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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회복탄력성에 대하여

글 이명석(문화비평가)

너도밤나무는 노루가 새싹을 먹으면 쓰디쓴 잎을 피워 자신을 보호한다. 침팬지는 몸이 아프면 독한 나무즙을 빨아먹고 하루를 쉰 뒤 좋아하는 무화과를 따먹는다. 그럼 부모의 꾸지람을 듣고 침대에 처박힌 아이는 어떻게 하나? 할머니의 따뜻한 ‘약손’만이 효과가 있다. 지금의 우리도 비슷하다. 긴 고통으로 푸석해진 마음을 회복시킬 다정한 탄력이 필요하다.

건강한 사람, 약한 사람
모두에게 필요한 ‘마음 백신’

두 해 이상, 우리는 갑갑한 마스크를 쓰고 끝이 안 보이는 터널을 걸어왔다. 병에 걸려 쓰러지거나, 소중한 가게 문을 닫거나, 겨우 구한 일자리를 잃기도 했다. 그럴 때 손을 잡아 줄 가족과 친구조차 만날 수 없는 상황은 우리를 더욱 힘들게 했다. 이제 터널 끝의 빛이 조금씩 보이고 “끝났다!” 환호하며 파티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조심스레 주변을 돌아봐야 할 때다.
“거대한 공허가 가슴과 폐에 가득 찼어요. 생각할 수도 숨 쉴 수도 없었죠.” 셰릴 샌드버그는 구글, 페이스북, 디즈니 등을 이끄는 기업인으로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되었다. 하지만 휴가 중에 남편이 갑자기 죽자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버렸고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오리지널스>를 쓴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가 조언자로 나섰다. “최선을 추구하는 옵션 A가 무너졌다고 삶이 끝난 건 아닙니다. 상실과 역경을 받아들이는 옵션 B를 이끌어내야죠. 그때 절실한 것이 ‘회복탄력성’입니다.”

성장하는 힘보다
긴요한 회복탄력성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어떤 문제로 인해 손상이 되더라도, 다시 원래의 상태를 되찾는 능력이다. 국가, 사회, 개인 모두 일상이 무너지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자연재해, 전염병, 대량 실직과도 같은 큰일을 직면했을 때, 고통의 원인이 제거되었다고 해도 쉽게 일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준비된 나라는 재빨리 일을 수습하고, 건강한 공동체는 아픈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멘탈이 강한 개인은 남보다 빨리 웃음을 되찾는다. 애덤 그랜트는 이런 능력이 결코 선천적인 것이 아니며, 누구나 근육처럼 훈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은 우리의 감정 지능이 어려움을 겪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잘 보여줬다. ‘버럭이(Anger)’는 문제가 생기면 우리를 전투 모드로 만들어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화가 내면에 남아 있으면 회복의 시간에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기쁨이(Joy)’는 재건의 시기에 큰 역할을 한다. “잘못된 일은 신경 쓰지 마. 되돌릴 방법은 항상 있어!” 하지만 일어날 기력도 없는 사람을 끌고 다니는 바람에 ‘조이코패스’라는 별명을 얻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열쇠는 ‘슬픔이(Sadness)’에게 있다. 상처받은 사람들 옆에 조용히 다가가, 그가 어깨를 기대고 마음을 추스를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
코로나19로 병상에 누웠던 사람은 완치가 되어도 6개월 이상 후유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병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서울대 유명순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응답자의 84.5%가 ‘코로나19로 인한 걱정과 스트레스가 정신건강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우울감을 느낀 경우는 41.1%, 정서적으로 지치고 고갈된 경우도 40.6%에 달했다. 우리는 전례 없는 어려움을 함께 겪었고 그것을 회복하기까지는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특히 방역의 일선에서 자신을 소진했던 의료진, 경제적인 타격을 직접적으로 받은 소상공인, 오랫동안 등교하지 못한 학생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절실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얻은 것

“마음에도 백신이 있으면 좋겠어요.” 이런 말들을 많이 한다. 어떤 이들은 그런 백신을 가지고 있다. 투병, 화재, 실직 등을 겪으며 항체를 얻은 이들은 고통받는 사람들의 분노와 푸념을 잘 들어준다. 책, 음악, 식물 등 자신을 달랠 수단을 가진 사람들은 주변에 마음의 약을 권하기도 한다. 의외로 아이들의 탄력이 좋아, 자식들을 달래려다 오히려 위로를 받는 부모들도 적지 않다.
지난 2년, 우리는 팬데믹 전엔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것들의 빈자리를 절실히 알게 됐다. 따스한 교류의 소중함, 불편함을 감내하는 방법을 배웠고, 각자만의 방식으로 회복탄력성을 점검하기도 했다.
수십억 인류가 이처럼 함께 고통받은 역사는 없었다. 이 경험을 통해 우리는 거대한 항체를 만들어야 한다. 얇은 크레이프 낱장은 쉽게 찢어지지만 겹겹이 쌓으면 사랑스럽고 달콤한 탄력이 만들어진다. 개개인의 푸석해진 마음의 탄력을 되살려내고 그것을 겹겹이 쌓아올려 보자. 우리는 더욱 안전하고 푹신한 공동체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