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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슬레의 그림이 담은 미묘한
가을의 빛, 온도
Autumn light & Temperature

글 김소울(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 <치유미술관>저자)

알프레드 시슬레(Alfred Sisley)는 인상주의의 ‘교과서’로 불리는 화가로, 빛이 닿는 자연 속의 순간들을 사실적으로 포착하기 위해 야외 풍경화를 많이 그렸다. 피부에 와 닿는 듯한 계절의 감각을 그림으로도 느껴보자.

Hill path in sunlight 1891 알프레드 시슬레 61x50cm

자연의 색이 변하다

구멍이 뚫린 듯 쏟아지던 비의 시간들이 지나고, 뜨거운 공기를 머금었던 하늘은 어느새 저 멀리 달아났다. 유난히도 구름의 모양이 다양했던 올해, 발은 묶여있었지만 하늘을 바라볼 기회는 오히려 많았다.
가을에 접어드는 언덕,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알프레드 시슬레는 산책을 하다 잠시 멈춘 듯하다. 여름의 끝자락을 만끽하는 태양이 바닥에 쏟아지고, 구름에 산란하며 빛나는 빛들이 부서져 나무와 흙, 그리고 그림자 속에 울려 퍼지고 있다. 그림 가운데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왼쪽에 얼마나 큰 나무가 있을지 상상하는 즐거움을 준다.
‘인상주의의 교과서’라 불리며 생전에 모네, 르누아르 등과 교류하던 중심인물이었지만 모네의 빛에 가려져 생전에, 또 사후에도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이후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그는 계속 바깥에 나가 그림을 그렸다.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외부에서 초기작업 후 마무리는 실내 스튜디오에서 한 것과 달리, 시슬레는 그림의 마무리까지 야외에서 완성했다. 쉰 살이 조금 넘던 이날 그는 태양 빛이 따듯한 이 언덕 위에 있었다. 선선한 가을 초입의 바람을 느끼며 인생의 후반기를 맞이한 작가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자연 속에는 무수히 많은 색들이 존재한다. 나뭇잎 하나에도, 꽃잎 하나에도, 과일 하나에도 다채로운 색들이 무리 지어 움직인다. 오늘의 색과, 내일의 색이 또 다르다. 이렇게 보니 그림 속의 나무와 산, 돌과 바닥의 색이 모두 조화롭게 보인다. 저 멀리 서 있는 사람도 싱그러운 자연의 색과 함께하고 있다.
봄엔 꽃, 여름은 푸르른 잎, 가을은 낙엽 빛, 겨울은 눈. 우리는 눈에 보이는 자연물의 색을 보며 시간의 변화를 읽는다. 하지만 시슬레의 그림 속엔 형체가 있는 자연물이 아닌 ‘빛’이 계절을 보여준다. 화가의 섬세한 관찰력 덕분에 우린 1891년의 어느 하루의 볕과 바람을 체감할 수 있다.

피부에 속삭이는 계절의 목소리

바람의 온도가 달라지고 저녁에는 이제 제법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 다가왔다. 밤이 되면 옷장을 열고 어깨에 걸칠 옷들을 찾기 시작했다. 힘껏 달려오던 여름의 레이스를 잠시 멈추고, 저 높이 멀어진 하늘을 바라보며 여유를 만끽하기 좋은 시간이다. 에어컨 바람이 아닌 자연의 바람을 가르며 걸을 수 있는 이 시절. 작가가 언덕길을 걸었던 것처럼, 소중한 이의 손을 잡고 산책을 나가 보는 것은 어떨까. 그림 속 언덕 저 너머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저 멀리 서 있는 엄마와 아이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바람에 춤을 추는 구름과 나무들 사이로 가을을 환영하는 속삭임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