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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의 기술

글 문요한(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멈추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멈추라고 하는 말은 공허하다. 직장인들은 멈추기 어렵다. 앞에 산적한 프로젝트,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동료와 경쟁사들, 그렇다. 직장은 전쟁터다. 전쟁터에서 멈추고 쉴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언제고 에너지는 고갈되고 만다. 멈춤이 필요한 이 시기, 재충전의 기술이 필요하다.

요즘 사람들의 ‘번아웃(burnout)’ 양상

시대에 따라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의 증상도 다르다. 최근에는 번아웃을 호소하는 이들이 참 많아졌다. 쉬어도 충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중에는 과로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 수면시간도 충분하고 야근도 없다. 그럼 왜 번아웃에 빠질까? 휴식의 양이 아니라 질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일과 휴식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일하는 것도 아니고 쉬는 것도 아닌 그 혼탁한 시간 속에서 하루를 보낸다.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휴식의 본질은 멈춤이 아니라 회복에 있다. 활기를 되찾아야 한다. 심리학자 스테판 카플란(Stephen Kaplan)에 의하면 휴식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는 왜 정신적 피로에 빠지고 어떻게 회복에 이를까? 카플란의 주의회복이론에 의하면 간단하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나 과제는 주의가 다른 곳으로 새지 않도록 ‘통제된 주의(directed attention)’를 요한다. 그렇기에 대단히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곤해지고 주의력이 흐트러진다. 이때 쉬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쉬느냐에 따라 회복이 될 수도 있고 더 소모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일단 휴식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떠올린다. 만약 몸이 피로한 것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정신적 피로는 다르다. 왜 그럴까? 우리 생각과 달리 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뇌는 자동차와 달리 시동을 끌 수가 없다. 뇌는 아무것을 하지 않아도 공상, 기억, 걱정, 잡념에 빠져 공회전처럼 계속 돌아가기에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까? 회복을 위해서는 '애쓰지 않는 주의(effortless attention)'가 필요하다. 이는 억지로 무언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유유자적한 주의상태를 말한다.

‘휴식’, 글자 그대로만 실천할 것

휴식이라는 한자 표기엔 어떻게 하면 유유자적한 주의상태를 보낼 수 있는 지에 대한 답이 들어 있다. 먼저 ‘쉴 휴(休)’라는 글자를 보자. 사람과 나무가 함께 있을 때 쉼이 찾아온다는 뜻이다. 즉, 녹색환경 속에 있을 때 쉼이 찾아온다. 파란 하늘과 산을 바라보고, 싱그러운 꽃과 나무를 가까이하는 등 자연과 연결될수록 주의력은 잘 회복된다. 하지만 바쁜 직장인들이 수시로 자연을 찾아갈 수 없다. 그럴 땐 일상에서 녹색을 늘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실험에 의하면 모니터로 자연풍경을 보기만 해도 맥박이 느려지고 이완이 되는 것을 확인해볼 수 있다. 짬이 나면 밖으로 자주 나가자.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바람을 쐬고 들어오자. 식사를 하고 나면 동네나 집 근처에서 산책을 하자. 그리고 집과 사무실에서 식물을 길러보자. 일상에 녹색을 초대하는 것! 그것이 쉼이다. 팬데믹을 계기로 우린 우리 주변의 자연을 찾고 향유하는 방법을 다시 배우기도 했다. 다음으로 ‘숨 쉴 식(息)’이라는 글자를 보자. 이 글자는 ‘자기(自) 마음(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좋아서 하는 활동을 말한다. 좋아서 하는 활동을 할 때 숨이 제대로 쉬어진다. 즉, 워라밸의 본질은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의 균형을 말한다. 이렇게 좋아서 하는 능동적 휴식 활동을 라틴어로 ‘오티움(Otium)’이라고 한다. 이는 책임이나 의무 때문도 아니고 보상이나 결과 때문도 아닌 그 활동 자체가 즐거워서 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마다 다르다. 드럼 연주, 사진, 자전거 타기, 글쓰기, 꽃꽂이, 철학 공부 등 그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활동은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은 과정 자체에서 기쁨을 느낀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오티움은 어른의 놀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의 오티움은 무엇일까? 당신이 어떤 활동을 할 때 당신의 영혼은 기뻐할까?

소진하는 쉼이 아닌 채우는 쉼

최고의 휴식이 오티움이라면 최악의 휴식은 ‘억지로 애를 쓰는 휴식’이다. 자신에게 맞지 않고 그 어떤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지만 남들이 좋다고 해서 그냥 따라하는 휴식 활동을 말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명상이나 피아노 연주가 영혼의 기쁨을 주지만 당신에게는 스트레스뿐이라면 무슨 소용이라는 말인가? 일은 자기답지 못할 수 있지만 휴식은 자기다워야 한다. 많은 시간이 아니어도 좋다. 일상의 작은 시간에 유념하며 그 시간을 소소한 기쁨으로 채워 가보자.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보고, 내가 좋아하는 꽃을 기르고, 잠시라도 시간 부자처럼 천천히 산책해보자. 삶에 생기가 깃든다.