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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교집합,
사람과 사람을 잇다

글 구선아 (작가, 책방 연희 운영자)

우리는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고, 교류하며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다. 이러한 욕구를 충족해가며 스스로가 누구인지 알아갈 수 있다. 전통적 집단 문화에서 개인 문화로 이동해가는 오늘날 우리가 소속되고 싶은 건강한 공동체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취향’이라는 가벼운 연대, 해시태그 하나로 묶인 느슨한 공동체는 그걸 가능하게 한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취향의 공동체는 어떠한 모습이며, 어떻게 변화해갈까?

공동체의 모습, 변화한다

취향을 소비하는 시대다. 아니 소비를 넘어 취향을 생산하고 공유한다. 취향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화의 산물이다. 환경에 의해 형성된 사고나 인지, 행동 체계, 성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어린 시절 교육환경이나 가정환경에 의해 고착화 되는 것은 아니다.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것을 경험하며, 또는 미디어를 통해 취향은 새로이 생성되기도 하고 변화하기도 한다. 특히나 개인 대부분이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고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개인의 취향 노출은 일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노출하며 타인과 소통한다. 이제 친구는 학교나 지역에 따라 사귀는 것이 아니라 해시태그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소속 때문에 관계를 맺는 고전적 사회공동체가 아니라 자유롭고 선별적인 본인의 취향을 중심으로 취향 공동체를 여럿 만드는 것이다. 이는 독립서점, 소셜다이닝, 커뮤니티 공간 등 물리적 장소에서 뿐만이 아니라 취미 공유 또는 자기계발 플랫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 온라인상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방법 혹은 목적이 변화했다.

취향의 느슨한 매개가 되는 ‘책’

최근 온오프라인에서 몇 년간 가장 돋보이는 취향 공동체의 키워드는 ‘책’이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이전에는 오프라인 공간에서 만나는 사례가 많았으나, 팬데믹 시대가 되면서 온라인 활동으로 전환되거나 새로이 생성되었다. 책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취향 공동체는 개인의 선택에 의해 자유로이 참여가 일어나는 수평적인 구조의 느슨한 공동체다.
책 기반의 느슨한 공동체 그 첫 번째는 독서 모임이다. 독서 모임은 직장, 학교, 지역에서 꾸준히 지속해 온 풀뿌리 활동이다. 하지만, ‘트레바리’와 같이 독서 모임 커뮤니티나 ‘교보 북살롱’, 독립서점들의 북클럽, 출판사 자체 북클럽 등이 생겨나면서 책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온오프라인으로 만나, 보다 느슨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직업과 나이, 사는 곳은 잘 몰라도 그 사람이 어떤 책을 좋아하고 어떤 작가를 좋아하고 책 읽는 성향이나 방법은 어떤지 잘 안다. 책이라는 중심축을 가지고 개인의 취향과 삶의 지향이 만나 교집합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두 번째는 독립서점이다. 문제집과 교재, 자기계발서, 베스트셀러 등 모든 책 분야를 판매하는 지역서점과 달리 서점의 콘셉트나 운영자의 취향에 따라 큐레이션한 책을 판매하는 독립서점이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 오프라인 공간 비즈니스가 무너졌다 하지만, 취향 소비 공간인 독립서점은 여전히 강세다. MZ세대는 물론 X세대, Y세대도 독립서점을 찾는다. 이들은 독립서점을 방문하는 것부터 독서 경험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책 큐레이션이나 서점 분위기, 서점 운영자의 취향이 나와 맞다면 단골손님이 된다. 서점에서 운영하는 작가와의 만남이나 독서 모임, 글쓰기 등 각종 모임에도 참여하게 되니, 독립서점은 취향을 기반으로 한 관계 맺기의 공간이 된다. 책과 개인, 서점 운영자와 개인, 개인과 개인, 사회와 개인 그리고 ‘나’와 ‘나’의 관계 맺기가 일어난다. 책 외에도 음악, 영화, 술과 같은 문화예술 키워드나, 창업, 비즈니스 등의 비즈니스 키워드, 운동, 환경, 비건, 젠더리스 등으로 이어지는 공동체도 많다. 이는 이전에 온라인 카페 중심으로 나타난 함께 취미 활동을 하는 것과는 또 다르다. 즐기는 것을 넘어 라이프스타일로 연계된다.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방법

현대사회에서 돈을 내고 취향을 찾고 만들고 소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취향을 소비하는 것 자체가 놀이가 된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회적 지지감 때문이다. 생각을 공유하고 비슷한 경험을 나누는 것을 통해 사회적 지지감이 생기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개인의 행복감은 커지고 외로움은 작아진다. 자기 생각을 노출하면서 확장된 자아로서의 존재감도 커진다. 더군다나 내가 바랐던 삶에 가까워지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책 읽는 나, 글 쓰는 나, 그림 그리는 나, 운동하는 나, 채식하는 나 등으로 개인을 개인이 선택하고 규정하여 자기 내러티브를 만든다. 이렇게 개인이 특정 취향 공동체에 참여하면서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의 질과 행복감이 향상되는 것이다.
이처럼 개인이 선택하는 취향 공동체는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서사를 생성하고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전통적인 공동체에서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 의해 개인의 정체성을 구축한다면, 현재는 개인의 소비, 취향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고 관계를 맺는 시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