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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미래가 달렸다?
애플의 ‘앱 추적 투명성’ 정책

글 권택경(IT동아 기자)

“이 앱이 다른 회사의 앱 및 웹 사이트에 걸친 사용자의 활동을 추적하도록 허용하시겠습니까?” 애플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업데이트했더니 이런 메시지가 담긴 경고창이 유독 자주 보인다면? 사용자에 대한 강력한 개인정보 보호 정책을 내세운 애플의 결정 배경엔 거대 테크 기업들의 광고 시장 주도권 경쟁이 숨어있다.

요즘 그 광고 봤어?

한 남성이 카페에서 주문한 커피를 받은 후 밖으로 나간다. 그 순간, 카페 점원이 남성을 뒤쫓아 택시를 따라 탄다. 이름과 생일을 묻는 택시기사 질문에 카페 점원이 대신 답한다. 남성이 은행으로 향하자 이번엔 택시기사까지 따라붙는다. 은행에선 은행원이, 마트에선 마트 점원이 따라붙는다. 하나둘 불어난 추적자(Tracker)들은 어느새 집안까지 들이닥친다. 이 기묘한 동행은 남성이 아이폰을 집어 든 후에야 끝난다. ‘앱이 사용자의 활동을 추적하도록 허용하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추적 금지’라는 답을 선택하자 모든 추적자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애플이 지난 5월 공개한 ‘개인정보 보호, 당연히 아이폰’이란 제목의 이 광고는 우리가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벌어지는 일을 현실에 대입했을 때 어떤 모습일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터넷을 하다 보면 마치 광고가 날 따라다니는 듯한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 새 밥솥을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에 밥솥 정보를 몇 번 검색했더니 웹 서핑 내내 밥솥 광고가 따라붙는다. 비슷한 경험을 다들 한 번쯤 해봤을 거다. 이른바 ‘맞춤 광고’다. 이런 맞춤 광고를 가능하게 해주는 게 바로 애플 광고에 나온 것과 같은 추적기(Tracker)다.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 앱 1개에는 평균 6개 정도 추적기가 달려있다. 추적기들은 내 나이, 위치, 건강정보, 재무 상태, 구매 내역 등 개인 정보를 수집한다. 따로 놓고 보면 별 의미가 없지만, 모아놓고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다. 프로파일러들이 사소한 단서 몇 가지로 범인 유형을 특정하는 것처럼, 프로파일링을 하는 셈이다.

딱 한 번 검색했던 그 신발, 피드에 자꾸 나타났던 이유

광고 시장에서는 이 개인 정보가 귀중한 자산이다. 정보가 풍부할수록 광고가 먹힐만한 사람들만 노려서 광고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니, 맞춤 광고를 위한 개인 정보를 사고파는 거대한 시장과 전문 브로커까지 있다. 무려 연간 2,270억 달러(약 253조 원) 규모다. 개인 정보가 돈이 되니 온갖 앱이 이용자 개인 정보를 수집한다. 타이머, 메모 앱처럼 내 개인 정보를 알 필요 없는 앱도 내 개인 정보를 팔아서 돈을 번다. 이런 상황에 강력히 제동을 건 게 바로 애플이다. 애플은 앱 추적 투명성 정책을 내세워 앱이나 웹 사이트들이 과도하게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걸 막고, 그 수집 내용과 목적을 명확히 밝히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을 운영체제에도 반영해 아이폰 iOS 14.5부터는 앱을 실행할 때마다 광고에서 나온 것과 같은 앱 추적 허용 메시지를 반드시 띄우도록 하고 있다.
사용자가 거부 의사를 먼저 명확히 밝히지 않는 이상 정보 수집을 허용하는 옵트아웃(Opt-out) 방식이었던 걸, 사용자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허용하는 옵트인(Opt-in)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당연히 옵트인 방식은 옵트아웃 방식보다 허용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플러리 애널리틱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 250만 명 중 앱 추적에 동의했다고 밝힌 사용자가 4%에 불과했다고 하니 사실상 추적기가 무력화된 셈이다.

애플 vs. 페이스북 공짜 점심은 없다

애플은 앱 추적 투명성 정책을 내세워 앱이나 웹 사이트들이 과도하게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걸 막고, 그 수집 내용과 목적을 명확히 밝히도록 하고 있다.

애플이 내민 강경책에 가장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기업이 바로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은 올해 1분기 매출 262억 달러(약 29조 원) 중 약 97%가 광고 매출이었다. 사실상 광고로 먹고사는 기업이다. 페이스북은 자칫 잘못하면 빠른 시일 안에 비즈니스 모델을 재고해야 할 수도 있다. 실제로 페이스북은 이용자들이 앱 추적을 허용해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계속 무료로 제공할 수 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개인 정보로 돈을 버는 페이스북이 괘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애플도 선의만으로 개인 정보 수호자를 자처하는 게 아니다. 앱 추적을 둘러싼 두 공룡의 싸움도 알고 보면 결국 밥그릇 쟁탈전이다.
지금까지 인터넷은 페이스북처럼 콘텐츠나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하는 대신 광고를 보는 형태가 대세였다. 페이스북은 ‘무료 인터넷’이라 표현하지만 비용을 광고주가 떠받치니 사실 ‘광고 중심 인터넷’이다. 그러나 애플이 그리고자 하는 생태계는 ‘유료 인터넷’,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구독 중심 인터넷’이다. 콘텐츠나 서비스 비용을 구독료나 이용료 형태로 이용자가 직접 지불하는 방식이다. 앱스토어라는 거대한 플랫폼을 운영하며 수수료 수익을 챙기는 애플로서는 구독 중심 인터넷이 더 이상적일 수밖에 없다.
‘앱 추적을 허용하겠냐’는 질문은 그래서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의미를 담고 있다. 페이스북이 그리는 인터넷 생태계에 동의하는지, 애플이 그리는 인터넷 생태계에 동의하는지를 묻는 말이기 때문이다. 동의 버튼을 누르든, 거부 버튼을 누르든 개인의 선택이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게 있다. 공짜 점심은 없다고, ‘광고 없는 무료 인터넷’도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