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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대로 편집된 세상에
갇혀있진 않나요?

글 조수빈 (한국경제신문 기자)

유튜브, 넷플릭스 등 일상 속 OTT 서비스는 끊임없이 이용자의 ‘취향’을 읽는다. 서비스 내 이용자가 선택한 것을 학습한 인공지능은 다음에 이용자가 접속했을 때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추천한다. 하지만 그 취향이 정말 ‘내 취향’일지는 의심이 필요하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여기로 데려왔다

알고리즘을 활용한 추천 서비스는 플랫폼이 내세우는 하나의 전략이다. 플랫폼은 이용자가 최대한 플랫폼 내에 오래 머무르며 데이터를 쌓을수록 유리하다. 이용자는 그 추천을 받아들일 수도,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것을 택할 수도 있다. 이용자가 만약 그 콘텐츠를 받아들인다면 인공지능은 그를 바탕으로 이용자가 좋아할 만한 또 다른 콘텐츠를 추천한다.
이런 ‘선택-추천’의 과정이 누적될수록 인공지능의 학습 데이터도 늘어난다. 이렇게 제공된 알고리즘 결과를 보는 이용자 역시도 선택의 폭을 줄여 자신의 취향과 가장 가까운 콘텐츠에 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편리함을 느낀다. 우리는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의 서비스를 거의 매일 활용하기에 이들의 작동 원리와 효용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유튜브 이용자들의 댓글 중 ‘알고리즘이 나를 여기로 데려왔다’는 우스갯소리가 바로 이러한 개인 맞춤형 서비스의 특징을 정확히 짚어내는 부분이다.

편리함 이면의 문제점

문제점은 이러한 알고리즘 내에 이용자가 좋아하는 것, 궁금해할 만한 콘텐츠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용자의 시야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것만 존재하는 알고리즘 내에서 이용자가 할 수 있는 판단은 많지 않고, 그런 알고리즘과 반대되는 선택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렇게 알고리즘 내에 갇히는 이용자들과 같은 상황을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고 한다. 이용자의 관심사에 맞춰 필터링 된 정보만 접하게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필터 버블은 미국의 시민단체 ‘무브온(Move on)’의 이사장인 엘리 프레이저(Eli Pariser)가 쓴 『생각 조종자들(The Filter Bubble)』에서 처음 제기된 개념이다. 그는 정보를 필터링하는 알고리즘에 상업적, 정치적인 논리가 개입될 경우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이용자들은 정보가 필터링 된 기준을 알지 못한 채로 편향된 정보에 갇히게 된다.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된 상태에서 고정관념과 편견이 강화되면 이는 곧 가치관 왜곡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콘텐츠학회에서 발표된 알고리즘 필터 버블 현상에 대한 논문에서는 이러한 필터 버블 현상으로부터 오는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입증했다. 추천 알고리즘의 영향을 받지 않은 신규 계정을 2개 개설해 일주일간 각 계정을 보수와 진보 성향으로 훈련시켰다. 시간이 지날수록 보수 계정에선 대부분 보수 성향의 영상이, 진보 계정에선 진보 성향의 영상이 노출됐고 추천 영상 대부분이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부수현 경상대 심리학과 교수는 “짜장면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른 선택지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에 짜장면만 있는 줄 아는 것이다. 이것이 필터 버블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말했다.

‘버블’ 밖을 상상하는 노력

필터 버블로 인한 편향을 해결하는 방법은 사회적, 개인적 측면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언론사와 플랫폼 등의 콘텐츠 제공자가 기울일 수 있는 노력이 대표적이다. 언론사의 경우 한 가지 성향만을 조명하게 되는 태도를 경계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미국 언론사 월스트리스저널은 ‘블루 피드, 레드 피드’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해 진보, 보수 성향의 기사를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도록 지원했다. 영국의 진보 성향 언론사 가디언은 ‘Burst you bubble’이라는 섹션을 마련해 주별로 보수 측의 의견 및 기사를 추천해주기도 한다.
개인적인 노력도 중요하다. 필터 버블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알고리즘 자체가 편향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버블’ 밖의 정보를 받아들이기 위해 일부러 관심 없는 정보를 검색하거나 그 과정을 통해 실제로 관심의 영역을 넓혀나가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알고리즘이 추천해준 나의 취향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보고 듣는 정보 이외에 다른 정보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최대한 다양한 시각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이야기, 내 생각이 틀렸다 말하는 정보엔 분명 내가 놓친 무언가가 있고, 그 지점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버블을 터뜨리는 데에 중요한 키가 숨어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