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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트윈Digital Twin
매트릭스의 세계 연다

글 주영재(경향신문 주간경향부 기자)

복잡다단한 실제의 세계를 똑같이 모사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밀랍으로 사람의 겉모습을 진짜처럼 보이게 할 수 있지만, 그 안의 살과 핏줄, 그리고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생각을 모방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조금씩 가능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기술이 있다. 바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이다.

S-Map(smap.seoul.go.kr)으로 살펴본 서울 광화문 일대의 ‘여름철 바람길’ 정보.
고도별, 계절별 일조권이나 경사면 정보 등 지리 및 기후 관련 정보를 조회할 수 있다.
통행불편지역, 사고공사, 교통 CCTV 위치, 관광 명소 360도 영상 등 생활 및 관광 정보까지 살펴볼 수 있다.

‘현실 세계’와 호환되는 또 하나의 공간

디지털 트윈은 가상공간에 실물과 똑같은 물체(쌍둥이)를 만들어 다양한 모의시험(시뮬레이션)을 통해 검증해 보는 기술을 말한다. 현실 세계에서 실체를 갖는 물리적 시스템의 기능과 동작을 소프트웨어로 구현해 현실과 쌍둥이처럼 작동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디지털 세계 속 건물의 창문을 열면 현실 세계의 건물에서도 창문이 열리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나의 행동이 디지털 세상에 영향을 주고, 디지털 세상 속 ‘누군가’의 행동이 내가 사는 현실세상을 바꾼다. 그 ‘누군가’가 인공지능이 된다면 영화 <매트릭스>의 세상과 큰 차이가 없다.

디지털 트윈, 도시 문제 해결사로 나선다

다행히 디지털 트윈 기술은 영화처럼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를 예정하진 않는다. 오히려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거울상 쌍둥이 모델로 만들어 직관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효과적인 기술이다. 디지털 트윈을 구축하면 현실에서 불가능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무한히 시뮬레이션하고, 그 결과를 실제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디지털 트윈은 정부가 제시한 한국판 뉴딜 10대 과제의 하나에 포함됐다. 경영이나 정책 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빠르고, 낮은 비용으로 확보할 수 있어 제조업과 교통, 에너지 관리, 도시계획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가장 먼저 도입된 제조업 분야에서는 기계가 동작하는 모습을 3차원(3D)으로 재현해 정상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용도로 쓸 수 있다. 일례로 GE의 항공디지털팀은 항공기를 디지털 트윈으로 구현해 성능을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부품 소모 상태를 모니터링한다. 그 결과 연비를 높이고, 유지 관리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두산중공업도 지난해 벤틀리시스템즈와 함께 풍력 부분 디지털 트윈 솔루션을 개발했다. 풍력 발전은 거대 시설이지만 디지털 트윈을 이용하면 거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무한정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최적의 설비·운영 결정을 할 수 있다.
디지털 트윈은 국가와 도시행정 고도화를 위한 필수요소로도 주목 받으면서 여러 나라, 도시에서 도입되고 있다. 대표 사례로 서울시가 지난 4월 1일 공개한 ‘S-Map’을 들 수 있다. 도시 전역을 대상으로 도시 문제 분석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디지털 트윈을 구축한 것은 서울시가 국내 최초이다. 서울시는 올해 도시계획·교통영향평가위원회 등 7개의 위원회 의사결정에 S-Map을 활용해 심의의 객관성·과학성을 높일 계획이다. 시 공공건축물 설계 공모 과정에서도 S-Map을 활용한다. 지형에 따른 바람의 경로, 세기와 방향, 지형지물의 영향 등을 공간에서 확인해 도시계획의 건물배치 등에 반영한다. 바람길 예측은 산불확산 방지, 미세먼지 및 열섬현상 저감에도 활용한다. 서울시는 2022년 이후 자율주행, 지진 예측 등 도시제어가 가능한 단계까지 발전시킨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실제와 똑같은 모델링 구현이 가장 어려워

두산중공업이 탐라해상풍력발전에서 디지털 트윈을 활용해 시설물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마이크로소프트 제공)

디지털 트윈에 필요한 선행기술이 있다. 눈에 보이는 물리적 현실을 똑같이 구현하기 위한 2D, 3D 형상 가시화 기술이 필수적이다. 그 다음, 현실과 가상이 빈틈없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거울상과 현실 사이에 정보를 주고받는 통신, 인터페이스, 데이터 교환 등 상호 소통 수단이 핵심적이다. 여기에 실물 대상의 동작과 행태, 습성 등을 가상세계에 재현하는 모델링 기술이 필요하다.
난이도는 모델링이 가장 높다. 실물 대상에 관한 가시·비가시적 특징을 모두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정을 하나 해볼까? 길거리에 사람의 뺨을 갑자기 때렸을 때, 그 사람이 당황해 눈만 꿈적일지, 화를 내며 즉각적으로 반격할지, 수치스러워 울지는 그 사람의 성격과 행동 양식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런 성격과 행위 양식을 모델로 만들어야 가상세계에서 정확한 시뮬레이션을 기대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데이터 분석과 예측,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 여러 수단이 활용될 수 있다. 디지털 트윈은 사물인터넷 등으로 대량의 정보를 수집하기 때문에 데이터 처리의 유연성을 높이고 인공지능 도구로 분석하기 유리한 클라우드 컴퓨팅이 많이 활용된다.
디지털 트윈과 비슷해 보이는 메타버스(Metaverse)와 구별할 필요도 있다. 메타버스는 초월(meta)과 우주(universe)의 합성어로, 증강·혼합현실 기술을 사용해 3D 가상세계를 구현한다는 점에서 디지털 트윈과 유사하다. 하지만 여기엔 현실 세계와의 상호작용성이 없다. 메타버스는 나를 닮은 캐릭터(아바타)가 여러 가상세계를 탐험할 수 있지만, 실제 세계와 거울상처럼 상호작용하진 않는다. 실제 세계와 1:1의 대칭 관계에 있는 디지털 트윈과 달리 가상 세계를 욕구에 따라 무한정 창조할 수 있기 때문에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선 메타버스의 활용도가 더 높다. 둘 다 현실 세계의 제약과 한계를 벗어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신처럼 세상을 주관하려는 호모 데우스(Homo Deus)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