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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뜨거운, 치킨의 계절

글 정은정(<대한민국 치킨전> 저자, 사회학자)

맥주 한 잔과 어울리는 치킨은 ‘가성비’를 넘어 ‘가심비’를 충족시키는 휴식의 친구다. 언제 어디서나 주문 가능하고 취향이나 입맛의 호불호도 적다. 해 질 녘 야구장, 휴가지의 해변, 열대야의 공원…, 잠시 긴장을 풀고 쉬어가는 순간마다 조연처럼 함께 있어 준 치킨이 함께했던 우리 사회의 풍경을 돌아보자.

어머니는 짜장면도 치킨도 싫다고 하셨어

한국 사람들이 할 말이 많은 음식 중 하나가 짜장면과 치킨일 것이다. 많이 먹어본 음식이기도 하고, 음식에 얽힌 각자의 사연들이 많아서다. 그룹 god의 데뷔곡 ‘어머님께’라는 노래는 몰라도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는 다 안다. 가난한 형편에 자식에게만 짜장면을 사주고 자신은 짜장면이 싫다며 자기 몫의 음식은 시키지 않았다는 이 노래는 IMF 직후 엇비슷한 사연을 가진 이들의 마음을 울렸고 빅히트 송이 되었다.
그 시절 어머니들이 짜장면만 싫다 했을까? 아마 치킨도 싫다 했을 것이다. 40대 이상의 중년세대는 ‘치킨’보다는 ‘통닭’이라는 말도 익숙할 텐데, 통닭은 소풍날이나 운동회, 생일 같은 이름 붙은 날에나 먹을 수 있었던 특별한 음식이었다. 형제자매도 많았던 시절, ‘1인 1닭’은 언감생심. 한 마리 시켜 온 식구가 나눠 먹으려니 엄마는 궁리 끝에 통닭집 사장님께 “닭을 잘게 조각조각 내주세요.”라고 부탁을 했다. 닭다리는 아들에게 준다 쳐도 딸들에게도 두어 조각이라도 쥐어 주려면 닭을 잘게 자를 수밖에 없었다. 닭다리는 왜 매번 오빠의 몫이었는지 억울하기 짝이 없었지만 돌이켜 보니 엄마 자신은 닭 모가지 한 조각이라도 잡수셨을까. 철든 언니가 엄마도 드시라 했을 텐데 그때마다 “나는 튀김은 느끼해서 안 먹어. 너희들 먹어.”라고 하셨을 테지. ‘어머니는 치킨이 싫다고 하셨어.’

미국에서 온 한국인의 소울푸드

기억과 사연이 많은 음식을 ‘소울푸드’라 부른다. 보통명사가 되어버린 ‘소울푸드’의 기원은 아메리카대륙으로 끌려간 흑인 노예들의 삶에 기인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그루브가 살아있다’, ‘소울이 느껴진다’고고 심사평이 나오는 장르가 재즈, R&B, 블루스, 힙합, 가스펠 등의 장르로 세칭 ‘흑인음악’ 장르를 뜻하기도 한다. ‘소울(soul)’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슬픔과 분노, 추억이 깃든 그 무엇을 통칭해왔다. 그중 대표적인 ‘소울푸드’가 ‘프라이드치킨’이다. 속설에 따르면 백인 농장주가 닭 가슴살 같은 부드러운 부위를 먹고 닭의 나머지 부위를 노예들에게 먹으라 던져주었고, 이를 고향의 방식대로 강한 향신료(스파이스)에 양념을 해서 기름에 바짝 튀겨(deep fried) 먹은 데에서 유래했다고 하지만 이는 좀 과잉된 면이 있다.
흑인 노예들이 프라이드치킨만 먹었던 것도 아니다. 돼지 내장이나 발, 꼬리, 껍데기 등을 요리해 먹기도 하고 옥수숫가루로 쪄서 만든 ‘콘브레드’, 통돼지 바비큐도 이들에게서 전래된 음식이다. 유독 프라이드치킨이 흑인들의 소울푸드로 알려진 이유는 켄터키나 루이지애나와 같은 남부지역에 양계산업이 발달한 데다, 프라이드치킨이 가장 먼저 상업화되었기 때문이다. 치킨 가게 주인은 백인이어도 간판엔 흑인 노예들을 그려 넣어 스토리와 이미지도 함께 팔았기 때문이다. 하여 소울푸드는 노예 음식(slavery food)의 강력한 이미지를 재현한다는 점에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음식 담론이다.

한국 사회를 요약해 보여주는 ‘치킨’ 언저리의 이야기

치킨이 저 멀리 아메리카 대륙에서 기원했는지 몰라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프라이드치킨을 먹고 맛있게 튀기는 나라는 한국이다. 게다가 ‘치맥’이라는 고유의 음식문화를 만들어왔다. 혹자는 KFC가 ‘Korean Fried Chicken’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농담도 던진다. 매콤달콤한 양념치킨의 원조이자 새콤달콤 아삭한 치킨 무로 느끼함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여기에 월드컵과 같은 국가대표 스포츠 경기에는 치맥을 먹는 문화도 한몫한다. 맨손으로 들고 먹으면서 손에 묻은 양념까지 쪽쪽 빨아 먹어야만 제맛인 치킨. 하여 속내를 털어놓을 정도로 편한 관계가 아니고서는 선택하기 어려운 메뉴다. 그래서 ‘치맥이나 할까?’라는 한마디에는 친밀한 사이라는 전제가 깔려야 한다. 이렇게 한국의 고유한 치킨 문화 덕분인지 외국인이 꼽는 대표적인 한식 중 하나가 ‘치킨’이다. 한식 세계화의 수훈갑이 바로 한국의 치킨이다.
삼복더위가 시작되는 지금이 치킨 성수기다. 복달임 음식으로 삼계탕이 있지만 치킨도 많이 먹는다. 날이 더우니 밥하기도 싫고 배달음식으로는 치킨만 한 것이 없다. 아무리 치킨 값이 올랐다 한들 3만 원 내외면 온 가족이 ‘프라이드’도 먹고 ‘양념’도 먹고 여기에 맥주와 콜라까지 곁들일 수 있으니 이보다 맞춤한 외식메뉴가 어디 있을까.
그런데 먹는 사람 입은 즐거우나 치킨의 속사정이 편치만은 않다. 코로나19와 같은 세계적 위기가 경제에 타격을 주면 일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이 찾는 열쇠가 치킨이기도 하다. 치킨점 창업에 뛰어들기도, 배달에도 나선다. IMF 직후 치킨집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것처럼 말이다. 근래 코로나19로 프랜차이즈 치킨점 창업설명회에 20대 청년들이 몰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속내가 편치만은 않았을 터. 2021년 여름, 치킨의 계절이 이토록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