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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의 바다 풍경이 주는 위로
The Comfort of The Scenery

글 김소울(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 <치유미술관>)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바다 풍경이, 음악이 따로 필요 없는 파도 소리가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고흐 특유의 붓 터치에 담긴 생동감이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작품 <생트 마리 드 라메르의 바다 풍경>를 통해 남프랑스로 여행을 떠나보자.

생트 마리 드 라메르의 바다 풍경 | 1888 | 빈센트 반 고흐 | 51x64cm

여름을 담은 일렁이는 바다

푸른 여름 하늘에는 구름이 흩어져 있고, 프랑스 남부의 생트 마리 해변에는 거친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파리에서 아를로 터전을 옮긴 후, 화가 공동체를 꿈꾸던 고흐(Vincent van Gogh)가 휴식을 위해 방문한 해변이다. 그의 앞날에는 뜨거운 태양과 거침없는 파도처럼 좋은 일들이 가득할 것만 같은 화창한 날씨였다.
고흐 특유의 거친 붓 터치가 녹색과 파랑, 노랑과 흰색을 품고 캔버스 위에서 일렁이고 있다. 하늘을 담은 파랑과 구름을 담은 하얀 빛깔의 대비, 그리고 태양을 담은 노랑과 여름을 담은 녹색이 바다에 어우러져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가 넘실거린다. 푸른 배경에 강렬한 붉은색 서명이 인상적이다.
고흐는 해변에 서서 오랜 시간 바다를 바라보았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바다의 모습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자신의 삶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어 있었다. 거센 바람으로 그림 그리기가 쉽지 않았지만, 여전히 그림 표면에 묻어 있는 모래알들은 고흐가 바로 이 자리에서 그림을 그렸음을 알려준다. 바다는 바라봐주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리고 바다의 목소리는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닮았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나는 지금 지중해 연안의 생트 마리에서 편지를 쓰고 있어. 지중해는 고등어 색깔을 닮았어. 쉴 새 없이 색이 변하거든.
빛의 변화로 금세 분홍이 되었다가 회색이 되곤 해. 밤에는 아무도 없는 해안을 따라 바닷가를 산책했어.
그리 들뜬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슬프다는 건 아니야.
그저 아름다웠어.”

변화하고 흘러가는 순간들

그림 위쪽에 위치한 배들은 파도를 타고 자유롭게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고흐는 해변에 서서 배들을 바라보고 있다. 차갑고 짠 내음이 날 것 같은 거센 파도는 마치 배와 화가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저 배들이 언젠가는 다시 육지로 돌아올 것이고, 지금 눈앞에서 부서지고 있는 파도는 단 한순간도 그대로 정지하는 법이 없다. 삶은 순환하며 변화할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변치 않는 것은 없다.
학창 시절부터 겪어온 정신질환은 고흐에게 때때로 좌절을 주었지만, 지중해의 고등어와 같은 푸르른 바다색은 고흐에게 꽃을, 기쁨을, 희망을 연상시켰다. 휴식을 위해 방문한 이곳은 많은 방문객이 없는 지역이었고, 고흐는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팬데믹으로 인해 사회의 많은 부분이 멈춘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 시간은 흘러갈 것이고, 파도처럼 부서져 다시 바다로 돌아갈 것이다. 고요한 생트 마리 해변에서 고흐가 자신을 바라볼 시간을 갖고 휴식한 것처럼, 지금의 이 시기는 외부로 늘 향하던 눈이 내부로 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대중과 살롱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던 고흐가 바다로부터 받았던 위로의 에너지는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등 수없이 많은 걸작들을 탄생시켰다. 많은 이들이 고단해지는 요즈음이다. 마음속에 답답함이 차오를 때 고흐가 바라보면 시원한 여름바다의 에너지를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