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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이 공간을 바꾼다

글 서윤영(건축 칼럼니스트)

대규모 화재나 지진, 수해 같은 재난 이후 공간은 변화한다. 즉각적인 대응 차원에서 법이 생기기도 하고,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점진적으로 공간의 형태나 구조가 바뀌기도 한다. 팬데믹은 우리에게 공간의 가치를 다시 일깨웠다. 코로나19 이후의 건축은 어떻게 변화할까?

말라리아를 막는
‘언덕 위의 하얀 집’

150~200년 전,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등지에 낯설고도 예쁜 집들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양지바른 언덕 위에 지어진 하얀 집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금발에 푸른 눈을 한 백인들이었다. 원거주민들은 그 집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불렀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18~19세기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지어진 제국주의 양식의 주택, 즉 콜로니얼 주택이었다. 이러한 주택의 형태는 유럽 본국의 양식을 따르면서 식민지의 토양과 기후에 맞추어 지었는데, 그 과정에서 유럽식도, 아시아식도 아닌 독특한 형태가 탄생했다. 식민지 관리를 위해 아시아 국가에 도착한 유럽인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그 지역의 전염병이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아시아의 풍토병은 유럽인들에게 속수무책이었고, 접촉이나 호흡기를 통해 감염된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열대나 아열대의 무덥고 습한 공기가 원인이라고 생각하여 그 병의 이름을 ‘나쁜 공기(mal + aria)’ 라는 뜻의 ‘말라리아’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를 피하기 위해 원거주민들이 몰려 사는 저지대를 피해 바람이 잘 통하는 양지바른 언덕 위에 집을 지었다. 또한 해충이나 모기가 알을 낳을 수 있는 웅덩이를 없애기 위해 마당에는 잔디를 심었다.
열대지역의 우기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빗물이 잘 빠지도록 지붕의 경사도를 급하게 만들었고, 건기엔 햇살이 몹시 뜨거웠으므로 외벽은 되도록 흰색 페인트를 칠했다.
또한 남자는 일 때문에 왔다지만, 함께 따라온 아내와 아이들은 외출조차 자유롭지 못할 때가 많았다. 행여 원거주민이 반감을 품고 해코지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온종일 집안에 있어도 답답하지 않도록 꽃밭, 테라스와 벤치, 나무 그늘 아래엔 그네도 매었다. 이러한 콜로니얼 스타일의 주택은 19세기 말 일본에도 상륙해 ‘문화주택’으로 변형되었다. 유럽식 외부 형태에 내부에는 서양식 거실과 일본식 다다미방이 공존하는 형태였다. 이는 20세기 초 조선에도 상륙하여 온돌방을 넣은 조선식 문화주택이 되었다. 말라리아라는 감염병이 새로운 주택의 형태를 결정한 셈이다.

질병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조건

이처럼 건축에서는 질병 때문에 법령이 만들어지고 그 법령이 건축의 형태를 결정짓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일례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이 거주하는 방은 지하에 둘 수 없으며, 모든 주택은 화장실과 상하수도 시설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 기원도 19세기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이 일어나 맨체스터, 리버풀 등의 신흥공업도시가 등장했다. 공업지대에는 일자리를 찾아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들이 살 집은 턱없이 부족했다. 우선 급한 대로 지하의 석탄 창고를 개조한 방에서 일가족이 살기도 했는데, 화장실이나 상하수도 시설이 없어 노상방뇨를 했고 식수는 마을의 공동 우물을 사용했다. 이렇게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콜레라나 장티푸스가 창궐했고,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축축한 지하 셋방에서 결핵도 빠르게 번져 나갔다. 이에 영국 정부는 건축법을 제정하여 지하에 사람이 거주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화장실과 상하수도 시설을 확충하는 등 주택을 정비해 나갔다.
이런 건축법을 우리나라도 받아들여 모든 주택에서 화장실과 상하수도는 물론 충분한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일조권도 보장하고 있다. 또한 창문 없는 지하에 사람이 사는 방을 두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지하와 지상에 반쯤 걸쳐진 방이 생길 경우, 전체 천장 높이에서 1/2 이상이 지상에 노출되어 있으면 그 방은 지상에 있다고 간주한다. 반지하방이 바로 이것으로, 불법은 아니다. 이처럼 재난이나 질병 등 위험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생겨난 제도와 법령으로 주택의 형태가 결정되기도 한다.

구체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재난의 경험

화재나 지진 같은 대형 사고 또한 우리의 공간을 바꾼다. 회전문 옆에 ‘미는 문’ 출입구가 생겨난 것도 1942년 미국의 ‘코코넛 그로브 화재사건’이 계기가 됐다. 지하에 위치한 나이트클럽에서 발생한 화재로 492명이 사망한 사건인데, 이렇게나 많은 사상자가 나온 이유는 출입문 두 곳이 모두 회전문이었기 때문이다. 화재 현장의 회전문 인근에서 특히 피해가 컸다. 이 사건 이후 많은 나라에서 회전문 옆에는 미는 문을 함께 설치하도록 했다. 2003년의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도 공간을 바꿨다. 전동차 내부의 내장재와 객실 의자 등은 모두 불연·난연 소재로 변화했다.
21세기에 반갑지 않은 감염병이 유행하고 있다. 홈스쿨링,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여행은 물론 외출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집에 머무는 시간은 어느 때보다 길다. 가족들이 온종일 집에 있다 보니 뜻하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이 모두는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동인일 수 있다. 팬데믹 역시 우리들로 하여금 보다 안락하고 편안한 공간을 만들어나가게 하는 하나의 추동 원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