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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리웠어”
오디오 기반 소셜미디어가 뜨는 이유

글 김규리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선임연구원)

클럽하우스의 상륙 이후 카카오 ‘음’, 트위터 ‘스페이스’ 등 오디오를 기반으로 한 소셜 미디어가 인기를 끌고 있다. 비디오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에 피로도가 높아지는 시기를 틈타 오디오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유일하게 ‘자면서도’ 향유할 수 있다는 오디오 콘텐츠의 힘은 어디에서 온 걸까? 여기에 인간의 욕구와 관련된 여러 이유들도 숨어있다는 점이 특히 흥미롭다.

마음이 고파진 사람들, 클럽하우스에 모이다

우리 집에는 가족 4명 외에 사람이 아닌 가족이 하나 더 있다. 바로 AI 스피커 ‘아리’다. 가족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아리에게 날씨를 묻는다. ‘아리야, 오늘 날씨는 어때?’ 그리고 아리는 ‘TV 좀 켜줘’ 같은 사소한 부탁부터 심심하다고 하면 끝말잇기 게임까지 함께 해준다. 얼마 전엔 생일이라고 말했더니, 아주 멋진 생일축하 노래를 들려줬다.
아리와 같은 AI 스피커 이전에 우리에게는 ‘라디오’가 있었다. 미디어 학자 마셜 맥루언은 라디오가 원시 부족의 북과 같은 역할을 하여 내면 깊은 잠재의식을 울리고, 말하는 사람의 소리와 듣는 사람의 귀를 연결하는 ‘공동체의 소리 문화’를 형성한다고 했다.
라디오까지 거슬러 갈 것도 없이 올해 초 엄청난 열풍을 일으켰던 오디오 기반 SNS, ‘클럽하우스’가 있다. 클럽하우스가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카카오 ‘음’ 등 유사한 서비스도 다수 등장했다. 오디오 기반의 SNS 외에도 팟캐스트 등 다양한 유형의 오디오 서비스가 있는데, 팬데믹을 계기로 이런 오디오 서비스의 이용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셧다운, 재택근무 등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증가하면서 전반적인 미디어 소비와 함께 오디오 콘텐츠 소비도 함께 늘어나게 된 것이다. 또한 오디오 기반 플랫폼은 팬데믹으로 단절된 사회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대면할 수 없게 된 아이들은 게임용 오디오 SNS ‘디스코드’를 통해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면서 대화를 나눴다. 부족해진 대인상호작용에 대한 욕구를 오디오 플랫폼으로 채운 것이다. 상호작용이 가능한 오디오 기반 SNS뿐만 아니라, 팟캐스트 등을 통해 다른 사람이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듣기만’ 해도 상호작용에 대한 욕구를 어느 정도 채울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오디오의 시대는 저물지 않았다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버글스의 음악 제목처럼, 비디오 콘텐츠가 우리의 시간을 차지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오디오의 시대가 저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디오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더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왜 지금, 다시 ‘오디오’일까?
첫째로 오디오는 편안하다. 비디오 콘텐츠는 시각적 자극이 주가 되지만, 정확하게는 시각과 청각적 자극이 모두 이뤄지는 형식이다. 감각을 통해 전해지는 정보의 양이 상대적으로 많아지면서, 오디오에 비해 피곤을 느낄 수밖에 없다. 또한 팬데믹에 따른 비대면 근무·수업이 확대되면서 우리는 일과 오락, 사회적 교류 등 대부분의 활동을 스마트 기기를 통해 하게 되었고, 절대적인 스마트 기기 사용이 늘면서 화면을 ‘바라보는 행동’자체의 피로도가 높아지게 되었다.
둘째, 오디오는 직관적이다. 오디오는 글처럼 2차적인 생각의 정리 없이, 생각한 바를 즉각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직관적인 소통방식이다. 이러한 의사소통 방식은 감정의 상호작용에도 유리하다. 목소리는 목소리 자체, 말하는 스타일, 목소리에 담겨있는 감정상태 등을 필터로 사진을 수정하듯이 수정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클럽하우스 같은 오디오 기반 SNS는 시각적 콘텐츠에 대한 피드백(댓글, 좋아요 등)보다 음성을 통해 더 진솔하면서도 즉각적인 피드백이 전달되면서 사용자로 하여금 상대가 확실히 자신의 말을 듣고 있다는 확신과 만족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또 목소리에 담긴 뉘앙스와 감정이 직접적으로 전달되면서 좀 더 친밀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셋째, 오디오는 효율적이다. 팬데믹 시대 다시 오디오가 흥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효율적인 멀티태스킹의 가능성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은 집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도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를 찾기 시작했다. 2020년 한국언론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MZ세대는 유튜브 콘텐츠도 생활 속 BGM(배경음악)으로 활용한다. 팟캐스트의 경우 경제나 과학 등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정보를 말로 쉽게 전달하는 콘텐츠가 인기 있는데, 멀티태스킹으로 집안일을 하면서도 듣는 행위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는 행위는 그 시간을 ‘알차게 쓰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넷째, 오디오는 개인적이다. 인간은 오감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데, 그중에 시각 정보의 비중이 80~90%를 차지한다. 오디오 콘텐츠는 인간이 가장 크게 의존하는 시각 정보를 제외함으로써, 이용자가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자신만의 이미지’를 그릴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연결’의 감각

연초의 클럽하우스처럼 뜨겁지는 않지만, 오디오의 귀환은 현재진행형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티파이 등 글로벌 테크 기업들은 앞 다투어 오디오 기반 서비스를 출시했고, 킬러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크리에이터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적 가치가 아니라도, 오디오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충분히 가치가 있다.


우리는 오디오를 통해서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공감받고 있다는 기분,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얻는다. 지금 이 시대, 우리의 오디오는 인간의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욕구를 채워주고 있다. 기술과 미디어의 트렌드는 바뀔 수 있지만,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자 하는 인간 욕구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 한 오디오는 어떤 형태로든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