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아방가르드가
피워 올린
불꽃
《러시아 사계》展 1,2,기획전시관 | 7.30~8.17
글 남재희(한전아트센터 갤러리 큐레이터)
한·러 상호 교류의 해로 지정된 2021년, 러시아의 사계를 주제로 러시아 현대미술과 문화예술까지 선보이는 테마 전시가 한전아트센터 갤러리에서 열린다. 이에 20세기 초 러시아 아방가르드가 현대 러시아 문화예술계에 끼친 영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아방가르드의 불씨는 살아 있다.
칸딘스키부터 샤갈까지, ‘러시아 아방가르드’
테마파크를 연상케 하는 과장된 선과 색채의 크렘린궁과 그 풍경 속을 오고 가는 표정 없는 사람들. 러시아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이 시각적 대비에서 오는 기묘한 간극 탓에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인상을 느낄 수 있다.
회색빛 가면 뒤에 숨겨진 러시아의 예술적 열망은 20세기 초 ‘러시아 아방가르드’라는 실험적이고 추상적인 예술운동을 통해 폭발하게 된다. 추상회화의 창시자 칸딘스키가 그중 하나다. 음악과 그림을 떼어낼 수 없는 관계로 생각한 칸딘스키는 점, 선, 색채와 같은 아주 단순한 구성만으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추상화의 길로 들어섰다. 샤갈 또한 러시아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로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의 작품들은 때로는 난잡한 구도와 어울리지 않는 색의 조화를 보이기도 하지만 늘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같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시기를 통해 러시아 예술계는 절대주의, 구성주의 등 다양한 기법과 모험적인 시도를 이어갔다. 정치적 억압으로 약화되었지만,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서양의 회화와 건축, 조각 등에 큰 영향을 남겼다. 이러한 움직임이 서구 예술에 끼친 영향을 생각했을 때 러시아 현대 작가들은 이 시기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러시아 현대 미술 톺아보기
미하일 쿠가츠, 봄 길, 2009년, 80×60, 카드보드에 유채
서양 미술에 한 획을 그은 칸딘스키, 샤갈, 말레비치 등 위대한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명맥을 잇는 러시아 현대 작가들의 작품들을 모스크바가 아닌 서울에서 직접 만나 볼 수 있는 기회가 한전아트센터 갤러리에 마련되었다. 해외작가의 전시가 줄줄이 취소되고 있는 팬데믹 상황에서 오랜 준비 끝에 개최되는 전시로, 러시아 현대 작가들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사계절 풍경들을 감상할 수 있다. 러시아 전문 갤러리 ‘까르찌나’의 김희은 대표가 도슨트 해설을 진행한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대표작가라 할 수 있는 미하일 쿠가츠(Mikhail Yuryevich Kugach)는 러시아의 리얼리즘 풍경 화가다. 러시아 화단에서 ‘쿠가츠적 표현’이라는 대명사가 널리 쓰일 정도이니, 풍경화 장르에서 그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쿠가츠적 표현’이라는 말은 작가의 감정을 풍경 속에 담아 그려낸 서정적 무드 풍경화를 칭하는 말이다. 따뜻한 봄기운에 어느새 눈은 녹아 물웅덩이를 만들고 질퍽한 봄의 진흙 길을 철벅철벅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 숲길 위로 펼쳐진 가을 숲속의 모습. 부드러운 색채와 묘사로 그려낸 쿠가츠의 풍경화들은 리얼리티가 살아있으면서도 작가만의 감정의 필터가 덧씌워졌다. 관람객들은 시선을 작품 어느 한 곳에 집중시키기보다 사각의 틀 안에서 작품 전체가 뿜어내고 있는 분위기를 음미하면 된다.
쿠가츠를 포함하여 미하일 이조토프, 블라디미르 텔레긴 등 현대 작가들이 묘사하는 다채로운 계절의 모습들은 서유럽 회화의 화려하고 밝은 빛이 아닌 어딘지 모르게 처연한 빛을 내는 러시아의 목가적 풍경들을 담고 있다. 작품들은 캔버스를 통해 관람객들을 농번기가 끝난 한적하고 쓸쓸한 시골 마을로 데려가기도 하고, 소복하게 눈이 쌓이고 있는 고요한 호숫가로 초대하기도 한다. 이들 작품을 감상할 때는 묘사나 터치에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머릿속에 그려진 작품 내의 풍경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 작품 각각이 품고 있는 빛과 색깔 속에서 계절의 향기를 만끽해 보길 권한다.
드미트리 홀린, 8월 저녁, 2017년, 50x65, 카드보드에 파스텔, 구아슈
문학부터 음악까지, 입체적 정취
이번 전시에서는 주제를 보다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문화예술 프로그램도 준비됐다. 러시아 문학 거장인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등 ‘문학으로 느끼는 러시아 사계’, 클래식 및 포크 ‘음악으로 듣는 러시아의 사계’ 등을 주제로 한 강연과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었다.
시베리아의 차갑고 매서운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러시아의 겨울 뿐만 아니라 눈 녹는 봄과 초록의 싱그러운 여름 그리고 황금빛 가을의 사계절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이번 전시를 통해 러시아 아방가르드가 남긴 현대예술의 유산들과 이국적 정취를 느껴보자.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7월 전시 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