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HOME > Theme > Keyword

미완의 아름다움과
‘근사함’에 대하여

글 박사(북칼럼니스트)

어떤 일을 시작해 끝마치기까지, 마음을 짓누르는 압박감이 들거나 실수에 대한 불안이 크다면 당신은 완벽주의자일 가능성이 크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높은 기준 앞에서 좌절하고 있다면 미완성의 멋진 점,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볼 때다.

완벽한 마무리는 가능할까?

시간에는 매듭이 없지만, 사람들은 스스로 만들어놓은 시작과 끝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에 매이곤 한다. 나쁘지 않다. 새해는 힘차게 마음을 다지고 연말에는 방만하게 널어놓았던 일을 마무리할 수 있으니. 그러나 완벽주의자에게는 그 ‘의미’가 독이 되곤 한다. 쉽게 시작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는 당신, 미완성을 겁내 아예 시도조차 못하는 당신. 당신은 스스로 자책하듯 게으름뱅이가 아니라 완벽주의자일 가능성이 높다. 완벽주의자들은 제대로 하려다가 시작조차 못하거나, 완벽한 마무리를 하지 못할까 봐 지레 자기 비하에 빠지곤 하니까.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완벽하지 않다고 그 가치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제8번은 ‘미완성 교향곡’으로 불린다. 제2악장까지만 완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3악장은 진행된 초고가 남아있지만, 제4악장은 없다. 1822년에 쓰이기 시작한 이 곡은 도중에 멈춘 채 묻혔다가 슈베르트가 사망한 후 1865년에서야 처음 연주되었다.
그렇지만 이미 완성된 부분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브람스는 ‘이 곡은 양식적으로는 분명히 미완성이지만 내용적으로는 결코 미완성이 아니다. 이 두 개의 악장은 어느 것이나 내용이 충실하며, 그 아름다운 선율은 사람의 영혼을 끝없는 사랑으로써 휘어잡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라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온화하고 친근한 사랑의 말로써 다정히 속삭이는 매력을 지닌 교향곡을 나는 일찍이 들은 적이 없다’라며 극찬했다. 이 곡에 매혹된 이들은 슈베르트가 천재적인 직감으로 이미 담아야 할 것을 다 담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멈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갔으니, 본인이 반박하려야 반박할 길 없는 극찬인 셈이다.

미켈란젤로의 노예 연작

‘미완의 완성도’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또 있다. 미켈란젤로의 ‘노예 연작’이다.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무덤을 장식하는 용도로 주문받은 이 작품은 그가1534년 피렌체를 떠나게 되면서 현재의 상태에 멈췄다. 이 작품 또한 논란이 분분하다. 작업 도중 타의에 의해 멈춘 것인지, 아니면 이 자체로 또 다른 완성인지에 대하여. 이 작품이 이미 완성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다른 거친 부분들에 비해 다듬은 몸통이 매끈하게 연마되어 있다는 점을 든다. 완성된 부분과 아닌 부분의 극적인 대조가 바로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추측하는 것이다. 대리석 덩어리에 갇혀 꺼내달라며 몸부림치는 듯한 이들 조각을 보고 있으면, 현재의 한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고통을 묘사한 것이라는 해석에 마음이 기운다.

완벽을 향해 가는 ‘상태’, 논 피니토

‘논 피니토(non finito)’란 작품을 의도적으로 미완성 상태로 남기는 기법을 말한다. 미완성 자체를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미완성 작품은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미완성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 미완성임에도 불구하고 카탈루냐 현대 건축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사망한 이후에도 계속 건설 중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지극한 사랑을 받는다. 2026년이면 완공된다는 소식이 반갑지 않을 정도다.
불행으로 인한 미완성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경우도 있다. 프랑스 영화감독 장 르누아르는 모파상의 소설 <시골에서의 하루>를 각색한 영화를 촬영했는데, 느닷없는 폭우 때문에 원하는 장면을 찍지 못한 데다가 촬영스태프들이 싸우는 바람에 마무리조차 짓지 못했다. 그러나 미완성 상태로 개봉한 이 영화는 오히려 찬사를 받으며 걸작의 반열에 올랐다. 순조롭게 완성했으면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까? 알 수 없는 일.
완벽하지 않다면, 근사하면 된다. ‘근사하다’는 말은 요즘은 ‘그럴듯하게 괜찮다, 썩 좋다’는 뜻으로 쓰지만, 원래의 의미는 ‘거의 같다’는 뜻이다. 완벽한 마무리가 힘들다면 비슷하게 흉내만 내도 된다고 마음먹어보자. 세상은 이상하다. 완벽한 것만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어떨 때는 ‘근사한’ 것에 더 열광하기도 한다. 좀 더 느슨하게, 좀 더 여유롭게 살아도 괜찮다. 내가 나를 너무 강박적으로 몰아간다는 생각이 드는가? 미완성의 근사함을 생각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