우리들의 삶도 매일 치열하게 흘러간다. 시계가 없다면 지금이 몇 시인지 알 수 없는 낮 시간이 지나가고 하루가 저물어가는 시점이 오면 하늘이 물든다. 다채로운 위로를 품은 해질녘 풍경을 발로통이 자신만의 색채로 담았다.

Sunset 1913 II | 1913 | 펠릭스 발로통 | 42x75cm

찰칵 이 순간

유난히도 하늘에 펼쳐진 구름의 모습이 다양했던 올 한 해, 노을의 색도 그만큼 다채롭다. 멋진 해질녘 풍경이 눈에 띄어 핸드폰을 들어 찍어 보았는데, 눈으로 보았을 때만큼의 심상(心想)이 담기지 않아 아쉬운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라도 자연의 경이로운 색을 온전히 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스위스 출신의 화가 펠릭스 발로통(Fellix Vallotton)은 바닷가에서, 그리고 숲에서 본 노을의 모습을 캔버스에 담았다. 응당 바다라면 사용될 푸른색이 아닌 녹색을 사용했고, 하늘에는 보라색과 연둣빛이 함께 물들어 있다. 색채가 사물의 원래 색과 같을 필요가 없다는 고갱(Paul Gauguin)의 관념에서 발전한 나비파의 대표주자 발로통은 단순한 표현, 굵은 윤곽선과 장식적 기법으로 이후 20세기 초 추상미술의 시대를 열었다.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에 주황색 해가 떠 있다. 해는 바다에 도달해서도 그 색이 변하지 않고, 부서지는 파도를 거쳐 작가를 향해 주황빛으로 돌진하고 있다. 낮 시간에는 당연히 존재하여 그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던 해가 이제 곧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마음을 온전히 알기라도 하는 듯, 태양이 사라지는 그 순간 하늘은 가장 화려한 빛을 우리에게 선물해 준다.

landscape at sunset | 1919

유한하기에 소중한 오늘

사르트르, 하이데거로 대표되는 실존주의 철학은 지금의 하루가 언제까지나 반복되지 않는다는 삶의 유한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해가 바다 너머로 사라질 것을 알기에 해질녘 이 시간이 더 소중하듯, 우리는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2021년이라는 한 해가 12월 31일이 되면 끝나듯, 만남이 있다면 이별이 있고, 삶이 존재한다면 죽음은 필연적이다.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생이, 오늘의 하루가 얼마나 귀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립던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미뤄두었던 운동도 시작하고, 점찍어 두었던 맛집도 찾아가고,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하고, 가고 싶었던 곳도 방문해 보는 등 미뤄두었던 특별한 시간을 보낼 올해는 아직 많이 남아있다. 서른한 번의 노을을 볼 만큼은 있다. 발로통이 하늘을, 해를, 바다를, 숲을, 구름을 자신만의 색으로 담았듯, ‘나’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삶을 생각해 보자. 어떤 색으로 칠하건 자유는 온전히 나의 것이다. 선택에 대한 책임과 함께 고단히 보낸 하루가 끝나갈 무렵,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옷깃을 파고드는 추위를 오늘도 견뎌낸 나에게 해질녘 노을이 따듯한 위로를 건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