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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이 가진 힘
The Dessert: Harmony in Red

글 김소울(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 <치유미술관>저자)

앙리 마티스에게 색이란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표현하는 통로였다. 그가 그림에 담은 정서와 에너지는 감상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여기저기 붉어지고 깊어지는 가을의 색감으로 기분을 환기해보자.

디저트 : 붉은색의 조화 | 1908 | 앙리 마티스 | 180×220cm

색채를 해방시키다, 앙리 마티스

평범한 프랑스 가정에서 가족들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한 여인이 가족들이 먹고 난 이후의 식사를 정리하고 있고, 보라색의 아라베스크 문양은 식탁보에서 시작하여 벽지까지 그 어떤 공간감도 없이 캔버스 위를 채우고 있다. 벽지도, 식탁보도 바닥도 모두 붉다. 어디가 벽인지, 어디가 테이블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저 멀리 보이는 푸른 초원은 창문 밖 풍경일까, 실내에 걸린 그림 액자일까.
프랑스의 야수파 화가 앙리 마티스(1869-1954)는 평평한 색면 위에 작곡가가 화음을 연구하듯 회화를 구성했고, 색과 형태가 어우러져 창작한 하모니가 곧 멜로디이자 리듬이라고 믿었다. 피카소와 더불어 20세기 최고의 화가라 불리는 미술계의 거장 마티스는 색을 대상으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미술의 장을 열었다. 색을 해방시킨다는 것은 색이 형태에 종속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주인공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우리 눈에 보이는 색깔들, 즉 빨주노초파남보, 어두움과 밝음, 선명함과 흐릿함과 같은 색(color)의 속성이 작품에 담긴 감정을 강하게 전달할 수 있다.
르네상스 이후, 화가들은 우리 눈에 보이는 색이 그대로 캔버스에 옮겨져야 한다는 불문율의 약속을 지켜왔다. 그러나 마티스는 색이란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표현하는 통로이며, 그림에 담긴 정서와 에너지는 감상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고 설명했다. 그가 이 그림에서 선택한 주인공 색은 붉은색이다.
붉은 배경 위에는 어린이의 색, 이벤트의 색으로 불리는 노란색을 입은 과일들이 돋보인다. 창문 또는 액자로 보이는 사각 프레임 안에는 휴식을 상징하는 초록의 공간이 보인다. 아주 단순하게 펼쳐진 듯 보이는 몇 개의 색들이 이처럼 조화롭게 눈과 마음을 자극할 수 있을까. 마티스는 자신의 작품 세계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했던 균형과 조화를 단순화한 색으로 표현해냈다.

붉게 물드는 단풍의 메시지

붉은색은 감정적인 고양과 긴장감이 담긴 색이다. 그렇기에 붉은색을 접하면 맥박이 빨라지고 흥분된다. 같은 맛이더라도 음식이 붉을수록 맛있다고 느끼며, 붉은 의상의 이성에게 높은 매력을 느끼기도 하는 것은 빨라진 맥박으로 인한 즐거운 긴장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음료나 패스트푸드점들이 모두 붉은 색을 마케팅 컬러로 설정한 데에는 이러한 색채 심리적 배경이 존재한다.
두근대던 마음이 지나가고 이어지는 정신적 이완은 쾌감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는 곧 해방감으로 연결된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도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사람에게 근육에 긴장을 주었다가 이완시키는 ‘점진적 근육 이완법’을 권하기도 한다. 붉은색은 긴장감을 주지만 상승과 분출을 통해 해소라는 양가적인 기능을 지닌다는 것이다.
색채로 느끼는 가벼운 긴장감이 피로감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면, 스트레스가 많은 일상 속, 우리의 주변에서 붉은 빛깔들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옷에서, 소품에서, 사랑하는 이의 입술에서, 맛있는 음식에서 우리는 붉은 색을 만나볼 수 있다. 바깥으로 눈을 돌려보자. 땅에서 시작하여 푸르른 에너지를 자랑하던 나무들은 서늘한 바람을 만났다. 그리고 가을하늘을 수놓던 잎새들은 수줍게 붉은색을 머금기 시작했다. 언제나 반갑게 찾아와서 재빨리 겨울 뒤로 숨어버리는 짧은 계절, 가을은 당신을 위해 짙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