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HOME > Theme > CULTURE

그럼에도 출근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회사원 오디세이아

글 남지우(대중문화 평론가)

예측불허로 요동치는 2021년의 세계, 그리고 자본주의 대한민국이 있다. 전에 없던 취업난에 패배를 거듭하는 취준생, 끌이 보이지 않는 방역 규제에 몸서리치는 자영업자, 차별받는 비정규-현장직 노동자, 기존의 불확실에 새로운 불안정까지 떠안게 된 프리랜서와 예술가들이 있다. 그렇다면 사무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자판을 두드리는 사람들, 즉 ‘사무직’ 회사원의 현실은 덜 아프고, 덜 가차 없기만 할까? 최근 우리를 찾아온 두 편의 오피스 드라마, MBC <미치지 않고서야>와 유튜브·왓챠를 통해 공개된 <좋좋소>가 담아낸 우리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미디어가 재현한 직장 서사

대기업 한명전자와 중소기업인 정승네트워크, 업계 3위 기술회사와 대표 이하 5인 체제의 자그마한 상사, 22년 차 엔지니어 최반석(정재영)과 그 어떤 경험도 없는 영문과 출신의 신입 조충범(남현우). 설정상 닮은 점 하나 없어 보이는 두 작품은 동시대 노동에 대한 풍속도로서 놀랍도록 유효하다. 시청자의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오를 만큼 노골적인 일기이자 바로 어제 쓰인 오피스 증언록이다. 주인공들이 회사에서 경험하는 난감함과 애환의 성격은 여러 면에서 조금씩 다르다.

#해고의 그림자를 개인이 극복할 수 있을까?
<미치지 않고서야>

그중 하나는 해고의 그림자다. 실직의 위협은 예상외로 ‘無 스펙’ 중소기업 신입 충범이 아닌, 각종 특허의 보유자이자 사내에서도 알아주는 대기업 엔지니어 반석에게 드리워진다. 갑작스러운 사업부의 철수, 보복성 인사로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로 전락한 그의 생존을 위한 시도, 기회를 찾아 나서는 모습을 우린 목격한다.
좌천 인사, 정리해고, 그리고 희망퇴직과 같은 고용 무효화의 다양한 전술을 사용할 줄 아는 조직과의 대결에서 개인은 승리할 수 있을까?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지만, 극 중 인물들이 선택하는 생존을 위한 대안은 결국 성장을 가져왔다. 불의와 부조리가 만연한 실제 세계에서 사람들이 그러듯 그저 잘 살기 위해 버티면서 말이다.

#‘웃픈’ 회사 썰이 건네는 경고
<좋좋소>

<미치지 않고서야> 속 대기업 상황과 비교하면 <좋좋소>의 충범의 상황은 정승, 아니 양반처럼 보인다. 충범은 ‘좋소’ 기업 특유의 체계 없음, 복지 없음, 미래 없음, 그리고 노동법 불감증에 신물이 나 입사 일주일 만에 도망치고 만다. 하지만 무스펙 스물아홉 충범에겐 별다른 대안이 없고, 중소기업엔 당장 충원할 수 있는 인력이 없다. ‘구직난’과 ‘구인난’이라는 두 단어가 아이러니하게 공존하는 작금의 현실 덕분에, 주인공은 회사로 돌아와 자리를 지키게 된다. 앞날이 암담한 중소기업 정승네트워크에서는 다소 오묘한 방식으로 고용의 안정성이 지켜지는 것이다.
적나라하게 그려진 중소기업의 현실에 시청자들은 공감했다. 웹드라마의 짧은 호흡으로 그려낸 ‘웃픈’ 이야기는 재미도 재미지만, ‘적어도 우리 이러진 맙시다’라는 경고를 건넨다.

직장 서사, 우리 사회의 변화를 담았다

누군가는 희망퇴직의 대상자가 되어 눈물을 쏟아내지만, 동시에 누군가는 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날 ‘엑싯 플랜’을 세운다. 누군가는 괜찮은 능력을 갖추고도 원치 않는 부서로 쫓겨나지만, 동시에 누군가는 사내 성추행을 저지르고도 실력자라는 이유로 꼿꼿이 자리를 지킨다. <미치지 않고서야>와 <좋좋소>가 그리는 2021년 오피스의 풍경이 바로 이렇다.
하지만 직장 풍경을 담은 여타 과거의 드라마들과 달리 최근의 직장 서사는 불의에 분연히 맞서거나 희생당하는 ‘오피스 애환’만을 그리지 않는다. 때로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직장 빌런을 향해 사이다 대사를 날리기도 하고, 한직으로 물러나서도 생존을 위한 반격을 준비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바는 무엇일까? 단순히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게 전보다 나아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세태의 솔직한 반영은 우리 사회에서 점차 중요해지고 있는 청렴과 공정에 관한 감수성이 보다 섬세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동, 일터, 밥벌이란 개념이 지독하게도 복잡한 덕분에, 오피스 드라마의 사람들은 중심으로 모이지 못한 채 자꾸만 주변부로, 더 주변부로 예측할 수 없는 원자 운동을 계속한다. 회사원이라는 같은 이름, 사무실이라는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성장, 공감, 연대가 아닌 생존의 항로를 먼저 개척해야 하는 우리. 하지만 일단은, 그래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최신의 두 드라마가 담지하고 있는 태도가 바로, 회사의 규모, 고용의 형태, 직급과 능력의 구분 없이, 그저 삶을 향한 단 하나의 의지로 ‘생존’한 당신을 향한 응원과 찬사라는 점을 생각하자. 죄책과 불안은 놓고 오시라. 생존 후엔 성장의 시간이 분명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