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의 또 다른 장벽
플뤼그스캄Flygskam
글 이민선(그린포스트코리아 기자)
코로나19가 종식되면 해외여행이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건 아니다. 스웨덴발 신조어 ‘플뤼그스캄’ 때문이다. 그건 또 무슨 감염병이냐고? 영어로 번역하면 추측이 가능하다. ‘Flight Shame’, 비행기를 타는 부끄러움이다. 그렇다면 부끄러움, 수치라 표현할 만큼 비행기 여행은 실제로 얼마나 큰 공해를 만들까? 또,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감염병과 기후 위기에 대한 의식은 앞으로 여행과 여가문화를 어떻게 바꿀까?
“코로나만 끝나면
그동안 못 간 해외여행부터 가야지”
전 세계를 덮친 팬데믹으로 1년 넘게 하늘길이 막혔다. 하지만 백신 접종률이 점차 늘어나고, 항공편 운항이 재개되면서 벌써부터 해외여행 수요는 급증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된 이후엔, 비행기를 타고 자유롭게 전 세계를 누빌 수 있을까?
‘플뤼그스캄(flygskam)’이 어쩌면 그리운 해외여행의 또 다른 장벽이 될지도 모른다. 비행기를 탈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로 환경 오염에 가담하는 것이 부끄럽다는 의미로 2018년 스웨덴에서 온 신조어다.
비행기 여행,
왜 부끄러운 일이 됐을까?
1km 운항당 승객 1명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유럽환경청)
10대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는 2019년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UN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다. 스톡홀름에 사는 툰베리가 60피트짜리 무동력 보트로 뉴욕에 닿기까지는 2주나 걸렸다. 툰베리가 화장실도 없는 보트를 탄 이유는 비행기가 내뿜는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 때문이다.
비행기는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할까? 유럽 환경청(EEA)은 승객 한 명의 기차 여행 1km당 14g의 이산화탄소가 나온다고 추정했다. 자동차는 158g이다. 비행기는 무려 285g이다. 자동차를 탔을 때보다 약 2배, 기차의 약 20배에 달한다.
비행기로 인한 이산화탄소는 전 세계 배출량의 2.5%를 차지한다. 1967년과 2007년 사이, 항공 산업은 기술 발전을 통해 연료 효율성을 70% 향상시켰다. 그러나 항공 여행이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이 효과는 상쇄됐다.
2005년과 2020년 사이 비행기로 인한 탄소 배출량은 70% 증가했다. 기술이 발전하지 않는 한, 2050년까지 300%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증가세는 비행기 여행을 즐기는 12%의 인구가 만드는 수치다.
전 세계적으로 국제선 이용객은 세계 인구의 2~4%에 불과하지만, 한국은 코로나19 발발 직전까지 한해 국제선 이용객 수가 3천만 명에 달했다. 항공 산업에 종사하는 기업들은 더 친환경적인 엔진을 개발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50년까지 과거 2002년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대체 연료를 사용하고, 직항로 운항을 늘리는 방법도 동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빠르고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코로나 시대,
우리가 만들어온 새로운 여행 방법
사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플뤼그스캄’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전 세계가 탄소 중립을 외치고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비행기 여행’이 마냥 낭만적이고 긍정적인 무엇만은 아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비행기 없이, 어떻게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다행인 점은 코로나19를 접하며 여행 방법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닌, 평소 해보지 못했던 체험이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장소를 경험하는 것도 여행의 한 형태로 자리 잡았다.
멀리 가는 대신 일상 속 도시 여행자가 되기도 하고, 가까운 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주변 소도시로의 로컬 여행을 즐기기도 한다.
빔프로젝터를 통해 방안 벽면에 야외 풍경이 담긴 사진이나 영상을 투사 시켜 만드는 가짜 창문(fake window)으로 방구석 여행을 하거나, 인터넷 방송을 통한 라이브로 해외 여행지를 다녀오는 랜선 여행 등의 자구책도 만들어냈다.
팬데믹의 끝이 보이는 듯도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집에 머물러야 한다. 오늘은 3차원 가상 세계인 메타버스에서 나를 대신할 아바타를 꾸미고, 또 다른 공간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중요한 건, 하늘을 날아 국경을 넘지 않아도 내가 있는 곳이 바로 여행지가 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일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